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낯선 라틴어 명언(혹은 속담?)을 중심으로 기독교, 인생, 철학 등의 이야기 가지가 뻗어 나간다. 경어체에서 느껴지는 조곤조곤하고 친절한 말투. '처음부터 인간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연민과 사랑의 대상일 뿐'<287쪽>이라는 책의 말미에서 탁하고 무릎을 쳤다.

아, 미사 시간 신부님 말씀을 들은 것 같은 느낌!

지금은 성당을 다니지 않는 냉담자가 책을 거의 다 읽고서야 알아차린 느낌이다. 부정적인 표현은 아니다. 내가 한창 성당을 열심히 다닐 때 가장 좋아했던 시간이 신부님 말씀시간이었으니까.

라틴어 명언의 꼭지별로 전해주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잔잔히 위로가 되었다.


세네카의 『도덕에 관한 편지Epistolae morales』에는 '사람은 가르치며 배운다Homines, dum docent, discunt'라는 말이 있습니다.
<6쪽>


학문을 한다는 것은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앎의 창으로 인간과 삶을 바라보며 좀 더 나은 관점과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배운다."
<56쪽>


우리는 다른 사람을 관찰하듯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관찰합니다. 다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못할 뿐이죠. 특히 자신의 단점에 대해서는 더 모르는 척합니다. 자신의 약점과 맞서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61쪽>


"강을 건너고 나면 배는 강에 두고 가야 한다."
본래 장점이었던 것도 단점이 되어 짐이 되었다면 과감히 버려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63쪽>


중요한 것은 무엇이 메리툼이고 데펙투스인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성찰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곁가지를 뻗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내 안의 땅을 단단히 다지고 뿌리를 잘 내리고 나면 가지가 있는 것은 언제든 자라기 마련입니다.
<64쪽>


삶이란 끊임없이 내 안의 메리툼과 데펙투스를 묻고 선택하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66쪽>


평가 언어가 모두 긍정적인 표현입니다. '잘한다/보통이다/못한다'식의 단정적이고 닫힌 구분이 아니라 '잘한다'라는 연속적인 스펙트럼 속에 학생을 놓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겁니다. 이렇게 긍저적인 스펙트럼 위에서라면 학생들은 남과 비교해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거나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스스로의 발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닌 '전보다' 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유럽 대학의 평가방식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74쪽>


중세 시대의 사람들은 성경의 가치는 유념하되, 세속의 학문과 연계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100쪽>


중세 사람들은 성경의 가치를 변함없이 인정하고 유념하면서도 세속의 학문과 연계해서 문제를 풀고자 했어요. 이것이 유럽에서 대학이 탄생하게 된 배경입니다.
<245쪽>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허무함을 느낍니다.
<136쪽>

'내가 원하는 것은 이거다'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달려갔다가, 막상 이루고 나서야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기도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에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달려본 사람만이 압니다. 또 그게 내가 꿈꾸거나 상상했던 것처럼 대단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만큼 불필요한 집착이나 아집을 버릴 수도 있어요. 그만큼 내가 깊어지고 넓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치열하게 달려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공부든 사랑이든, 일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럴 수 있는 뭔가를 만나고 그만큼 노력을 한 다음에 찾아오는 이 우울함을 경험해보기를 바랍니다. 그러고 나면 아마도 또 다른 세계가 여러분 눈앞에 펼쳐질 겁니다.
<137쪽>


호라티우스가 속했던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주의를 지향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들이 추구한 쾌락은 세속적이고 육체적이며 일시적인 쾌락이 아니라 정신적인 쾌락, 다시 말해서 충만한 삶과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영혼의 평화로운 상태, 동양식으로 표현하자면 안분지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호라티우스의 '오늘을 즐겨라'라는 의미도 당장 눈앞의 것만 챙기고 감각적인 즐거움에 의존하여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매 순간 충만한 생의 의미를 느끼면서 살아가라는 경구입니다.
<162쪽>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내지 않는다.
Letum non ominia finit.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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