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영혼, 간디 창비아동문고 190
이옥순 글, 김천일 그림 / 창비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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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 3월 간디와 주민들은 영국이 제정한 소금법을 없애기 위해서 바닷가로 가서 영국의 소금법을 어기고 직접 소금을 만들었다. 그들 중에는 간디, 79명의 자원자, 그리고 주민들이 있었다. 이 때 소금법이란 영국이 만든 법으로 영국의 허락 없이는 인도인이 소금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법이다. 간디와 주민들이 소금법을 폐지시키기 위해서 바닷가로 간 이유는 열대 지방인 인도에서는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들이 소금을 많이 먹어야 하는 데 영국이 소금세를 높이 매겨서 큰 수입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인도인들의 불복종 무저항 운동이 계속되고 간디는 체포되었다. 그러자 인도인들은 더욱더 불복종 운동을 열심히 벌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붙잡혔다. 그 후 많은 나라에서 간디를 석방하라는 내용의 편지들이 영국에 보내졌다. 그래서 영국은 간디를 풀어주고 결국에는 협상을 했다. 그런 뒤 인도인들은 직접 소금을 만들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영국은 외국산 옷감들을 반대하는 운동도 인정해주었다. 이 운동은 영국을 위해 외국산 옷감을 수입하지 않고도 자신들이 직접 옷을 짜서 돈을 절약 할 수 있게 된 비폭력적 운동의 하나이다. 간디와 인도인들이 소금법을 폐지시키려고 할 때에 과연 영국이 순순히 내버려두었을 까? 아니다. 영국은 간디와 인도인들에게 많은 시련을 주었다. 협상이 되기 전까지 영국은 간디를 체포하고 인도인들을 폭력을 써서 막았다. 그리고 불복종 운동을 한 인도인들을 감옥에 넣었는데 그 수가 약 6만 명 정도 된다. 소금법을 폐지하고 인도인들은 많은 영국을 위해서 소금을 살 필요 없이 자신이 직접 소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로 인해 인도는 독립의 길로 한 층 더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을 살면서 폭력이라는 것도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폭력을 쓰지 않고 말로서 풀어나가는 방법이 더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폭력적으로 상대를 대한다면 사건이 끝났을 때에도 기분이 좋지 않고 아까 전에는 복수심에 불탔어도 친구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금세 미안한 마음이 들것이다. 나도 사실 나의 친구와 눈싸움을 하다가 싸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싸우고 난 뒤 우리는 다시 사과하고 그래서 8년 정도의 우정을 나누었다고 생각이 든다. 비폭력의 장점은 싸우지 않고 말로서 풀기 때문에 친구와도 우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서는 말로서 해결할 때에는 자신을 낮추고 그 사람을 높이 보는 것과 같이 남을 존중해서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자신도 화를 내면서 말로서 해결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어떻게 심하게 화가 나는 데 그것을 통제를 한단 말인가? 분명히 주먹먼저 나가 버릴 것이다. 참으로 자신을 통제하고 비폭력적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은 쉬운 말처럼 들리겠지만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 만큼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 간디가 아주 대단하다고 느꼈다. 죽을 때까지 치욕적인 일 억울한 일을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서고 폭력이 아닌 비폭력으로 독립을 이루다니 그 안에 있는 점을 본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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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7 09: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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