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요일의 여행 - 낯선 공간을 탐닉하는 카피라이터의 기록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행복을 향한 몸짓이
이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행위가 여행 말고 또 있을까
<5쪽>

 

 


"왜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가"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익숙한 것에 금세 흥미를 잃는다. 매일 먹는 음식보다 새로운 메뉴를 선호한다. 익숙하게 다니던 길보다 새로운 길에서 만나는 낯선 풍경에 더 반응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사진에 담는 것을 좋아한다.

"일상을 떠나 일상에 도착한다는 것"

익숙한 생활이 싫증이 나서 일상을 벗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모순적으로 나는 일상을 떠나 일상에 도착하고 싶어 한다. 관광객으로 공간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처럼 공간을 만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단체관광도, 남들이 추천한 관광지나 음식점도 내키지 않는다. 나는 내 방식대로 여행지를 만나고 싶어 한다. 그래도 완벽하게 현지인처럼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 손으로 청소하고, 음식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을 일상으로 누리고자 한다. 선택적 현지인.

"우연한 행복"

그러다 맞닥뜨리는 우연한 행복이 나에게 진짜 여행이 된다.
우연한 행복,
산책하다가 만나는 작은 카페, 나만 알고 싶은 현지인이 가득한 음식점, 우연히 마주치는 미소와 친절, 트램에서 즉흥적으로 내려서 만난 벼룩시장, 비 내리는 날을 담은 사진 한 장, 한국에는 없을 거라고 확신하는 특이한 아이템들

계획하지 않고, 발길을 따라다니는 여행이 가져다주는 우연한 행복은 나를 설레게 만든다. 그래서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지 않고, 많은 정보도 찾지 않는다.

 

 

집 나가면
몸이 고생이다.

하지만
집을 나가지 않으면
마음이 고생이다.

적당한 방황과
적당한 고생과
적당한 낯섦이 그리워
수시로 끙끙 앓는
마음을 가졌다.

어쩌다 보니
여행자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69쪽>

 

 



"일요일이 있는 여행"

여행을 하다 보면 요일 개념이 사라질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여행 일정을 짤 때 일요일인 점을 고려한다. 여행지의 일요일에 맞추어 일요일과 어울리는 장소를 일요일에 걸쳐 놓는다. 예를 들면 일요일에 거의 문을 닫는 여행지라면, 아무것도 안 하는 일요일을 보내도 되는 여행지를 일요일에 놓는다. 미사를 드리고 싶은 성당이 있거나, 일요시장 같은 이벤트가 있는 여행지라면, 그 여행지는 꼭 일요일에 끼워 넣는다. 여행을 할 때 일요일은 그렇게 특별하다. 아무것도 안 해도 마음이 편할 수 있고, 일요일만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여행지의 일요일이다.

 

 

남들과 상관없이 내가 사랑하는, 바로 그것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 어쩌면 그것을 찾는 것만으로도 남들과는 다른 여행의 출발선에 서게 될 것이다.
<114쪽>

 

 


"한 가지를 위해 떠나는 여행"

포르투갈과 스페인 여행을 떠날 때는 오로지 '필름 사진'을 위해 떠났다. 챙겨갔던 필름이 검색대를 통과할 때 엑스레이에 얼마나 온전할 것인가, 어찌나 걱정을 했던지. 필름이 분실될까 봐 수하물로 붙이지 않고, 꼭 기내 수하물로 가지고 탔다. 부수적으로는 라리가 축구 경기 관람, 성당에서 미사 드리기, 하루 종일 머물 미술관 등등, 큰 테마와 작은 테마로 여행을 준비했었다.

어떤 주제로 그리는 여행인지 정하는 것은 여행을 보다 설레게 만든다. 낯선 여행지에서 내가 사랑하는 것을 만나는 것을 상상하며 출발한다. 분명 혼자여도 외롭지 않은 여행이 될 것이다.

내가 정한 테마를 따라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나만의 여행에서 생기는 다양한 돌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 그것이 다른 사람의 여행과 차별화된 나의 여행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타인의 취향은 안전하다."?

다른 사람들이 남긴 sns에 있는 여행 정보는 편리하다. 내가 정보를 탐색해야 하는 시간을 줄여준다. 때로는 안전할 수도 있다. 남들이 좋다고 한 것은 확률적으로 좋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타인의 취향으로 여행 중 조금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우연히 만난 동행인이 블로그에서 본 음식점을 가고 싶어 해서 따라갔다. 블로그에 많이 올라온 음식점이라서 그 음식점에는 한국인 밖에 없었다. 서로 민망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음식을 먹었는데, 나에게 음식은 너무나 짰고, 주인 할아버지는 매우 불친절했다. 저녁 시간에 동양인이 가득 찾아온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먹을 수 있는 만큼 다 먹었는데, 그 음식으로 인해 입술에 삼투압 현상이 발생해서 입술이 쪼글쪼글해지고, 건조해서 아프기까지 했다. 아마도 염분이 입술의 수분을 다 뺏어간 것 같았다. 립밤으로도 케어할 수 없었고, 3일 정도 고생을 했다. 다음 여행지에서 운이 좋게 록시땅 밤을 사서, 겨우 입술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타인의 취향은 때로는 안전하지 않을 때도 있다. 자신의 느낌과 선택을 따르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성공하면 자신감이 상승해서 행복이 배로 다가오고, 실패해도 잠시만 내 탓을 하고 쿨하게 잊어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시선은 어딘가에 끝없이 머물렀다. 시선이 머무는 구석구석마다 작지만 확고한 행복들이 손을 들었다.
<150쪽>

 

 


나의 시선이 머물고, 스치는 공간의 순간을 사진으로 담는다. 마치 점을 찍듯이.

나는 사진 셔터를 많이 누르는 편이 아니다. 내가 찍고 싶은 순간 셔터를 누르면 그것으로 만족을 한다. 직관적으로 셔터를 누르다 보니 많이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시코쿠 여행에서는 무조건 셔터를 많이 눌렀다. 비슷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그냥 많이 찍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점으로 면을 채워 점묘도를 완성하듯이 많은 사진으로 여행을 채우고 싶었다.

 

 

여행의 기억을 온몸에 새긴 나는
이토록 고스란히 남아버렸는데.
그 시간은 내 핏줄에 기록되었는데.
그 공기는 내 이마가 기억하는데.
그 설렘은 내 피부에 새겨졌는데.
이런 나를 두고
어떻게 여행을 퍼즐에 비교할 수 있을까.
여행은 기어이 나를
또 다른 나에게로 데려가는데.
<169쪽>

 

 


여행이 끝난 후의 내 감정을 잘 표현한 글이다. 여행이 끝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 방에 앉아 있는다. 다시 여기에서 일상이 이어진다. 일상은 아무 일도 없지만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아니다. 스치는 바람, 음악, 책과 텔레비전 속의 이야기에서 다시 여행이 이어진다. 여행의 잔상은 희미하지만 띄엄띄엄 이어진다. 그리고 또 어딘가로 다시 출발하게 만든다.

 

 

'혼자'는 내 여행의 단단한 코트였다.
따뜻하고 편안하고, 그래서 벗고 싶지 않은.
<170쪽>

 

 


혼자 여행을 할 때 내가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

처음 유럽여행을 했을 때 동행했던 친구는 완전한 길치였다. 내가 봤을 때 공간 감각이 제로인 친구였다. 반면 나는 타고난 공간 감각이 있다. 한 번 갔던 곳도 잘 기억하고, 지도도 잘 본다. 그리고 촉이 좋다. 이쪽으로 가면 괜찮을 것 같아, 하고 생각하고 가도 크게 실패한 적이 없다.

성격이 급해서 행동이 빠르고 미리미리 해놓는 편이다. 가령 9시까지 간다고 하면 10분 전에 도착한다고 생각하고 움직인다. 걸음도 빠르다. 그래서 그 친구와 여행할 때 그날 동선도 내가 정하고, 길도 내가 찾고, 그 친구는 거의 나를 따라다녔다. 게다가 그 친구는 시간 개념이 나보다 느려서 미리 서둘러서 출발하고 싶을 때 나를 초조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니 늘 내가 앞장서 있던 여행이었다.

런던에서 브뤼셀로 이동할 때 유로스타를 타야 하는데, 아침에 너무 여유를 부린 그 친구 탓에 유로스타를 놓칠 뻔하기도 했다. 내가 늦을 것 같다고 런던 지하철에서 캐리어를 들고뛰고, 유로스타를 탈 때 직원에게 티켓을 보여주며 도움을 청하지 않았더라면, 돈과 시간을 날릴 뻔했다. 이 사건 이후 친구는 내가 아침에 서둘러도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그전에는 소극적인 반항을 했었다.ㅋㅋ)

게다가 아무 음식이나 먹는 나와 달리 친구는 음식을 너무너무너무 가렸다. 그 친구 입맛 맞춰주느라 한국에서 잘 먹지도 않는 햄버거를 어찌나 많이 먹었던지. 갔다 온 후 너무너무 억울했다. 내가 유럽까지 가서 햄버거를!!!

내가 길을 찾아 주도하고,(어쩌면 데리고 다니는) 먹고 싶은 것도 내 맘대로 못 먹고, 사진 찍고 싶을 때 동행인의 눈치를 봐야 하는 여행이어서 어느 순간 내면에서 피곤함을 느꼈다. 물론 여행을 망치면 안 되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기 위해 당시에 거의 내가 맞춰주었다고 생각한다. 갔다 온 후 친구는 자신이 좀 까다로웠던 것 같다고 말을 했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약점이 있다. 나는 시간표에 약하다. 가령 열차 시간표를 보고, 언제 출발할지 기차표를 예약하는 것이다. 나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을 친구가 다 했었다.

“내일 우리 몇 시에 출발해?”

전 날 내가 꼭 하는 말이었다. 어쩌면 조금 짜증이 나더라도 상대방이 나의 부족한 점을 채워 주었기 때문에 여행 중 나는 폭발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이 여행을 통해 언젠가 혼자 유럽여행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꿈을 이뤘다. 여행 준비를 할 때 숙소를 찾고 정하는 일은 적성에 맞았다. 지도를 보는 것, 내가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새로운 적성을 찾았다고 생각을 했다. 반면 시간표를 보고 예약해야 하는 일은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시간표가 눈에 잘 안 들어오기도 했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떠나는 시간을 떠올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숙소를 예약하는 것보다 시간표를 보고 시간을 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혼자 여행을 할 때 내가 못하는 것은 뭘까, 이제는 딱히 없는 것 같다. ^^;
어려움이 생기면 스마트폰이 있고, 현지인에게 뻔뻔하게 물어볼 수 있고, 어떻게 해서든 다 방법을 찾아낸 경험을 해서 그런 것 같다. 돈을 지출하는 것, 낯선 것, 돌발 상황에서 받는 스트레스 등을 두려워하면 못하는 것이 더 많아질 텐데, 나는 여행지에서 돈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낯선 것을 보면 눈을 반짝이고, 돌발 상황에서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물론 여행할 때만 그렇다. 일을 할 때 돌발 상황에 놓이면 매우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그래서 '혼자'는 벗고 싶지 않은 따뜻하고 편안한 코트라는 글에 공감이 된다. 그래도 나랑 코드도 잘 맞고, 여행과 사진을 좋아하는 여행 친구가 있다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사랑도 한 가지가 아니고
사람도 한 가지가 아니고

그러니
사람이 한 도시와 사랑에 빠지는 방식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89쪽>

 

 

 


스페인 여행은 장소와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스페인에 갔다 온 후 한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남자친구랑 헤어진 기분이야."

그랬더니 친구가 하는 말.

"그렇게 설레었어?"

그랬나 보다. 여행 내내 나는 설레는 감정을 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사랑의 대상이 어떤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스페인 여행의 후유증은 꽤 컸다. 그렇게 좋아하던 사진을 찍지 않았다. 어딜 가서 셔터를 눌러도 재미가 없었다. 그런 기분이 2년 정도 이어졌다. 사진 찍는 게 재미없어지다니.ㅠㅠ 내 마음은 스페인이 기준점이 된 것 같았다. 어딜 가도 스페인에서 느낀 설렘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스페인과 사랑에 빠졌던 방식으로 다른 공간을 대했던 것이다. 각기 다른 장소마다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했어야 했는데,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이 글을 보고 탄식이 나왔다.

지금은 스페인 기준점이 많이 사라져서 괜찮다. 스페인에 빠졌던 방식은 그 방식대로 두고, 각 여행지에 맞는 방식으로 대하는 법을 나름대로 궁리해야 한다. 다른 지역을 스페인과 같은 방식으로 사랑하면 안 된다는 깨달음을 주는 힐링과 도움의 메시지이다.

 

 

그 여행 이후에 나는 내가 늘 자연에 둔감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자연에 감동하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모조리 인간의 산물이었으니까. 미술관을 좋아했고, 오래된 벽을 좋아했고, 사람이 만든 것들을 좋아했고,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들을 좋아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놀라운 자연 앞에서 나는 경건해지려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고 아주 천천히 내쉬고 있었다. 사람은 변한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194쪽>

 

 



스위스 융프라우에 갔을 때 나는 올라가기도 전에 강원도의 열 배쯤 되는 산 높이에 압도 당해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높은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조그마한 집들을 보며 나 자신이 굉장히 미미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넘어선 어떤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나를 찾았다.
아, 나는 자연에 별 감흥이 없는 사람이구나.  
이 생각은 여행지를 선택할 때 하나의 선택지가 되어 자연 경관 위주인, 특히 산과 관련 있는 장소는 가급적이면 피하게 되었다.

리스본 로카곶에서 바라본 끝이 있을까 싶은 대서양을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이었는데, 이때는 자연 자체보다 대항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감정이입이 되어(무엇이 이 무서운 바다를 항해하도록 만든 것일까?) 바다에 대해서는 공포감까지 느끼지는 않는다.

여전히 나는 자연보다는 역사와 문화, 산보다 바다지만, 사람은 변하니까, 언젠가 스위스에 다시 간다면 예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날이 왔으면.

 

 

때로는 여행을 떠나와
누군가의 일상이
묵묵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묵직한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어이 살아야 한다.
<203쪽>

 

 

 


나에게는 여행지이지만, 그들에게는 일상이 이어지는 장소인 경우를 만나게 된다. 출근을 하는 직장인, 하교를 하는 어린 학생들,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아주머니 등. 그럴 때 한국에 있을 때의 내 모습을 떠올린다. 나에게도 저런 일상이 있는데, 누군가의 일상생활 속에서 자유롭게 여행을 하며 익명성을 누리는 나. 그런 생각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무언가 자유가 주어진 시공간. 그리고 그 속의 나.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은 책. 여행이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닌 내 감정을 어루만져 준 책. 그래서 플래그가 잔뜩 붙여져 있다. 내 애정 표현이다.


더 붙일 수 있었는데, 자제했다.

“여기서 행복할 것”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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