독일의 겨울에 대해서는 이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한 삽심 분은 수다를 떨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이 다 되었고, 틈틈히 하이쭝(라지에타)를 가동하는 중이다. 바람은 또 어쩌고. 삼일 동안 비가 오거나 하면 누구라도 재워주고 싶은 기분이 된다.

솔이네가 영구귀국했다. 1년 반 정도의 독일생활을 청산하고. 집 청소하고 페인트칠하느라 우리집에 이틀 묵었다. 마지막 날 밤엔 솔이가 자기 싫다고 짧게 울었다. 

그들이 남기고 간 것들의 목록을 일없이 적어본다. 냄비, 수저 등 참깨, 수건, 액정이 망가진 노트북, 한국에서 가져온 고시용 독서대, 오리털이불, 오리털쿠션 2, 계피가루, 김, 건어물, 스판 코듀로이 바지...한웅큼의 머리카락. 한국에 짐 부칠 땐 항공편 말고 배편이 싼데(DHL) 그 값이 20킬로에(한국의 경우 30킬로 불가) 86유로 정도. 그들은 다 내버리고 책만 두 박스를 부쳤다. 

오늘 좀 늦게 9시에 아이들을 재우고 나왔는데 텔레비전에서 <타인의 삶>을 방영하고 있었다. 시네큐브에서 봤던 영환데 우연히 다시 보게 된 것. 그때는 몰랐던 몇 가지 것들. 슈타지가 아마 위장용으로 타는 것 같은 차가 다름아닌 생선트럭이었던 것, 슈타지였다가 우편배달부가 된 주연배우가 마지막에 거닐던 거리가 어디쯤인 줄 알겠다는 것. 

어제와 오늘, 기나긴 월동준비를 위해 아이들 벼룩시장을 두 군데 들렀다. 가온이 그림판 하나 1. 50유로, 투피스로 된 스키복을 7유로에 샀다가 지퍼가 고장난 걸 보고 다시 환불했다. 그리고 오늘 간 곳에서는 동하 겨울양말 네 켤레, 동하 스키복 7유로, 가온이 장갑 3유로, 가온이 부츠 3유로. 스키복은 터키여자가 처음에 14유로를 불렀다. 두 말 않고 비싸다며 다른 데로 가버리자 나중에 그 여자의 친구인 듯한 남자가 나를 불러 세웠다. 얼마면 살래? ...7유로... 좋아, 이 털모자까지 덤으로 줄게. 

동하가 말이 많이 늘었다. 쉴새없이 하루종일 떠드는데 맨 나중까지 안 자겠다고 버티는 놈도 동하다. 오전에 내가 밥은 안 먹고 장난치는 아이를 보고 "밥상에서 음식 갖고 누가 장난 치냐?" 했더니 이 녀석이 "공하."하고 대답하는 거다. 동하는 역시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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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0-10-04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도 이제 가을이 없어요. 벌써 추워요. 그리고 비가 자주 내려요. 스키복 값으로 배추 한 통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네요.
왠지...(아무리 다른 것들이 좀 힘들더라도) 지금 거기 계신 게 잘 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sandcat 2010-10-12 06:30   좋아요 0 | URL
한국을 떠나 있는 게 잘 된 일이라는 생각이 8, 버티기 힘들다 2 입니다.
남쪽 독일에 사는 아는 언니가 목요일날 배추를 수십 포기 절여 온다기에 제가 그랬어요. 어디다 묻을 데도 없는데 너무 많이 갖고 오지마.

urblue 2010-10-12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는군요.
남편이 알려주었어요, 샌드캣 님 글 올라왔다고. 그러고는 둘이서 가온이 얘기 했답니다. 이제는 다 컸겠구나 하면서 말이죠. 저한테는 안기지 않으려 했던 그 날의 가온 얼굴을 아직 기억하는데, 지금 보면 알아볼까 모르겠어요. ^^

sandcat 2010-10-13 18:33   좋아요 0 | URL
며칠 전, 작정하고 한 일이 즐겨찾기한 서재를 일별하는 거였어요. 블루 님 서재는 여적 새글이 없어, 무슨 일일까, 궁금했지요. 몇몇 분들이 알라딘을 떠났고, 더 이상 새글이 올라오지 않는 곳도 제법 있었어요. 뭐, 한꺼번에 근 3년의 시간을 뛰어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실감합니다.
두 분 다 다 잘 지내시는 거지요? 블루 님은 파란 스웨터 입고 남편 분은 티셔츠 입고 조용히 웃고 얘기하던 거 저는 고스란히 기억하는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