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적 배려 때문에 사실을 왜곡했다”



‘일본 고유 영토’ 표기 주장하는 ‘새역모’ 후지오카 노부카츠 회장 인터뷰


▣ 도쿄=글·사진 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 후지오카 노부카츠 회장




“외교적 배려도 역사 왜곡이다.”
단호했다. 묘한 만족감과 자신감도 엿보였다. 자신들의 주장이 국가의 방침이 됐으니, 한껏 힘을 받을 만했다. 그래서다. 조금 두렵기도 했다. 극우적 사관으로 무장한 후지오카 노부카츠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쓰쿠루카이) 회장(65)은 “다케시마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일본의 교육 주권에 관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지난 7월18일 도쿄 분쿄구 혼고 새역모 사무실에서 1시간 남짓 후지오카 회장을 만났다. 후지오카 회장이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문제가 명기됐는데.
=다케시마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일본의 고유 영토다. 이번엔 처음으로 법적 구속력도 없는 해설서에 실으면서, 문서화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였다. 기왕 문서화할 거라면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써야 한다는 게 우리 입장이다. 이 점을 ‘외교적 배려’라는 말로 철회한 것에 대해선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대대적으로 환영할 줄 알았는데, 유감이라니 뜻밖이다.
=뭐, 기쁘기보다는 당연한 거니까. 우리 입장에서 보면 내용적으로 특별할 게 없다. 오히려 ‘외교적 배려’ 때문에 사실을 왜곡한 게 문제다.
그 ‘배려’에 대해 한국에선 말도 안 된다고 보는데.
=한국에서 그렇게 반응한다 해도 별수 없다. 그렇지만 하나만 묻자. 그렇게 말하는 한국은 일본에 대해 무슨 배려를 하고 있나?
왜 하필 두 나라 정상이 ‘한-일 새 시대’를 말하는 시점에서 이번 발표가 나왔다고 보나.
=전부터 교과서 검정에서 고유 영토로 기술하게 돼 있었다. 외무성 홈페이지에도 그렇게 나와 있고, 교과서 검정에도 그렇게 됐다. 학습지도요령에 분명히 명기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므로 문부성이 이번에 하려고 했는데, 한국이 반발하니까 외교적으로 ‘고유 영토’란 표현을 넣는 것을 연기한 것이다.
한국에선 지지율이 낮은 후쿠다 총리가 ‘우파의 압력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일’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언론 보도야 다 만들어지는 것이고, 빗나간 억측이라 본다. 지금까지의 방침을 확실히 하기 위해 문서화한 것일 뿐이다. 명백히 일본 영토라고 기술하지 않고 ‘양국 주장에 차이가 있다’는 식으로 썼다. 영유권 문제가 정치·외교 문제에 좌우돼선 안 된다. 영토 문제 교육엔 근본이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이번 발표에 대한 반발이 거센 이유가 뭐라고 보나.
=글쎄, 한국은 원래 그래왔지 않나. 영토 문제에서는 타협이 없다고 생각한다. 당신 나라에서도 타협할 생각이 없지 않은가? 우리도 타협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전쟁을 해야 하나?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서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다.
재판에서는 이길 수 있다고 보나.
=당연하다. 일본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건 역사적으로 증명된다.
근거가 뭔가.
=(웃음) 이 자리에서 애기하자면 시간이 걸리니까 그만두자.
1929년 일본 사회과부도에도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나오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자리, 다른 기회에 하자. 철저히 제대로 된 자료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자.
왜 지금까지 국제법에 호소하지 않았나.
=주장이 다르다는 게 명백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신네 나라에서 어떻게 국민에게 교육하고 있는지를 문제 삼아 괘씸하다고 난리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마찬가지로 일본도 일본 입장이 있으니 다케시마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일본의 교육 주권에 관한 문제다.
앞으로 역사·영토 문제에 대해 어떤 활동을 해나갈 생각인가.
=일본 젊은이들이 외국에 나가서 자기 나라의 역사를 자기 언어로 잘 이야기하지 못한다. 일본이란 나라가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외국에 없는 고유의 제도나 특징, 예를 들면 천황·황실이 있다는 것, 그게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일본 문화의 특징은 어떤 것이 있는지 제대로 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문부성도 같은 인식이다. 우리의 주장이 국가의 방침이 됐다. 영토 문제는 역사와 관련돼 있고, 지리·공민 과목과도 관련이 있다. 국가 주권의 가장 근본이 되는 문제다. 정확히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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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영혼 없는 유령이 배회한다



▣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유령 하나가 반도 남쪽을 배회하고 있다. 그 유령의 재주는 영혼 없는(혹은 없도록 강요받는) 무리들을 홀리는 것. 유령은 모든 걸 바꾸라며 피리를 분다. 그리고 반도 남쪽은 가락에 맞춰 춤을 춘다. 행정안전부는 이전 정부의 훈령과 지침 등을 한꺼번에 폐지하기로 했고, 교육과학부는 ‘좌편향된’ 사회·역사 교과서를 바꾸기 위한 검토에 착수했다. 13세기 독일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는 약속을 위반한 위정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피리 소리로 마을 아이들을 꼬드겨 데려갔다. 반면 21세기 반도 남쪽 유령의 피리 가락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복수가 목적이다. 잃어버린 10년을 찾기 위함인가. 유령은 세계 최장 노동시간으로도 모자라 ‘일찍 일어나는 새’ 바람까지 일으킨다. 순진하게 ‘피리 사내’를 뒤따랐던 아이들은 지금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유령이 데려갔나. 두 명의 이주노동자가 반도 남쪽에서 사라졌다. 5월15일 저녁 8시50분 인천공항. 서울·경기·인천 지역 이주노조의 토르너 림부(네팔) 위원장과 압두스 사부르(방글라데시) 부위원장은 방콕행 비행기에 강제로 태워졌다.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원들에게 붙잡혀 청주보호소에 감금된 지 13일 만이다. 지난해 11월 단속된 당시 지도부 3명이 인권위에 진정을 내고도 강제 출국당한 아픈 경험이 있는 이주노조는 이번엔 더 다급하게 인권위에 긴급구제 신청을 한 터였다. 이날 오전 국가인권위원회는 표적 단속으로 이들의 인권이 침해됐는지를 가리기 위해 강제 출국을 유예하라는 긴급구제 결정을 내렸으나 소용없었다. 이쯤에서, 영혼 없는 유령이라도 품음직한 의문이 든다. (1) 이주노조 합법화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21만여 미신고 이주노동자 가운데 하필 지도부 두명만 단속·감금되고 강제 출국당한 까닭은? 참고로, 서울고법은 지난해 2월 서울지방노동청이 이주노조 설립신고서를 반려한 건 부당하다며 신고필증을 내주라고 판결했다. (2) 정부 합동단속 이틀 만에 10여 명의 단속반원이 집 앞에 잠복하다 이들을 붙잡은 건 표적 단속일까, 아닐까? 국제앰네스티는 이번 사건을 이렇게 규정했다. “대한민국 헌법이 보호하는 기본적 노동권과 결사의 자유를 그들에게서 박탈하고, 전체 이주노동자들이 이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위협하려는 정부의 시도”라고.

반도 남쪽과 프랑스의 차이는 뭘까. 두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사라진 그날, 프랑스에선 5만여 명(주최 쪽 주장, 경찰 발표는 1만8천여 명)의 교사와 10대 고등학생들이 파리 시내를 관통하는 시위를 벌였다. 공공 지출을 줄이기 위해 교원을 대폭 감축하려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 나라 학교의 학생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사와 교감들이 학생의 시위 참가를 막으러 나섰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다음날 서울시교육청은 중·고교 교감 670명과 장학사 222명 등 892명을 5월17일 촛불집회 현장에 내보내 학생지도에 나설 것이라고 발표했다. 유령이 보기에 학생부 교사들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경찰의 정보과 형사는 집회를 신고했다가 취소한 전주의 한 고등학생을 수업 중 불러내 겁주고, 임기를 보장받은 경찰청장도 시위대 겁주기에 여념이 없다. 카를 마르크스가 이 광경을 봤다면 이랬을까? “국민의 먹을거리 안전과 반도 남쪽의 인권을 걱정하는 촛불들이여, 단결하라. 잃을 건 사슬뿐이요, 얻을 건 세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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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 60주년] 뉴라이트 교과서의 반란



제주 4·3 사건을 ‘좌파 세력의 반란’으로 규정한 <대안교과서> 출간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포럼이 출간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이하 대안교과서)가 제주를 분노로 들끓게 하고 있다. 4·3 사건을 ‘좌파 세력의 반란’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대안교과서>는 144~145쪽에서 제주 4·3 사건을 ‘좌파 세력의 반란’으로 규정한다. “남로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정치 세력이 대학민국의 성립에 저항했으며 이들이 1948년 4월3일에 제주도에서 무장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또한 이 사건은 “김일성의 ‘국토완정론’(남한을 미국 지배에서 해방시켜 국토를 완정하겠다는 이론) 노선에 따라 일어난 것”이며 “이같은 무장반란과 사회 각층에 광범히 침투한 좌파 정치 세력에 대처하고자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구닥다리 ‘4·3 폭동론’ 그대로 들고와”

이에 제주 4·3연구소는 “지금까지 많은 자료 분석이 있었지만 김일성은 물론 남로당 중앙당이 4·3 사건에 개입한 근거조차 제시되지 않고 있다”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발발한 사건이 ‘반란’이라면 그것은 누구를 대상으로 한 ‘반란’이냐”고 따져물었다.
역사적 시점의 혼돈도 지적됐다. 산간지대 초토화 작전은 정부 수립 이후 감행돼 당시 군 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에게 1차 책임이 있는데도 <대안교과서>가 오로지 미군정청만 언급한 데 대해, 4·3연구소는 “뉴라이트가 대한민국 건국자·수호자로 미화하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흠집을 남기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또 “북한 정권이 세워지기도 전에 일어난 4·3 사건이 어떻게 김일성 정권 수립 이후에 나온 ‘국토완정론’의 노선을 따랐단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안교과서>의 책임편집을 맡은 이영훈 교수는 <한겨레21>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4·3 사건을 남로당이 주도했다는 것은 자료가 다 있으나 그걸 일일이 말할 순 없지 않느냐”며 “나는 경제사 전문가고 전공자가 아니니 세세한 부분은 말할 처지가 못 된다”고 했다. 또 “제주 4·3연구회가 낸 성명서는 읽어보았으나 아직 그에 대해 구체적인 의견은 없다”고 말했다. 교과서 집필자 12명 중 역사 전공자가 한 명도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역사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냐, 그런 말 하지 마라”고 답했다. 다만 “앞으로 토론이 일어나고 비판이 있으면 바꿔나갈 것이니 기다려달라”고 덧붙였다.
4·3연구소 박찬식 소장은 “보수우익 세력이 정권교체기를 틈타 구닥다리 ‘4·3 폭동론’을 그대로 들고 나와, 특별법이 제정되고 대통령이 공식 사과까지 한 4·3 사건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대안교과서>를 폐기하고 4·3 영령 앞에 사죄하지 않으면 제주도민과 4·3 유족의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 정당의 비난 성명도 잇따르는 가운데, 성명을 내지 않은 한나라당 제주도당의 대변인조차 “교과서 내용이 한쪽에 치우쳤다. 진상 규명이 진행 중인 사건을 전문가도 없이 이념의 잣대로만 재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안교과서 막아달라’ 인터넷도 후끈

분노는 인터넷을 타고 제주를 넘어섰다. 누리꾼들은 포털 사이트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좀 막아주세요’란 제목의 청원을 올렸다. 1만 명 서명을 목표로 3월25일에 올라온 이 청원에는 하루 만에 4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같은 날 ‘뉴라이트 교과서를 정식 교과서로’란 청원도 올라왔지만 200여 명이 서명했을 뿐이다. 제주의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앞으로 제주 지역 단체들이 <대안교과서> 사건을 쟁점화해나갈 것이고 조만간 유족들도 문제 제기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60년 세월이 지났건만 4·3은 여전히 피투성이이다.



[제주 4·3사건 60주년] 오사카의 증언 “학살의 섬에서 살아남았다”
[제주 4·3사건 60주년] 피해 인정 못 받고 죽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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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발해를 동족으로 생각했나



팽팽한 대결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신라는 발해를 ‘오랑캐’로 폄훼… 고대인들의 의식에 ‘남북국 시대’는 없어

▣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최근 국사 교과서에서까지 발해와 통일신라의 시대를 남북조 또는 남북국 시대로 일컫곤 한다. “고구려도 신라도 다 같이 우리 한민족이었다”는 설명과 “발해는 고구려 유민이 세운 나라였다”는 설명을 논리적으로 연결시키면, 학생들은 발해와 신라 사이에 마치 오늘날 남북한과 마찬가지로 ‘민족적 동질성 인식’이 존재했으리라고 결론 내리기가 쉽다. 신라와 발해의 관계가 별로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학생들은 ‘남북한과 마찬가지로, 국가적으로는 대립해도 민족적으로는 동질성을 느꼈으리라’고 짐작할는지도 모른다. 과연 오늘날 남북한 시대와 비교될 만한, 문화적 동질성에 기반을 둔 남북조 시대가 존재했던가? 과연 신라인들이 본 발해인은 ‘동족’이었던가?



△ <다민족국가의 아름다움>발해의 문화는 당나라나 신라에 뒤지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발해 도깨비 기와. (사진/ 한겨레 이종근 기자)




1차 자료를 보면 대답은 명쾌하다. 신라인들은 발해 건국에서 말갈족들이 한 역할과 아울러 발해와 고구려의 계승 관계도 잘 인식했지만, 발해인들에 대해 정치적인 적대감을 넘어 문화적인 이질성까지 느꼈다. “신라, 고구려, 발해가 다 한민족 계통”이라는 생각은 20세기 민족주의 사학의 ‘상식’으로 통해도 7∼9세기 고대인들의 머리에 든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발해를 ‘올빼미’라 욕한 최치원

897년 당나라와 신라, 발해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다 같이 말기적 위기로 접어드는 시절에 이 세 나라 사이에 주목을 끌 만한 외교적 사건이 터졌다.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새해를 축하하는 김에 발해 왕자가 신라보다 발해의 국세가 더 강성하다는 이유를 들어 당나라 조정에서 외빈을 접견하는 순서에서 신라보다 발해가 우선돼야 한다는 요구를 과감히 한 것이다. 당나라 황제 소종(昭宗·889∼904)이 전통적으로 발해보다 신라가 당 제국에 훨씬 더 가까웠다는 사실을 인식해서인지 이 요구를 거부하자, 당에서 오래 머물렀던 신라의 최치원이 신라 조정의 이름으로 소종에게 장문의 글을 보내 당나라의 ‘신라 사랑’에 감사를 표하면서 발해에 대한 신라의 태도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사불허북국거상표’(謝不許北國居上表·북쪽 나라가 윗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심에 감사를 드리는 글)라는, <동문선>(東文選·1478)에 실릴 만큼 후대에 명성을 떨쳤던 이 글에서 발해의 기원은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 <다민족국가의 아름다움>발해의 문화는 당나라나 신라에 뒤지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발해인들의 온돌 유적.




“발해의 원류는 고구려가 망하기 전에 본래 사마귀만 한 부락이었고, 말갈의 족속이 번영해지자 그 무리 중에 속말이라는 작은 변방 부족이 있어 항상 고구려를 복종해왔는데, 그 수령 걸사우 및 대조영 등이… 문득 황야 지역을 점거하여 비로소 진국(振國·발해 초기 명칭)이라 명명됐다. 그때 고구려의 남은 무리로서 물길(勿吉·말갈) 잡류의 올빼미들은… 처음에 거란들과 손을 잡아 악을 행하고 또 이어서 돌궐(突厥)과 통모하여… 여러 번 요수(遼水)를 건너서 항쟁을 했다가 늦게야 중국에 항복했다.”
‘사마귀만 한 부락’이나 ‘올빼미’ ‘행악’ 등의 수식어들은 발해에 대한 최치원의 정치적 적대심이 어느 정도였나를 보여주고 있으며, 발해 건국 집단과 고구려의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자꾸 ‘말갈의 무리’를 강조해 그 ‘무리’와 거란 또는 돌궐(터키족 계통의 유목민 제국)과의 연관성을 부각시키는 것은 발해를 문화적으로도 이질시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고구려 정도야 최치원도 삼한(三韓) 중 하나로, 즉 신라와 어느 정도 문화 수준이 같은 존재로 간주했지만, 말갈이나 거란, 돌궐 등 북방 종족들은 그에게는 ‘문화 영역 바깥의 오랑캐’에 불과했다. 발해에 대해서도 애써서 ‘오랑캐’라는 딱지를 붙이려 했다. 비유적 표현의 거장이었던 그는, 신라에 대해 ‘무궁화 꽃이 피는 고향’(槿花鄕·근화향)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그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나타내지만 발해에 대해서는 고작 ‘싸리나무로 만든 화살의 나라’ 정도로 대접을 한 것이었다.




△ <다민족국가의 아름다움>발해의 문화는 당나라나 신라에 뒤지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석가와 다보 두 여래가 나란히 앉은 모습을 표현한 이불병좌상. (사진/ 한겨레 이종근 기자)




고대 중국인들은 ‘싸리나무로 만든 화살’을 활쏘기에 능했던 북방 숙신(肅愼)족의 특산품으로 인식했는데, 최치원이 바로 이와 같은 인식을 상기시켜 발해가 ‘오랑캐’ 숙신과 다를 게 없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이 주장은 최치원의 개인적 견해만은 아니었다. 신라 시대의 일차 사료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서도 발해를 신라의 북쪽에 있다고 해서 지리적인 차원에서 ‘북국’으로 부르는가 하면 ‘북적’(北狄), 즉 ‘북쪽의 오랑캐’라고 비칭하기도 했다. 신라 지배층이 보기에는 발해라는 존재는 ‘문명적 질서 바깥’에 있었던 것이다.
과연 신라 지배자들이 발해를 오랑캐로 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당시 한자 문화권의 잣대로 재단되는 발해 문화의 수준이 낮아서 그렇게 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최치원 자신이 중국의 한 친지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875년에 발해의 오소도(烏炤度)라는 유학생이 신라 유학생 이동(李同)보다 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따서 수석의 영광을 차지한 것을 ‘신라의 부끄러움’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던가? 최치원 자신을 포함한 신라 출신 당나라 유학생들에게 통상적인 경쟁 상대는 바로 발해 유학생들이었으며, 최치원은 그들에 대해 날카로운 경쟁 의식을 가졌던 만큼 적어도 그들의 글짓기 실력을 무시하지 못했던 듯하다. 최치원이 평소 상대했던 당나라 지식인들도 발해를 ‘문화 후진국’이라고 깔볼 리는 없었다.

발해 침공에 늘 긴장 상태

712년 당에 온 발해 사신이 절에서 예불을 볼 권리부터 요구하고, 738년에는 발해 사신이 <삼국지> <진서>(晉書) 등 특정 역사 서적의 복사를 요청할 정도로 당나라와의 관계에서 ‘종교’와 ‘문화’를 앞세우지 않았던가? 마찬가지로, 758년 일본을 방문한 발해의 대사 귀덕장군 양태사는 일본인들에게 무엇보다 한시를 잘 짓는 시인으로 기억됐다. 즉, 최치원과 같은 신라의 대표적 지성인들이 발해에 대한 ‘문화적 멸시’를 애써 드러냈던 것은 발해의 후진성보다는 신라 쪽 사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다민족국가의 아름다움>발해의 문화는 당나라나 신라에 뒤지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발해 석등.





첫째, 발해가 고구려에 대한 계승 의식을 나타내는 것이 신라로서는 문제였다. 부여 계통의 고구려와 남쪽 한(韓) 계통의 신라가 언어와 풍속이 상당히 달라 이질성이 강한데다, 5세기 말부터 고구려의 망국인 668년까지 거의 한 세기 반 동안 쉴 새 없이 치열한 전쟁을 치른 바 있어 신라인으로서 고구려를 좋게 보기가 힘들었다. 고구려에 대한 이질감과 적대감은 쉽게 발해에 대한 악감정으로 이어졌다. 838∼848년 당나라를 여행했던 일본 고승 엔닌(圓仁·794∼864)이 그 유명한 <자각국사입당구법순례행기>(慈覺國師入唐求法巡禮行記)라는 기행문에서 재당(在唐) 신라 승려들이 매년 8월15일에 ‘발해에 대한 신라의 옛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큰 잔치를 벌인다는 기록이 있다. 아마도 ‘8월15일의 승리’는 발해가 아닌 고구려에 대한 신라-당나라 연합군의 승리(668년)를 가리키는 듯한데, 신라인의 의식 속에서 발해가 고구려와 같은 계통의 나라로 인식됐기에 ‘발해에 대한 승리 기념’이라고 와전됐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고구려는 신라의 적국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항복한 적국이 아니었던가? 망국 이후에도 당나라에 대한 저항을 계속하던 고구려 왕족 안승이 683년 신라의 고급 관직인 소판(蘇判)과 김씨 성을 하사받아 신라의 금마저(익산군)에서 살게 되고, 고구려 유민 일부로 신라군의 특설 부대인 황금서당이 구성됐다. 나중에 금마저에서 고구려 유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진압을 당하기도 했지만, 귀순한 고구려 관료들이 신라에서 채용되곤 했다는 기록으로 봐서는, 신라는 고구려 세력들이 이미 귀부(歸附)해 통일신라의 일부분을 이루었다고 여긴 것처럼 보인다. 물론 신라 쪽의 일방적인 시각이었지만, 신라 지배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자랑했던 ‘삼한일통’(三韓一統)의 과정에서 고구려 사직(社稷)이 신라에 통합됐다는 것이다. 이런 의식의 소유자들이 ‘고구려 계승’을 내세운 발해를 과연 ‘고구려 명의를 도용·참칭하는 세력’ 이상으로 볼 수 있었겠는가? 바로 그러기에 신라인들은 발해 건국 과정에서 고구려 유민과 함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것이 말갈 집단이었다는 사실에 착안해 발해를 (고구려가 아닌) ‘오랑캐 말갈’과 연결하는 것을 선호했다. 더군다나 5세기 중반 이후로 고구려의 간접 지배를 받은 말갈 부족이 고구려의 신라 침략의 첨병으로 앞장서왔기에 이들에 대한 신라인들의 평소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러한 차원에서 발해를 ‘오랑캐 말갈’로 부른다는 것은 반(反)발해 선전의 효과적 방법이었다.



△ <다민족국가의 아름다움>발해의 문화는 당나라나 신라에 뒤지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중국 훈춘에서 출토된 삼존불.




둘째, 현실 세계에서도 상징의 세계에서도 발해는 일관되게 신라의 철저한 경쟁자였다. 현실적으로는 8세기 초 팽창을 거듭했던 발해에 대해 신라가 비상한 위기 의식을 갖고 721년 북쪽 국경에서 장성을 쌓는 등 북쪽의 침공에 준비 태세를 갖추었다. 732년 발해가 당나라를 공격하자 신라가 당나라의 부름에 적극적으로 응해 733년 당나라와 함께 발해를 협공한 배경에는 신라가 당나라의 도움에 힘입어 한강과 대동강 사이의 북쪽 변경 지역을 발해로부터 지키려는 의지가 깔려 있었다. 이에 대한 일종의 보복으로 발해도 750년대 초반부터 신라와 일본의 관계 악화를 이용해 758년부터 일본과 손잡고 신라를 협공하려는 계획을 추진했는데, 결국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신라로서는 악몽 같은 발해·일본과의 동시 전쟁이 현실화되지는 않았지만, 신라는 패강진(浿江鎭), 즉 대동강 이남 국경 지역에 있는 특수 행정 구역의 방어가 늘 초미의 관심사였다.

다민족 국가의 다양성은 귀중한 가치

발해와 첨예한 대결을 벌이던 신라로서는 당나라와의 밀착 관계가 국경 안보의 결정적인 보장이었는데, 당나라와 발해가 서로 접근하는 데 찬물을 끼얹기 위해서도 발해 건국 집단의 일부인 말갈의 ‘야만성’을 부각시키는 것은 하나의 ‘선전 전략’이었다.



△ 최치원의 초상. 최치원은 당나라의 신라 사랑에 감사를 표하면서 발해를 ‘올빼미들’이라 욕하는 글을 남겼다. (사진/ 권태균)





상징의 세계에서는 신라도 발해도 각각 자국을 ‘문화 영역의 중심’으로, 상대방을 ‘문화 영역 바깥의 야만인’으로 간주했는데, 이들 자국 중심적 세계관 사이의 타협의 여지는 적었다. ‘구이’(九夷), 즉 주변의 모든 세력 위에 군림하려는 신라 지배자들의 야망을 담은 황룡사 구층탑이 신라 중심의 세계관을 표현했다면, 황제 명칭과 독자적인 연호 사용,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천손(天孫)임을 주장한 점 등은 발해의 자국 중심적 세계관을 표현했다. 양국 사이에 일정한 교역은 행해졌지만 불교 교단들 사이의 교류라든가 기타 문화 교류는 거의 기록돼 있지 않다. 국가 지배 세력들과 긴밀히 밀착돼 있는 양국 승려 등도 국가적인 경쟁 관계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야 ‘한민족’이라는 근대적 틀을 고대에 소급해 발해와 통일신라를 동질적 ‘남북조’로 인식하는 게 쉽지만 이는 당대 사람들은 물론 후대인의 역사관과도 상충된다. 노골적으로 ‘신라 중심주의적’ 시각을 드러내는 <삼국사기>는 물론, <삼국유사>나 <제왕운기>마저도 발해를 ‘속말(粟末) 말갈’로 분류하고 발해 전말의 주요 사실만 간략하게 적는 등 발해사를 고작해야 ‘우리 역사의 방계(傍系)’쯤으로만 보는 일관된 태도를 보였다. 발해와 팽팽한 긴장을 푼 적이 없었던 신라는 공식적으로 발해를 오랑캐 이상으로 보려 하지 않아 발해 문화에 대한 자료를 거의 남기지 않았으며, 신라의 사료에 의존했던 고려 등의 사학자도 발해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신라와 발해가 ‘남북조’가 아닌, 서로에게 이질적인 경쟁 국가였다고 해서 부끄럽게 생각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발해의 문화는 비록 신라와 많이 다르고 잘 소통하지 않았다 해도, 발해인들을 ‘친척’으로 대접한 금나라 등 많은 후대 국가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등 그 역사적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신화뿐인 ‘고대 한민족의 동질성’보다는, 다민족 국가인 발해가 상징했던 다양성이 더 귀중한 가치가 아닌가?

참고 문헌

1. <한국 고대사와 말갈> 문안식, 혜안, 2003
2. <발해의 대외관계사> 한규철, 신서원, 1994
3. <발해제국사> 서병국, 서해문집, 2005
4. <삼국유사> 일연 지음, 허경진 옮김, 한길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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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 점수를 매기지 마라”



‘아노미’에 던지는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의 해법… “일정 기량을 갖추면 ‘패스, 논패스’로 처리하자”

▣ 글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아 유 식?” “아임 파인.”
지난 1월29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영어유치원. 꼬마들이 병원놀이를 하고 있다. 5·6·7살 반마다 한국인 교사와 영어민 교사가 나란히 배치돼 있다. 6살 아이가 복도에 혼자 책상을 놓고 앉아 테스트를 받고 있다. 연말 평가시험을 치르지 않아서라고 한다.

부모들이 테스트 해달라는 영어유치원

놀이를 위주로 한 언어발달을 교육철학으로 하고 있지만, 이 유치원도 지난해부터는 ‘텍스트북’을 이용한 학습을 교육과정에 40% 가까이 활용하고 있다. 학부모들의 요구 때문이다. 한아무개 원감은 “처음 애를 데리고 올 때는 ‘무조건 즐겁게 놀려주세요’라던 학부모들도 시간이 지나면 아이의 영어 실력이 다른 애들과 비교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한다”며 “테스트를 봐달라는 요구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시험을 보되 답안지를 그대로 접어 보내주는 방식으로 ‘타협’ 한다고 했다. 점수나 등수는 매기지 않지만 학부모들은 누가 1등인지 바로 안다.



△ 초등학교 취학 전부터 영어 경쟁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영어 정책은 ‘영어 카스트’를 더욱 고착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서울 서초구의 한 영어유치원에서 영어 일기를 쓰는 6살 아이 모습.




학부모들이 조바심을 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서 영어는 단순한 소통의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어는 입시, 취업, 고시, 승진 등 인생의 경로마다 ‘수문장’(게이트키퍼)으로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그런 탓에 취학 전부터 영어 경쟁에 내몰리고 온 국민이 영어 몸살을 앓는다. 한 원감은 “테스트를 자주 하는 일부 영어유치원 얘기를 들어보면 시험날이면 멀쩡하던 애가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며 유치원에 빠지는 일도 있다”며 “실력평가 위주의 교육은 아이들의 정서는 물론 실질적인 학습력에도 좋지 않다는 것을 학부모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가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안 그래도 영어 몸살을 앓는 온 국민이 일순간에 ‘영어 블랙홀’로 빨려들어갔다. 인수위의 방안은 학교에서 영어를 제대로 가르쳐, 사교육비를 줄이고 누구나 고등학교만 나오면 외국인과 대화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5년 안에 영어 전용교사 2만3천 명을 새로 채용하고 △말하기·쓰기 교육을 위주로 한 영어 수업 시간을 늘리고 △수능 대신 실용 영어가 강화된 국가 영어능력 평가시험을 치르게 하며 △2010년 중3·고1을 시작으로 2012년 모든 중·고교에서 영어 수업은 영어로 하겠다고 밝혔다. 집권 기간 5년 동안 4조원을 영어 교육에 쏟아붓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정책이 발표되자마자 벌집 쑤신 듯 항의와 우려가 쏟아졌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적극 지지했던 뉴라이트 학부모연합조차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우려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교육에서 ‘해방’될 학부모들과 교사들은 걱정이 크고 ‘억제’돼야 할 사교육 시장은 들썩이는 분위기다. ‘영어 카스트’를 고착화해 ‘대한민국 1%’를 위한 정책이라는 얘기도 공공연하다. 사교육비를 줄이고 영어 실력을 기르겠다는 좋은 취지의 정책이 왜 이렇게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것일까.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영어의 ‘거품’을 걷어내지 않고, 근거 없는 주장과 편견과 일부의 경험을 과도하게 일반화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인수위의 방안이 영어의 ‘사회적 가중치’와 이로 인한 ‘계층 격차’에 대한 성찰이 없다는 점에서 ‘위험한 시도’라고 지적했다. 또 영어 공교육 전문가나 교육 주체들의 참여가 배제된 채 ‘주먹구구식 접근’이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가령 우리 사회에서 영어가 실제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지, 학교 영어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어느 정도의 성취를 보여주는지 최소한의 기본 자료조차 없이 정책을 세운 결과, 교육 현장에 적용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운 방침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한겨레21>은 새 정부의 영어 정책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공적 목표를 수행하는’ 공교육의 기본 정신에 따라 수립되기를 바라며, 논의의 진전을 위해 이병민 교수와의 인터뷰를 전한다. 이 교수는 “입시에서 영어를 빼거나, 일정 기량을 갖추면 패스, 논패스(합격, 불합격) 처리해 그 이상의 배점을 하지 않는 게 영어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고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기르는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및 테솔 과정 주임교수를 역임했고, 교육인적자원부 영어과 교육과정 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새로 쓴 2009년에 사용될 계획



△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영어의 쓰임새가 필요 이상 부풀려졌다며, 입시에서 자격 시험 정도로만 평가해야 실용 영어 실력은 늘고 사교육은 줄일 수 있다고 제안한다.






교육인적자원부 조사를 보면 초등학생 때는 영어를 재미있어하다 중·고교로 진학할수록 흥미가 현격하게 떨어진다.
=입시 스트레스 탓이다. 지금의 영어 논란은 어찌 보면 바람직하다. 우리 공교육의 밑천이 다 드러나니까. 하지만 발표 내용을 보니 공교육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것 같다. 영어 교사들이 얼마나 잘 양성되고 있고 질이 우수한지조차 모르고 있다.
영어를 영어로 가르치고 다양한 교재나 평가 방식을 개발하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노무현 정부 때도 영어 교육을 무지하게 강화했다. 교과서도 의사소통을 강화해 3년 동안 검토하고 중1·고1 과정은 새로 썼다. 올해 심사하고 2009년부터 쓰인다. 이 교과서의 질, 아주 좋다. 교과서 하나 만들려면 수정·고시·제작·심사·실행 등 최소 5년이 걸린다. 인수위의 제일 큰 문제는 이런 데이터에 기반하지 않고, 외국 교재를 들여온다는 식의 얘기부터 하는 것이다. 지금도 듣기·읽기 평가는 다 마련돼 있다. 수능 영어를 대체하겠다는데, 공정하고 신뢰할 만한 평가란 일정을 정해놓고 돈 퍼붓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영어는 노출 환경이 중요하다고 한다. 몰입 교육 얘기를 꺼냈다가 번복하긴 했지만, 어떤 환경이 필요할까.
=학자로서 왜 몰입 교육을 생각해보지 않았겠나. 그러나 교육과정의 문제인지, 사회적 환경의 문제인지 판단해야 한다. 영어교육을 가르치는 나조차도 웹 검색을 하거나 전공서적 볼 때, 강의 때 빼고는 영어를 쓸 일이 없다. 통신회사 임원인 친구가 영어 타령을 하기에 물어봤다. 얼마나 영어를 쓰냐? 1년에 한두 번이라고 하더라.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간부회의 때 통역이 붙는데, 유학했거나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통역 없이 질문을 던지면 분위기가 싸늘해진단다. 주눅 드는 거다. 그 느낌이 싫어서 ‘영어, 영어’ 하는 거다. 문제는 그런 문화에서 한두 마디 영어 잘하기만 해도 승진 같은 데 영향을 끼친다는 거다. 실제 쓸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어떤 지표랄까 권력이 돼 온 나라가 ‘영어, 영어’ 하는 것이다. 적어도 국가 차원의 정책이라면 이런 부풀려진 관념은 걸러야 한다. 그런데 인수위는 아예 그 관념에 기반해 정책을 내놓고 있다.

영어 잘해서 콜센터 짓겠다는 건가

대통령 당선자는 영어가 곧 경쟁력이라 하고, 이번 정책도 그런 취지에서 나왔다고 한다.
=대학원생이 시험 답안지에 “우리는 매순간 영어와 숨쉬고 있다”고 써놨더라. 그건 환상이다. 국민이 먹고사는 데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런데 정치권과 일부 줄서기하는 학자들, 신문·방송이 필요하다고 부풀려놨다. 정부 부처, 기업, 사회 각 분야에서 얼마나 영어를 쓰고 필요한지 실태조사라도 된 게 있나. 영어 많이 한다고 국가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증거가 있나? 말레이시아의 예를 들던데, 그 나라는 말레이어, 중국어, 인도타밀어 3개가 공식 언어다.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고유의 말레이어로는 학문이 불가능한 나라다. 그래서 대학에서 영어를 쓰고 고교에서도 가르친다. 그런 국가의 역사나 여건을 어떻게 이런 식으로 무시하고 단편적으로 내세우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핀란드는 인구가 500만 명이고, 자기네 언어로만 살아본 경험이 없는 바이링궐(bilingual·두 나라 말을 하는)족이다. 유럽에서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그리스를 봐라. 영어 잘 못한다. 통일국가의 정체성을 유지해왔고 인구가 많고 모국어가 명백한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굳이 수출 경쟁력을 높이려면 교역 상대국 분포를 고려해 외국어 전문인력을 길러내면 된다. 베트남에 장사할 때 영어 잘하면 되나? 그 나라 말, 로컬 언어를 써야지.





모든 국민이 영어를 잘할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영어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수용해야 할지 논의도 합의도 답도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공교육 강화는 관념적이고 위험한 짓이라는 얘기다. 고교 졸업하면 생활영어 술술 하게 하겠다는 목표도 허상인 것이, 멀티링궐(multilingual·다중 언어의)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과 같은 실력이 될 수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사회 각 경로마다 필요 이상 영어의 혜택이 이렇게 높은데, 국민의 기대 수준을 대책 없이 높여놓고는 그걸 공교육 안에서만 감당한다고? 멍청하거나 사기치는 거다.
‘영어 카스트’를 공고히 한다는 주장인가.
=이번 정책이 나온 뒤, 연수 다녀온 사람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영어 사교육 시장 규모를 볼 때 괜히 불 지르면 안 된다. 신중하고 거시적으로 짜야 한다. 지금도 영어 잘하는 애들은 꽤 있다. 하지만 정작 쓸 사람이 없다. 아주 잘하는 사람이 없다. 외교적으로 활용하거나 교과서 만들 사람 길러내는 데 오히려 집중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90% 이상의 국민들은 영어 쓸 일이 1년에 한두 번 이하다. 국민들이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전문가가 없는 게 문제다. 이런 전문가는 대학에서 길러야 한다.
국민들의 영어 실력이 향상되면 외국인과 말이 잘 통해 일자리도 많이 생긴다는 논리에 대해선.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이 인도에 많이 진출했다. 컴퓨터, 수학 등이 관련돼서다. 콜센터는 필리핀에 많다. 영어가 가능하고 인건비가 싸니까. 우리 국민들이 영어 잘한다고 한국에다 콜센터 짓겟나? 더 싼 다른 나라로 가지. 투자 여건과 볼거리가 돼야 사람도 돈도 들어오는 거다. 외국인들이 우리랑 영어 하려고 들어오겠나. 영어는 국가 비즈니스의 여러 변수 중 하나일 뿐이다.
다른 언어를 잘하면 정보 취득 면에서 유리하지 않나.
=물론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 학생들이 읽기라도 잘하나? 인터넷에는 숨이 막히게 좋은 고급 정보가 많다. 그런 정보는 문서로 돼 있다. 읽을 줄 알고 잘 판단해서 활용하면 된다. 말도 그렇다. 잘 알아듣고 ‘예스, 노’ 잘 선택하면 그게 경쟁력이다. 그래서 언어발달은 듣기가 기본이다. 꼭 선생이 좔좔 안 읽어줘도 교과서 CD 틀어주고 뉴스 리포트 같은 것도 보여주고 다양하게 습득하게끔 유도하는 게 더 중요하다.

상향 평준화를 ‘가운데 분포’ 중심으로



△ 대통령직 인수위는 논란이 일자 1월30일 공청회를 열었으나 반대하는 사람은 물론 영어 공교육 전문가조차 참여시키지 않아 ‘반쪽 공청회’라고 비판받았다. 방청객을 미리 정하고 기자의 출입도 제한한 공청회 현장(위)과 공청회장 밖에서 시위하는 교육단체들.






새 정부가 인수위 안을 다듬어 집행할 때 중요하게 다룰 것은 뭐라고 보나.
=어떤 공교육 강화 계획도 대학이 수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본고사 부활하고 논술에 영어 지문을 내거나 영어 에세이를 보겠다고 나서면 온갖 사교육 억제 계획이 다 날아간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세 대학이라도 잡아야 한다. 기존 공교육 시스템 이상의 난이도를 요구하지 않는 출제를 하겠다는 정도의 강력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고입, 대입 자율화라는 이름으로 다 풀어주고는 사교육을 억제하겠다고?
입시에서 영어의 비중이 줄면 실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그것도 우리 안의 어떤 환상이다. 중·고교에 가면 내신 때문에 시험을 본다. 그러니 실용 영어가 확 준다. 말썽 안 나게 평가하려면 객관식으로 봐야 하고 정확성을 따지는 문법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영어권 나라에서 3년 살다 온 애도 100점 맞기 어렵다. 문법 배우러 학원 간다. 하지만 언어에 정답이 어딨나. 수학이나 과학처럼 똑떨어지는 답이 없다. 전국 단위든 교육청 단위든 중·고교 영어 교육 과정도 ‘패스, 논패스’로 하는 게 맞다. 듣기·읽기 평가하고, 수행평가 반영하고, 얼마나 잘 말하고 정확하게 알아듣는가 교사가 보고 나서 패스 여부를 결정하는 거다. 그러면 표현이 술술 된다. 그게 진짜 실용 영어다. ‘아이 해피’ 해도 아무 지장 없다. 꼭 ‘아임 해피, 아임 풀리 머치 해피’만 맞는 게 아니다. 표현은 아이의 성격과 발달, 상황에 따라 바뀐다.
패스 기준은 어떻게 정하나.
=어렵지 않다. 교육과정이 왜 있고 국가나 교육청이 왜 있나. 학교 교육은 가운데 분포에 속한 애들을 기준으로 봐야 한다. 중간이 많고, 아주 잘하고 아주 못하는 애가 적은 게 정상이다. 평균의 학생들이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을 합의하면 된다.
하향 평준화되는 건 아닌가.
=지금처럼 과도하게 상향 평준화된 게 정상인가. 그래서 대체 어떤 성과가 있었나. 애들만 잡지 않았나. 우리에게는 나쁜 버릇이 있다. 미국 대학 가려고 토플 성적 낼 때도 학교마다 일정 기준만 넘으면 되는데 왠지 가급적 높은 점수를 받아 내려고 한다. 그 이상의 점수는 보지도 않는데 말이다. 기본적인 영어 실력을 학교 교육을 통해 기르고 그것에 어떠한 가중치도 주지 않는다면 사교육은 금방 죽게 마련이다. 그게 아니라면 영어 공용화 하자는 얘기다.
입시에서 사실상 영어를 빼면 변별성 문제가 대두되지 않겠나.
=인수위가 밝힌 방안도 특목고와 대학이 동의해줘야 가능한 것들이다. 사교육 주범인 영어만큼은 잡겠다면, 적어도 영어에서는 중·고교에서 배운 내용을 소화하면 기회를 주도록 해야 한다. 다른 다양한 면을 보고 뽑아 대학에서 정상적으로 가르치면 된다. 인재 선발에 대한 대학의 요구가 있다면 중등 교육기관과 논의해 교과과정에 반영하면 된다. 국가 교육정책은 그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다. 그게 진정한 자율화다. 대학이 전권을 갖고 편의대로 마음대로 뽑겠다는 게 자율화가 아니다. 교육학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미국 심리학회 규정에 이런 게 있다. ‘학생의 인생에 중요한 결정인 평가 시스템은 가장 공정해야 한다’고. 어떻게? ‘가르친 내용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어에 대한 강박이 올바른 영어 교육을 저해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인권유린’이다.

제1외국어에 ‘영어 공용화’ 내용을 담다

인수위는 2015년 대입부터 말하기·쓰기를 포함시키겠다며, “현재의 수능 영역인 읽기·듣기는 등급제로 평가하고, 새로 추가되는 말하기·쓰기는 학교 수업만으로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합격·불합격으로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말하기·쓰기의 입시 반영률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도 설 연휴 기간 “중·고교에서 영어 교육을 수준별로 하도록 해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병민 교수는 “입시에 예속된 영어 교육의 문제를 알고 반영한 것이라면, 그런 발상을 입시 영어 전체, 중·고교 영어 교육 전체로 확대하길 바란다”며 “기존의 교재나 교사, 평가 시스템을 크게 흔들지 않고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어 실력이 개인의 경쟁력이자 국가의 경쟁력이라고 믿는 이들은 영어의 ‘게이트키퍼’ 구실을 더욱 강화해야 온 국민의 영어 실력이 업그레이드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영어가 실제 필요보다 지나치게 우상화돼 있다고 여기는 이들은 영어의 이런 ‘사회적 가중치’를 최소화해야 온 국민의 영어 스트레스가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전자는 영어 공용화론의 뿌리이고, 후자는 제1외국어의 지위를 찾아주자는 견해다. 인수위의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은 후자의 그릇에 전자의 내용을 담으려 하는 바람에 자꾸 내용물이 흘러넘치는 게 아닐까.

 



북유럽과 비교가 되나


유럽 8개국 ‘몰입’ 영어 수업 45.2%, 언어체계가 비슷하니 잘하는 건 당연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영어 교육’에 한정해 말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고비용 저효율’ 국가다. 해마다 수십조원을 영어 사교육 시장에 쓸어넣고 수십만 명이 어학연수를 떠나지만, 2004년과 2005년 두 해 동안 토플 시험을 본 212개 나라 시민들 가운데 한국인의 성적은 91위에 그쳤다.
이를 한탄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눈을 돌리는 곳은 ‘영어 선진국’으로 꼽히는 북유럽이다. 비결은 뭘까?
한학성 경희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2000년 써낸 <영어 공용어화, 과연 가능한가>에서 덴마크 영어 교육의 비결로 ‘영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과 ‘유능한 영어 교사를 키워내는 교사 양성 시스템’을 꼽았다. 이들 나라에서는 인수위의 주장대로 영어는 영어로 가르치지만 그 비중은 생각 만큼 높지 않다.
2002년 유럽연합(EU)에서 펴낸 ‘유럽 8개국 학생들의 영어 능력 평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보자. 유럽 8개 나라에서 교사가 영어 수업시간에 ‘대부분의 시간’(most of the time)을 영어로 말한다고 답한 비율은 절반 수준인 45.2%에 머물렀다. 네델란드(29.1%)와 핀란드(39.0%)가 낮았고, 유럽에서 영어를 못하는 나라로 꼽히는 프랑스(65.3%)가 가장 높았다.
유럽 아이들은 영어를 단순히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다. 보고서는 학생들에게 ‘어디서 영어를 배운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가장 많은 답은 ‘학교’(57.5%)였지만, ‘미디어’란 대답도 25.9%나 됐고, ‘그 밖의 다른 곳’이라는 대답도 16.5%였다. 덴마크 공중파 텔레비전은 최근 인기 있는 미국 드라마를 자막이나 더빙 처리 없이 그대로 방송한다. 보고서는 학생들의 영어 능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로 △집에서 언어로 영어를 사용하는지 여부 △미디어를 통해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 △영어 학습에 대한 학생들의 열의 등을 꼽았다.
2001년 토플 시험을 주관하는 미국 ETS 보고서를 보면 동일한 학습 조건에서 미국인들이 가장 배우기 힘든 외국어로 꼽은 것은 한국어와 일본어·아랍어 등이었다. 반면 쉬운 언어로 꼽은 것은 덴마크어·네덜란드어·노르웨이어 등이었다. 한국인이 영어를 배울 때 느끼는 난감함과 북유럽인이 영어를 배울 때 느끼는 어려움을 비교할 순 없다. 그래서 우리 영어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북유럽의 예를 드는 것은 서울대에 가려면 국·영·수에 치중하고 주관식에 대비하라는 조언을 되뇌는 것처럼 공허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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