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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사, 영화를 번안하다
변사는 영화의 대본을 보고 연기를 했다. 뿐만 아니라 변사는 영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들어갔다. 변사는 영화의 해설자이자 주연 배우들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성우이자 조선적 상황에 맞춰 영화를 적극적으로 ‘오역’했던 각색가이자 번안가의 역할도 떠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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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사진은 다만 형용(形容)으로 만의 미를 나타내는 일종의 무언극이다. 그럼으로 변사의 설명이 있은 후에 비로소 보는 사람이 자세히 알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변사의 설명으로써 그 사진에 대한 예술적 가치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 변사는 불가불 그 극에 대한 사실과 성질 여하를 자세히 안 뒤에 출연하는 배우의 표정을 따라 틀림없이 설명을 하여야 비로소 예술적 가치를 완전히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활동사진 변사는 연극배우들보다 지식과 사상이 우월한 자로 인지의 발전을 속히 관찰하여서 그에 따라 손님에게 만족을 주어야 할 것이다.
―八克生, “활동변사에게”, <매일신보>, 1919년 8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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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개봉되었던 대부분의 무성영화는 미국 영화였다. 자막이 있었지만 영어로 된 자막이었으니, 웬만한 관객들은 쉽사리 자막을 읽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변사는 관객과 영화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야만 했다. 영화 대본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영화의 내용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해설도 좋게 마련이다. 여기에 더해 변사는 조선적 상황에 맞춰 대본에 없는 말을 넣거나 의도적으로 내용을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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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호는 (……) ‘타이틀’에 없는 말을 그럴듯하게 창작하여 집어넣어서 더한층 갈채를 받기 시작하였으며, ‘타이틀’에 ‘쫀’이나 ‘메리-’로 있건 말건 대중에 영합하기 위하여서 김서방 박서방 휘뚜루마뚜루 이름을 붙이다가 나중에는 ‘메리-’가 ‘뺑덕어멈’이 되어 나오기까지 하였다.
―柳興台, “銀幕暗影 속에 喜悲를 左右하든 當代 人氣辯士 徐相昊 一代記”, <朝光>, 193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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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의 메리가 검은 머리의 뺑덕어멈으로 변한다고 해서 관객들이 질타를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순간순간의 재치를 발휘하는 변사의 연기에 빠져들기만 했다. 전문직이었던 변사도 영화의 장르에 따라 좀더 전문적으로 분화해갔다. 사극은 김덕경, 문예극은 서상호와 우정식, 활극은 이병조, 희극은 최병룡, 연애극에는 변사 출신의 감독 김영환이 전문 변사로 활동했다. 서상호는 미국 영화인 <명금>(1915)과 <암굴왕>(1913)의 변사로 유명했다. <명금>의 원제는
이었고, ‘어두운 동굴의 왕’이라는 <암굴왕>의 원제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이었다. 그럼 서상호가 가장 호평받았던 <암굴왕>의 해설 장면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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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느님이시여. 원수의 하나를 인제서야 갚았습니다. 이십여 년의 장구한 세월을 무변대해이고도 차디찬 뇌옥에서 꽃 같은 청춘을 속절없이 다 늙히고, 복수의 불타는 일념은 골수에 사무쳐 그는 언제든지 이날만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柳興台, “銀幕暗影 속에 喜悲를 左右하든 當代 人氣辯士 徐相昊 一代記”, <朝光>, 193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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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백은 괴상한 복면이다
변사의 인기가 높아갈수록, 무성영화에서 변사의 역할이 높아갈수록, 각계각층에서 변사의 일거수일투족에 비상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총독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21년이 되자 변사의 자격을 제한하는 면허시험제도가 실시되었다. 1922년 5월에는 ‘흥행 및 흥행장 취체 규칙’이 제정되었으며, 1922년 6월 27일에 제1회 변사시험이 실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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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장사동(長沙洞) 사십팔 번지 사는 정한설(鄭漢卨, 22세)은 이제로부터 삼년 전에 우미관 변사로 무대에 오른 이후, 금일까지 매우 근실히 지나오던 중 지난 오일 구시 반경에 활동사진이 중간에 끝나고 십 분간 휴식을 하게 된 틈을 타서 무대에 나타나, 일반관객을 향하여 긴장한 표정과 흥분된 어조로 주먹에 힘을 주면서 ‘오늘은 자유를 부르짖는 오늘이요, 활동을 기다리는 오늘이라. 우리의 맑고 뜨거운 붉은 피를 온 세상에 뿌리여 세계의 이목을 한번 놀래어서 세계 만국으로 하여금 우리의 존재와 우리의 정성을 깨닫게 하자’는 등 활동사진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온당치 못한 말을 하였음으로 즉시 입장하였던 경관에게 취체[取締: 단속―인용자]되어 목하 종로 경찰서에 구인 조사 중인데 활동사진 변사로서 언론에 대한 관계로 취체 구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더라.
―“자유를 절규하고”, <동아일보>, 1920년 7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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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직후였고,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문화정책으로 바뀐 시점에서 터진 사건이기는 하지만 이 사건과 변사 면허시험이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극장이라는 다수한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서 변사의 역할은 절대적이었고, 그런 변사를 통제할 필요가 생긴 것임에는 분명했다. 1926년에 실시된 변사 면허시험의 문제는 이렇다. 시험이니 원문 그대로 적는다. 한번 맞춰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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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에 기록한 바 문자의 뜻을 간단히 설명하라.
衝動, 處女說明, 五色酒, 러브씬, 刹那主義, 크라이막스, 文盲, 로케손, 社會主義, 赤化.
―<동아일보>, 1926년 1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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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2월 25일에도 경기도청에서 변사 면허시험을 실시했는데, 지원자는 10명이었다. 몇 명이 합격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변사 시험을 보겠다는 사람들의 지식 정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답안이 참으로 엉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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變態心理? (답) 變한 心의 變態, 시시로 심리가 변하는, 즉 찰나.
오페라백? (답) 괴상한 복면, 불란서 파리의 대극장.
힌트(hint)? (답) 사진의 기계가 장막에 合치 않는 것을 ‘힌트’가 不合한다고 함.
스크린(영사막)? (답) 임시로 제작한 장소, 정지시키는 것.
키네마 팬? (답) 이태리에서는 대극장.
―“오페라백은 怪常한 覆面”, <동아일보>, 1927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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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사는 뛰어난 언변으로 무장했지만, 그들의 지식과 교양이 높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일본에서도 변사 면허시험이 있었다. <동아일보> 1920년 8월 9일자 “동경전보”에 의하면, 일본의 일류 변사로 매우 인기가 많았던 한 사람이 ‘문제(問題)’라는 의미를 알지 못해서 벌벌 떨다가 별안간 실신하여 병원에 실려 갔다고 한다. 이처럼 일류 변사든 이류 변사든 간에 그들의 학식은 아직까지 검증되지 않았고, 영화 팬이 많아질수록 점점 변사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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