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2세라고 해서 18세기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중세 말(르네상스가 동트기 전이라고 할까) 내가 아는 프리드리히 2세가 아니라, 호엔슈타우펜 왕조의 마지막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다. 이 책은 마치 프리드리히 2세가 살아 있는 동안 옆에서 관찰하고 기록한 것 같은 책이다.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혹시 이 책을 읽다 복잡하다고 생각해서 어려움을 느낀 분들은 (하)권에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서술하니까 인내심을 갖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서유럽의 중세는 크리스트교가 일상 생활까지 지배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황의 권력이 하늘을 찌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시절 교황과 끊임없이 대립했던 프리드리히 2세. 그의 활약상 중 멜피 헌장(1231)을 통해 시칠리아 왕국을 법에 근거한 군주 국가로 만들려고 한 노력과 그를 도와준 조력자들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황제가 명한다."란 말로 시작하는 법조항을 중세에 만들었던 것부터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그리고 교황의 눈에 이 황제가 얼마나 건방져 보였을지 안봐도 눈에 선하다. 결국 종교 권력과 세속 권력의 힘겨루기는 프리드리히 2세의 사망과 그의 후손들이 그의 영향력을 그대로 잇지 못하면서 종교 권력이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사는 자연스럽게 스포가 이루어지므로, 곧 르네상스가 꽃피우는 시기가 되는 것을 봤을 때 종교 권력이 이겼다고 평가하기에도 애매하다. 그리고 저자도 1250년 프리드리히 2세의 사망 후 1305년~1377년 아비뇽 유수로 교황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을 언급하며 로마 교황이 진정한 패배자가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한다. 역사란 당장은 지는 싸움이라 여겨지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꼭 패했다고 보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얼마 전 왓챠에서 메디치란 드라마를 봤는데 15세기의 로렌초 데 메디치와 13세기의 프리드리히 2세가 묘하게 겹치면서 이탈리아 시간 여행을 한 기분이 든다. 로렌초도 교회 권력과 힘겨루기를 하면서 결국 안정적으로 가문의 영광을 떨치기 위해 자신의 가문에서 교황을 배출해야 한다고 결심한다.(결국 배출) 그리고 피렌체의 수도사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와 갈등하고 사보나롤라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힘이 커져 로렌초의 아카데미에 있는 그림 및 조각 작품을 파괴하고 피렌체의 권력자로 부상한다. 하지만 사보나롤라의 급진적인 주장에 시민들이 등을 돌리고, 그는 교수형에 처해진다. 로렌초가 사망한 후 사보나롤라가 피렌체에서 세력이 커졌지만, 결국 피렌체에 남은 것은 메디치 가문의 영향력이 아닐까?

 

어쨌든 나폴리대학(페데리코2세대학)이라는 유럽 최초의 세속 대학을 설립해서 로마법을 주요 과목으로 법학을 연구하고, 인재를 모아 멜피 헌장을 통해 법을 근거로 통치하는 국가를 만들려고 했던 점. 외교를 통해 예루살렘을 수복하려고 했던 6차 십자군 전쟁에서 보인 외교술(실제 그렇게 함.) 이슬람을 이교도로 배척하지 않고 이용한(?) ㅋㅋ 포용한 모습. 로마 교황을 상대하는 배짱있는 성격. 등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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