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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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태어나야지 하고 태어난 사람 손들어봐요.
우리가 남자로 할지 여자로 할지 자기가 결정한 사람 손들어봐요.
우리가 죽고 싶을 때 맘대로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내 위가 지금 음식물을 왜 소화시키지 못하는지, 왜 생리가 시작되는지, 왜 설사가 나오고 배가 아픈지, 왜 심장이 뛰고 있는지, 생물 시간에 배우는 호르몬들이 왜 그 시기가 되면 나오다가 어느 시기가 되면 사라지는지 나는 아는 게 없었다. 무엇보다 내 생명을 내가 만든 게 아니었다. 그러니 나는 대뇌보다 작은영역을 지배하는 인간. 데카르트의 말대로 사고하는 것 외에 내가 나를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니 나는 나의 주인이 아니니까 그런 내가 나를 죽인다면 그 게 살인이다. 나는 나를 죽인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위선을 행한다는 것은 적어도 선한 게 뭔지 감은 잡고 있는 거야. 깊은 내면에서 그들은 자기들이 보여지는 것만큼 훌륭하지 못하다는 걸 알아. 죽는 날까지 자기 자신 이외에 아무에게도 자기가 위선자라는 걸 들키지 않으면 그건 성공한 인생이라고도 생각해. 고모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은 위악을 떠는 사람이야. 그들은 남에게 악한 짓을 하면서 실은 자기네들이 실은 어느 정도는 선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위악을 떠는 그 순간에도 남들이 실은 자기들의 속마음이 착하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래. 그리고 고모가 그것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아무 기준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남들은 남들이고 나는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물론 그럴 때도 많지만 한 가지만은 안돼.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거라는 걸, 그 걸 놓치면 우리 모두 함께 죽어. 그리고 그게 뭐라도 죽음은 좋지 않은 거야. 살고자 하는 건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에 새겨진 어쩔 수 없는 본능과 같은 건데,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다시 거꾸로 뒺비으면 잘 살고 싶다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건, 생명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야.
 
신문 기사에는 사실은 있는데 사실을 만들어낸 사실은 없어요. 사실을 만들어낸 게 진짜 사실인데 사람들은 거기에는 관심이 없어요. 사실은 행위 전에 이미 행위의 의미가 생겨난 것인데. 세상은 행위만을 판단하니까요. 생각은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도 없고 들여다볼 수도 없는 거니까, 죄와 벌이라는 게 과연 그렇게나 타당한 것일까. 행위는 사실일 뿐, 진실은 늘 그 행위 이전에 들어 있는 거라는 거, 그래서 우리가 혹여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거.
 
사형제도는 그 벌을 당하는 자들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이다. 정신적으로 수개월 내지 수년 동안 육체적으로 생명이 다하지 않은 제 몸뚱이가 둘로 잘리는 절망적이고도 잔인한 시간 동안 그 형벌을 당하는 사형수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른 품위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니, 오직 진실이라는 품위라도 회복할 수 있도록 이 형벌을 제 이름으로 불러 그것이 본질적으로 어떤지 인정하자. 사형의 본질은 복수라는 것을. <단두대에 대한 성찰-알베르 카뮈>
 
내가 그 자식은 인간쓰레기니까,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그 자식 목을 매달아놓으면 그건 살인이고, 그렇게 살인한 나를 데려다 살인자라고 목을 매달면 그건 정의인가? 똑같이 인간이 인간을 죽어 마땅하다고 판단하고 똑같이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데, 그래 오빠 말대로 하나는 살인이 되고 하나는 집행이 되고, 하나는 살인자가 되어 그 죄값으로 죽고, 하나는 승진을 하는 거... 그게 정의인가?
 
미국의 유타주에서 끝내 사형당했던 게리 길모어처럼 끝까지 모두를 조롱하며 죽었으면 했다. 게리 길모어... 여론 조사 결과 전 국민 과반수가 넘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테랑 대통령이 사형제를 폐지시키고 나서도 프랑스는 오래도록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학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여서 빅토르 위고, 혹은 알베르 카뮈 같은 이들이 쓴 사형제에 대한 열려한 반대 책자들을 나도 그래서 읽어본 적이 있었다 .게리 길모어도 그 때 만났다. 그는 아무 연고도 없는 미국 시민 둘을 쏘아 죽였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태연하게, 나를 죽이면 당신들은 나의 마지막 살인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조소 띤 얼굴로 이야기했었다. 그는 한갓 제도가 인간을 처벌할 수 있는 범주 밖으로 이미 나가 있었다. 그는 살인 이전에 일어났던 모든 폭력의 신화를 살인 하나로 대치하는 제도의 무능과 모순을 생명을 바쳐 비웃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어렵게, 우연히 손에 넣었다. 그래서인지 더 단숨에 읽어버렸고, 단순 감동이나 전달하는 지식이 아니라서 더 빨리 읽힌 것 같다. (책 속의 표현대로라면 상투적이지 않아서.)
사형 제도. 난 궁극적으로 폐지론자에 속하지만 요 근래 너무나 극악무도해서 인간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범죄자를 매스컴에서 접하고, 내가 그 피해자의 가족, 친구라면..?이란 상상을 하게 되면 내 생각이 많이 흔들리곤 했었다.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찬반토론 주제로 그리고 답으로 존치론자와 폐지론자의 각각 입장을 정리해서 익혀두었던 내용으로는 내 생각을 표현하기엔 많이 부족함을 느꼈었다. 그래서 내 생각도 많이 흔들리곤 했었던 것 같다.
흔히 사람들이 범죄자에게 무슨 인권이냐고 하면서 돌을 던질 때도 '그래도 인권은 인권인데, 인권은 누구나 공평하게 태어나면서 가지고 태어나는 건데... 인권은 누가 자격을 준다고 해서 갖게 되는 게 아닌데...'라고 밖으로는 대꾸하지 못했다.(것도 속으로..)
우리나라 인권 감수성이 낮아 '인권'이라는 단어 자체에서부터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 많아서 잘 먹히지 않는걸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사형의 본질이 결국 '복수'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도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만들어낸 '진짜 사실'을 생각한다면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형벌은 복수가 아닌 교화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폐지해야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을 용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더군다나 인간으로서 못할 짓을 한 인간들을 용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정말정말 어려운 일이지..
어쨌든 무거운 얘기는 접어두고, '용서'에 대한 내 감성은 한 단계 성숙한 느낌이다.(이 책이랑 병행해서 읽고 읽는 책에도 그런 문구가 있었다. "사랑은 용서를 품고 자란다.")
소설을 읽으며 이렇게 많이 메모해놓고도 모자라 다이어리에도 메모해 놓기는 처음인 것 같다. (그 것도 손으로 펜을 쥐고...--)
 
보태기>뚱딴지 같은 얘기지만, 종교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아서 아주 무관심했지만, 종교가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참, 그리고 읽는 내내 어찌나 강동원 얼굴이 떠오르는지...^^ 강동원 말고 다른 얼굴로 상상하며 읽으려고 해도 도저히 상상이 안됐다. 문유정 역할이 이나영이라서 더 맘에 든다. 소설을 토대로 만든 영화는 다 별로여서 영화에 대한 기대보다도 소설과 배우가 좋아서 그냥 보고 싶은 영화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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