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오구니 시로 지음, 김윤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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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구입해둔 책이다. 요리나 음식과 관련된 가벼운 에세이가 아닐까 싶었는데, 웬걸. 치매 노인과 관련된 책이었다. 2017년 일본의 방송국 PD가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이 서빙을 하는 음식점을 한시적으로 열었던 이야기이다. 요즘 같은 시국에 일본이라니, 나중에 읽을까? 싶었는데 그냥 읽기로 했다. 치매 환자를 직접적으로 겪은 경험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들었고, 언젠가는 나도 직접적인 경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평소 조금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던 중 겪은 일.

며칠 전 야후재팬에서 인지증(치매) 환자가 면허증을 반납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운전을 했다가 사고를 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기사에 달린 직간접적인 경험담들. 인지증 환자를 탓하기보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기에 조금 슬픈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다 보니, 문재인 대통령 1호 공약이 떠올랐다. '치매 국가 책임제' 대통령 선거 당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공약이었다. 주변에 알츠하이머(이것도 치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를 앓고 계신 아버지를 오랜 시간 동안 부양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 가끔씩 그분을 보면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분의 인성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아버지 부양 문제로 의절한 형제, 연락이 뜸한 형제가 있고, 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부양하면서도 늘 긍정적으로 사람을 대하시는 따뜻한 분이다. 내가 저분이라면, 나도 저렇게 정성을 다할 수 있을까, 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어느 순간 부모님이 순식간에 늙어버린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데, 나만 겪은 일은 아닌 것 같다.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자식들 힘들게 하지 않고 떠나신 경우도 있지만 만약 긴 병, 특히 부모님이 치매에 걸린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런 끝도 없는 생각에 빠질 때가 있었다. 겪어보지 않았지만,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잘 아는 대통령이 '치매 국가 책임제'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조금씩 정책을 실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인 대책이나 정책은 정부에서 한다고 친다면, 나는 어떤 마음이어야 할까?에 대한 부분을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가늠해볼 수 있었다.

 

 

 

 

암을 앓게 되면서 외관적인 것, 살아가면서 하게 되는 여러 가지 선택,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것 등 여러 가지를 '잃는' 경험을 했다.

치매 진단을 받은 분들 역시 기억을 잃고,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잃고 있으리라.

암에 걸렸으니까 포기해야 한다.

치매니까 마음을 접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이따금, 악의는 없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암 환자인 나는 오늘,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고 가장 친한 친구와 너무나 멋진 레스토랑에서 최고의 식사를 즐겼다.

물론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많은 것을 잃었다지만 여전히 주변 사람들과 사회와 이어져 있다. 이어져 있어서 좋다.

129-130

 

치매에 걸린 사람이 대부분 이런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어져 있어서 좋다."

살면서 누리고, 가졌던 부분을 점점 잃어가는 도중, 여전히 내가 주변 사람들과 사회와 이어져 있어서 좋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 가족 입장에서 글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내가 겪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마음에 새겨본다.

 

 

잃는다는 것은 두렵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해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가진 것, 할 수 있는 것에 눈을 돌려보면, 전혀 새로운 것이 보이고 이토록 아름답고 찬란한 시간을 만들 수 있다.

132

마지막까지 온전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싶다.

150

 

이 문장을 보고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살아생전 온화하고 선비 같은 분이셨는데, 암 수술 이후 신체의 일부분을 떼어 내시고 보조 장치로 17년 가까이 살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직전 사위(우리 아빠)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족들이 해드릴 수 있는 일은 간병뿐만 아니라 '마지막까지 온전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싶다.'라는 마음을 지켜드리는 일도 있지 않을까.

 

 

 

 

지금껏 틀린다는 행위 또는 치매라는 병은 사회적으로 볼 때 '비용'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그동안 '비용'으로 여기던 것이 돌변하여 어마어마한 '가치'로 떠오른 것이다.

200

 

 

비단 치매뿐만 아니라 '틀린다'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부족하고 틀린 것에 대해 관대하지 못했는지. 그냥 좀 넘어가고 눈감아줄 수 있는 것에 대해 얼마나 엄격했는지. 타인에 대해서도 그렇고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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