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의 정치학 - 왜 진보 언론조차 노무현·문재인을 공격하는가?
조기숙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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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팟캐스트를 통해 조기숙 교수의 구좌파와 신좌파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한겨레(경향은 안 봐서 모름)에 대한 불편한 감정,

나의 정체성(진보도, 보수도 아닌 것 같은),

진보 정당을 100% 지지할 수 없는 나의 입장

 

이런 것들에 대한 의문이 조금 해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10년이 조금 지난 것 같다. 당시에 한겨레 일간지를 매일 챙겨 보았다. 자투리 시간에 신문을 챙겨본 이유는 사회 돌아가는 일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책임감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진보 언론을 봐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의무감 때문이었다. 그러다 점점 신문을 챙겨보는 것이 어려워졌는데 그 때가 이명박 정부 3년차쯤 되었던 것 같다. 언론이 점점 정부에 길들여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진보언론을 봐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커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바빠서 일간지는 보기 힘드니까 주간지를 봐야겠다는 생각에 한겨레21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점 한겨레21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것은 한겨레 신문을 보면서도 겪은 일이다. 언론의 입장이 꼭 내 생각과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자도 사람이니까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자들의 생각이 다양할 수 밖에 없으니까, 이상해도 심각하게 받아들인 일은 아니었다.

가령, 놈현이라는 표현을 신문에 써서 유시민이 한겨레 절독을 선언했던 일, 노무현 대통령 수사 때 보였던 보수 언론과 다름 없던 진보 언론의 태도(죄인처럼 몰아갔던 일, 검찰의 수사 방식에 대한 비판적 태도 부족 등), 노대통령 돌아가신 후 경향신문은 사과를 했다고 하는데, 한겨레는 사과했다는 것을 듣지 못한 일 등

100% 마음에 들지 않아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진보 언론이 더 작아지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했던 때였다.

 

이렇게 진보 언론을 봐야한다는 의무감이 매우 컸던 시점이라 한겨레21을 보는 것이 나의 마지막 의무감이었다. 한겨레 21을 보면서 이상했던 점은 정치 기사 말고 다른 곳에서 느껴졌었다. 예를 들면, 심각하게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상황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국내 정치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의 비중이 높을 때가 많아서 다수의 기사가 잘 와닿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 것도 주간지니까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점점 목차를 보고 한겨레21을 펼쳐보지도 않는 일이 생기며 폐지만 쌓이기 시작했다.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은 국내 현안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면서 혼자 고고한 분위기를 풍기는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런 것이 엘리트주의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다 나꼼수라는 팟캐스트 열풍에 시사인을 구독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고 있었다. 방송, 신문에서 접하지 못했던 속시원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게 된 것이 좋아서 시사인 구독을 신청했다. 잘 보지는 않고 있지만 진보 언론에 대한 의무감으로 한겨레21은 끊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겨레21에 대해 완전히 정이 떨어지는 글을 김모 기자(였던 듯)가 실었다. 기자의 수다같은 짧은 에피소드의 글이었는데, 나꼼수를 시기하는 글이었다. 짧은 에피소드(택시 안에서 있었던 일을 토대로 시사인에 대한 기자의 생각을 엿본 글)를 통해 기존 언론에서는 나꼼수를 언론도 아닌 것들 정도로 무시하면서 사실상 시기를 한다는 생각을 하자, 한겨레가 매우 찌질한 존재로 느껴진 것이었다. 내가 이런 존재들을 위해 유료 구독을 해야하나란 생각에 어차피 보지도 않고 있고, 혼자 잘난 듯 어려운 글을 쓰는(시사인의 기사가 훨씬 와닿고, 글이 쉬웠다.) 한겨레21을 구독 해지하였다. 그랬더니 언제부터인지 직장으로 한겨레21을 구독을 해달라는 전화가 여러 차례 왔다. 내 개인정보는 어떻게 알았는지 화도 났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을 했었다. 구구절절 불쌍한 목소리로 한겨레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이야기를 점점 들어주는데 인내가 오던 차에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자 그 이후부터 구독해달라는 전화는 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시기심을 드러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이기 때문에 시기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것은 개인의 내면에서 끝내야 하는 감정이다. 왜 시기심을 드러내는가? 그 것은 열등감을 표출하는 것이다. 남이 자기보다 잘 되는 것이 못 마땅하면 자기 성찰을 하면서 내가 뭐가 잘못되고 부족한지 살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성찰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기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마디로 피해의식이다.

 

나꼼수가 잘 나가고, 시사인이 잘 되고 있으면 우리가 뭐가 부족해서 사람들이 팟캐스트에 열광하고 지지하는지 생각했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부족한 점과 잘못한 점에 대한 성찰 없이 상대방을 과소평가하고, 상대방을 지지하는 다수의 사람들을 폄하하고, 여전히 자신들은 잘났다고 여기는 것. 열등감을 폭발시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공개적으로 글에 실었던 것이 그 동안 마음에 들지 않아도 참았던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진보 언론에 대한 의무감도 지울 수 있게 되었다.

 

아무튼 그 후로 나는 지금까지 시사인을 보고 있다. 시사인도 100%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고, 가끔 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주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시사인도 때로는 언론으로서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나와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사인도 자기 성찰 없는 언론이 된다면 바로 끊을 생각이다.

 

 

그리고 진보 정당, 진보 정당에 대해서는 사실 큰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가끔씩 시민단체같은 발언을 할 때, 대안없이 비판만 하는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특히 참여정부 때) 하지만 워낙 작고 힘이 없으니까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어쩔 수 없겠지 정도로 이해하려고 했다. 그런 마음을 바탕으로 진보 언론에 대한 의무감과 마찬가지로, 정당 투표에서 진보당을 찍어왔었다. 하지만 지난 총선에서는 진보당을 찍지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진보당을 찍을 생각이 없다. 대안없이 비판하는 것, 노동을(내 눈에는 노동만)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태도와 자신들의 전유물이라 여기는 점, 시기심을 드러내는 것만큼 내가 끔찍히 싫어하는 내로남불의 태도가 나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진보 언론과 진보 정당에 대한 나의 생각은 나는 보수는 확실히 아닌데, 진보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럼 나의 정치적 입장은 뭘까, 란 생각을 꽤 오랫동안 해왔던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을 조기숙 교수의 팟캐스트 발언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신좌파의 시각으로는 구좌파와 우파가 권위주의적이란 면에서 차이가 없다. 신좌파는 좌우를 모두 부정하기에 탈권위주의적이고 탈물질주의적이며, 탈이념적이다. 문화적으로 리버럴하고, 경제적으로는 실용적이며, 정치에 관심이 많고 정치 지식도 많다. 부당한 권위를 부정하지만 대인 신뢰가 높고 기부도 잘 한다. 정치적 의사표현이 적극적이라 시위와 항의에도 적극 참여하며, 유머를 즐기고 정치를 문화의 영역으로 승화시킨다.(329p)

 

 

핵심은 이 것.

탈권위주의를 지향하고, 집단주의 문화를 거부한다. 과거 운동권 문화도 당시에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이해하지만, 지금도 과거 운동권에 젖어있는 사고 방식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여전히 옳다고 생각하는 사과할 줄 모르는 엘리트주의, 탈권위와 평등을 지향하는 나의 사고 방식과 맞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 그러면 당당하고 깨끗하게 사과할 줄 알아야 한다.

 

내집단에게는 호의적이고 외집단에게는 야박한 이중잣대의 태도, 이 것 역시 나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권위적이고 평등하지 않다.

 

경제는 실용주의 마인드. 경제 정책에서 이념이 무슨 소용인지, 과거 한미 FTA를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하는 태도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차라리 어떤 손해를 보기 때문에 반대한다면 모를까. 그 때 신자유주의 정책이라고 비판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뭐라고 주장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요새 나는 새로운 시대를 향해 역사가 흘러가고 있음을 느낀다. 조기숙 교수가 정의한 구좌파는 20세기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새로운 시대에 합류하지 못하고 도태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고, 정치 지식도 풍부하고, 게다가 행동으로 보여주는 참여하는 시민들은 유별난 사람들이 아니다. 대한민국 역사의 흐름이다.

 

 

 

 

역사의 진보란 억압받고 차별받던 사람들이 점점 평등한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의 발전과 함께 제도적인 차별과 억압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45p)

 

 

노무현과 진보언론이 갈등하는 이유 7가지(114p)

진보언론의 양심 결벽증

시간과 재정이 부족한 진보언론의 열악한 업무 환경

폐쇄적인 엘리티즘

비판의 효능감 혹은 스톡홀름 신드롬

언론의 특권을 이용한 킹메이커 바람

언론권력의 사유화

노무현과의 이념적 갈등

 

 

미국 언론인 십계명 중 1호는 '자본으로부터의 자유'라고 되어 있다. 진보적 언론인이 자신의 양심적 결벽을 증명하기 위해 진보적 정치인이나 정부를 더 편파적으로 비판하는 게 과연 옳을까? 자기만족은 될지 몰라도 공공선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119p)

 

엘리티즘의 뿌리는 자격지심(124p)

스톡홀름 신드롬 : 인질극이 발생했을 때 인질들이 자신을 구해주려는 군이나 경찰보다 인질범에게 동조하는 심리 상태(129P)

보수는 원래 보수의 힘을 실제보다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피지배층이 감히 기득권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도전 의지를 원천적으로 꺾기 위해서다.(145P)

 

 

19세기 말 영국의 자유당은 정치적으로는 개혁적이었을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유산 계급의 사유재산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노동당이 등장해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진보적인 의제를 제시하면서 자유당은 사라졌다. 노무현 정부 당시 많은 진보 지식인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19세기 영국의 자유당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노무현만 때리면 당시 제3당이던 민노당이 제1 야당이 되는 줄 알았다고, 민노당 출신 박용진 의원이 2012 '국민의 명령'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노무현은 19세기 자유주의자가 아니었다. 노무현은 21세기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이 점에서 소위 진보 지식인과 언론이 노무현뿐만 아니라 노무현의 지지자인 친노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150-151p)

 

* .우의 상대적 개념(: 영국의 자유당 진보->보수->소멸)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중도보수정당이었지만, 2012년 이후 세계화와 양극화의 흐름 속에서 경제적 민주화와 제2세대 시민권을 향한 시대적 과제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호남을 중심으로 했던 60대 이상 민주화 세력이 제2세대 운동이 일어나면서 보수화되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154p)

 

 

민노당이 원내에 진입하면서 경제 균열이 한국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자, 진보언론과 지식인은 영국처럼 자유주의 정당인 열린우리당이 사라지면서 민노당이 제1 야당이 되리라 기대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에 가혹하게 굴었다. 불행히도 한국은 분단과 6.25를 겪은 나라다. 빨갱이, 좌파 기피증이 민노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가로막았다. 이것이 우리가 유럽과 달리 제2세대 시민권을 성취하기도 전에 건너뛰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김대중 대통령이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세계 최강의 IT 국가가 되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인터넷은 시민에게 정보를 주며, 정보는 곧 권력이다. 2세대 시민권을 확립하기도 전에 권력을 가진 시민들이 제3세대 시민권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게 노사모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민주주의를 실천한 노사모가 한국 탈물질주의 운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은 인터넷을 활용해 대통령이 되었는데, 미국의 오바마는 2008년에야 이를 벤치마킹해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우리가 미국보다 6년이나 빨랐던 것이다.(158-159p)

 

 

학생들은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 성별, 인종, 지위에 따른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개인의 삶을 억압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들은 지도자 없는 시위를 했다. 그들은 아래로부터의 참여민주주의, 일상 속에서의 민주주의 실천을 원했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의 평등한 관계, 남녀 간의 평등한 인권, 기술 문명과 살상무기와 핵에 대한 저항,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이 신좌파의 주요 의제다. 비록 물질은 풍요롭지 않아도 지구를 더는 파괴하지 않고, 약자를 배려하고,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며, 대등한 관계에서 소통을 통해 의사를 결정하는 탈권위주의 사회가 신좌파가 꿈꾸는 세상이다.(170-171p)

 

* 노동만이 최상의 가치는 아니다.

 

 

누구도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인종, 출신 지역, 연령, 성별, 게다가 약자라는 이유로 비하 발언을 들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일베는 사회적 약자만 골라서 비하했다.(187p)

 

*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자유는 사법적 처벌의 대상일 뿐

 

 

노동만이 최고의 가치이고 노동자만이 사회의 진보를 이룬다는 생각은 이미 20세기의 흘러간 노래일 뿐이다.(192p)

2세대 시민권을 위해 가장 열심히 싸웠던 사람이 노무현, 문재인 같은 노동. 인권 변호사였다.(192p)

 

 

현재 자신의 기득권보다는 시민의 권리를 더 중요학 생각하는 사람이면 다 친노가 된다.(205p)

 

 

노무현 대통령은 타인에게 정말 너그러웠어요. 공적인 불의에는 분노했지만 사적으로는 타인에게 인자했지요. 다 이해하고 다 용서하고. 자신에게만 엄격했죠.(218p)

 

 

정치인의 됨됨이는 쓴소리를 얼마나 진지하게 듣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230p)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가 왜 문화적으로 분열하는가,(268p)

 

 

지식인은 시인이나 초인에 비유된다. 새벽을 알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려 광종 때 시작됐다는 과거제도의 폐해가 참 크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과거제도는 지식을 개인의 출세 수단으로 사용하도록 허용했기에 우리나라 지식인만 예외적으로 보수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3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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