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에서 눈길을 떼었을 즈음엔 낮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해는 저물었지만 아직 밤은 아니다. 적막이 길게 드리워져 있을 뿐이다. 적막의 물이 서서히 솟구쳐 부단히 반짝이며 흘러넘치는 듯하다. 이 정적 속에서 당신의 생각 역시 차고 넘친다. 생각은 산뜻함과 가벼움으로 차고 넘쳐 더는 조바심내지 않는다. 더는 어수선해지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휴식하며, 존재하는 것들에 뒤섞여 더는 무얼 찾지도 않는다. 이런 가뿐함을 무어라 이름 지을 수 있을까? 행복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 가뿐함에는 대칭어가 따라올 수 없기 때문이다. 행복은 불행과 함께하고, 기쁨은 슬픔과 함께 한다. 그런데 당신이 지금 경험하는 상태는 그 무엇과도 함께 하지 않거나, 아니면 모든 것과 함께 한다. - P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