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에게 인간은 주어진 본질 밖으로 나설 수 있는 자유로운 ‘탈존‘이니까.
그렇다면 천직이 주는 행복은 무엇일까? 육체와 영혼이 소모되는 직장을 벗어난 것? 매일 해도 즐거운 일을 찾은 것? 둘 다 피상적인 답이다. 천직의 행복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없애는 것에서 온다. 천직은 하늘이 내려준 직업이다. 하늘이 내려주었기에 거부할 수도, 피할 수도 없다. 천직을 찾은 사람들이 종종 자신은 어떤 행위(연기, 노래, 글쓰기)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는 더 이상 직업적 혼란이나 불안을 겪지 않아도 됨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스스로 자신을 특정한 본질에 가두는 일이기도 하다.
천직은 그것을 찾는 과정에 의미가 있다. 천직을 찾을때 우리는 자유로운 ‘탈존‘으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천직을 찾았지만 ‘나는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 라는 식으로 자신의 본질을 가둘 때 다시 우리는 부자유한 ‘존재‘로 전락한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과 인간이 자유롭다는 것은 같은 말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사르트르가 했던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 라는 말과 같다. 사르트르가 말한 자유는 이토록 무거운 것이다.
이유 없이 세상에 던져져서 어떠한 목적도 없이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인간 각자는 스스로의 존재의 의미를 자유롭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창조적 존재로 거듭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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