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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 : 도래한 상상
이민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8월
평점 :
언젠가 어떤 예쁜 여자 연예인이 집에서도 남편을 의식해서 몸에 붙는 옷을 입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에서는 꾸밈에 집착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건강을 해치는 여성(또는 소녀)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여성에게 꾸밈이란, 이렇게 스펙트럼이 넓은 이야기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는 솔직히 극단적인 두 경우를 모두 공감하고 이해한다.
그럼 나는 어떨까?
꾸밈을 강요받은 적이 있나? △
- 적당히 꾸미고 다녀서 강요받은 적은 없지만, 내가 기억 못 하는 것일 수도 있으므로 세모
외모(꾸밈) 지적 또는 칭찬을 받은 적이 있나? O
- 외모(꾸밈)에 대한 지적, 칭찬 모두 불편함. 특히 어린 시절 친척들이 모였을 때 외모 지적을 많이 받았던 것이 떠올라서 화났음.
여성에게 꾸밈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나? △
- 예쁘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남녀 불문하고 적당히 꾸미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함. 다만 여성에게 꾸밈이 더 많이 강요되어 온 것은 인정함.
탈코르셋 운동이 2015년쯤 확산되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탈코르셋이 어떤 주장인지 몰라서 대략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모든 사람의 외모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일 거라고 짐작하며 책을 읽었다. 하지만 책의 말미에 내 짐작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탈코르셋은 외모 지상주의 대신 다양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되 더 폭넓은 선택의 자유를 추구하며 나답게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중심에 둔 운동이 아니다.
어쩐지 공감할 듯,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더라니.
나는 성별에 따라 사람이 차별받는 것은 반대하지만, 남녀의 타고난 신체적 차이나 기질까지 똑같이 맞출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탈코르셋이 분명 부당하게 꾸밈을 강요받는 여성에게 용기를 줄 수 있지만, 모든 여성이 탈코르셋을 할 수는 없다.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여성도,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는 여성도 존재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취향이라면 누구도 타인의 취향을 간섭할 수 없다고 본다. 다만 꾸미라고, 예쁘게 보이라고 여성을 압박했던 부당한 관습과 타인의 지나친 관심은 이제 사라졌으면 좋겠다.
여자는 꾸며야 한다는 말도 싫지만, 꾸미는 것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도 싫다. '규범적 여성성'에 대해 반기를 들 수 있지만, 여성성이 과연 나쁜 것일까? 꾸미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억압일까? 예뻐지고 싶은 욕망은 가지면 안 되는 걸까? 남자와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성인데 욕망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탈코르셋이 페미니즘의 한 줄기라면 페미니즘의 한가운데 여성 해방 말고, 인간을 둘 수는 없을까?
공감할 듯 공감하지 못하면서 끊임없이 의문이 드는 것을 보니, 탈코르셋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나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억압과 차별은 반대한다. 여성이 느끼는 꾸밈강요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꾸밈노동이 얼마나 낭비적이고, 부당한지 깨우치라고 주장하는 입장이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여성에게는 강요와 참견이 될 수 있다. 꾸미는 것을 불필요한 노동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꾸미는 것을 통해 자존감이 높아지는 사람도 있다. 코르셋을 입을지 벗을지는 각자 결정하면 될 일이다.
미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미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예뻐지고 싶고, 예쁜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이 지닌 당연한 감정이다. "이렇게 해야만 해."라며 타인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