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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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호흡으로 함께 한 책
 
 
J, 언제나 혼자였던 것은 아니었고, 또 그럴 수도 없었겠지만, 나는 늘 춥고 그대에게서는 따뜻한 냄새가 났습니다. 온 존재를 유리창에 기대어 보았으나 끝내는 그 불빛 안으로 들어서지 못한 빗방울처럼 저는 혼자였던 것만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단지 살아온 삶으로 이야기한다, 라는 것이지만 지나온 삶이 곧 우리는 아니라는 것... 당신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J, 무엇을 잃어버리는 일이 꼭 나쁜 일은 아니겠지요. 기억 위로 세월이 덮이면 때로는 그것이 추억이 될 테니까요. 삶은 우리에게 가끔 깨우쳐줍니다. 머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마음이 주인이라고.
 
폭력은 그 자체만으로 이미 인간의 한 부분을 망가뜨리지만 더욱 결정적으로 인간을 망가뜨리는 것은 그것의 거짓 명분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랑은 폭력을 수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육체이든 언어이든 정신이든.
 
젓가락이라는 것은 남을 찌르지도 않고 사물의 원형을 보존한 채로 결합하며 꼭 필요한 서로인 다른 짝을 용접하거나 고리로 짜서 얽어매지도 않고 자신의 할 일을 해냅니다. 그리고 일을 끝낸 다음에는 제각기 흩어져 자신 스스로 존재하면 그뿐입니다. 게다가 그 둘 사이에는 무한한 공간이 있습니다. 하나가 사라지면 다른 것과 파트너가 되어 제 할일을 하면 그뿐, 신발처럼 짝이 맞지 않아 멀쩡한 하나가 버려지는 일도 없을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그 둘은 짝이면서도 자유롭습니다. 네가 아니면 안 된다고 울부짖을 필요도 없겠지요. 무심히 가고 무심히 오나 서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

 

사랑이란 무턱대고 덤벼들며 현신하여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과 미완성인 사람 그리고 무원칙한 사람과의 만남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랑이란 자기 내부의 그 어떤 세계를 다른 사람을 위해 만들어가는 숭고한 계기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보다 넓은 세계로 이끄는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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