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출판사를 찾아서 (16)] “철학이 없는 삶은 없다”
철학전문 ‘서광사’
30년간 500여권 출간, 어린이 위한 철학만화도 펴내... 플라톤의 `국가`는 14년 걸려

▲ '서광사' 이숙 부사장
서광사에 전화로 책을 주문하는 고객은 주민번호까지 일일이 불러줘야 한다. 2005년 초 세무조사에서 ‘개인에게 책을 팔 때도 세금계산서를 끊어야 한다’는 사실을 고지받은 후 이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직원 5명이 일하는 작은 출판사지만 이렇듯 서광사는 원리원칙에 따라 운영하고 있다.

철학책을 전문으로 펴내는 ‘서광사’는 김신혁(金信爀·62) 사장이 1974년 당시 다니던 인쇄소를 그만두고 나와 자본금 100만원을 가지고 문을 열었다. “사장님이 가톨릭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한때 신부가 되려고까지 했어요. 처음부터 철학책을 전문적으로 내는 출판사를 세우기로 마음먹었던 거죠.” 1999년 12월 김 사장이 뇌출혈로 쓰러진 후 회사의 경영을 맡고 있는 부인 이숙(李淑·58) 부사장의 말이다.

아직 국내에 저작권법이 발효되기 전이었던 당시엔 원서를 제본해서 판매하는 리프린트부터 시작했다. 리프린트하는 책 또한 철학 원서였다. 많은 수의 원서를 리프린트 하면서 훑어보고 번역출판 가능성을 검토해 본격적으로 출판에 뛰어들 채비를 했다. 마침내 1977년 서광사의 첫 번째 책인 롤스의 ‘사회정의론’이 출간되었다.

서광사의 책에는 고유번호가 매겨져 있다. 롤스의 사회정의론을 1번으로 해 가장 최근에 출간된 ‘공자와 유가’는 511번을 달고 있다. 약 30년 동안 500여권을 펴냈으니 한 해에 출간한 책은 20권이 채 안되는 셈이다. 한 권당 1년에 보통 100권 정도가 팔린다고 하니 ‘저렇게 팔아서 장사가 되려나’ 싶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500여권의 책이 대부분 절판되지 않고 10년이고 20년이고 꾸준히 팔리고 있다. 1년 동안 팔리는 책을 합산해 보면 8만~9만권 정도가 된다.

서광사는 시대를 앞선 경영 방식으로 출판가에 화제가 되곤 했었다. 우선 야근이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되어있는 출판계의 상황에서 정시 출퇴근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아침 9시 출근, 오후 5시 50분 퇴근’이 그것. 야근을 하고 싶은 사람은 사장한테 허락을 맡도록 했다. 더욱 놀랄 일은 1987년에 이미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한 것. “처음엔 직원들이 더 불만이 많았었다고 해요. 특히 우리나라 남자들은 남들 일할 때 집에서 쉬고 있으면 불안해 하잖아요. 그런데 얼마 지나니까 역시 다들 만족해하더래요. 처음엔 사람들이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몰랐던 거죠.”

서광사가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한 지 3년쯤 지났을 때 김신혁 사장이 한 잡지에 기고한 글을 봤다. 거기에는 “(사원들이) 주5일 근무제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았다”며 “새로 입사한 직원 중에는 ‘회사가 개인에게 지나치게 관여한다’거나 ‘숨이 콱콱 막히는 것 같다’는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토요일에 일하고 싶은 사람을 회사에 못 나오게 하는 것도 당시엔 심각한 사생활 침해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1993년에 외국에서는 일반적인 관행으로 자리잡았지만 국내에는 생소했던 인세후불제를 시행했다. “저자들은 안전하게 선불로 계약금 받는 걸 선호했죠.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저자들도 연말마다 세금공제 서류까지 첨부해서 책의 매출현황을 정확하게 기록한 내역서를 받아보시고는 이렇게 투명하게 하는 쪽이 더 낫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자에게 보내는 매출내역서를 정리하듯이 회사의 재무관리도 책 한 권, 비품 하나까지 꼼꼼히 챙기며 투명하게 해나갔다. “10년쯤 전이었을 거예요. 세무사들이 세무조사를 하러 왔는데 막상 아무런 잘못도 발견하지 못한 거예요. 나중에는 아무것도 안 나오니까 짜증을 냈다고 하더라고요.”

회사가 투명하다는 것은 사장이 없더라도 회사가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결국 투명하게 경영한 덕을 보게 되었다. 김신혁 사장이 뇌출혈로 쓰러진 뒤 거동이 불편하고 무엇보다도 언어장애가 왔기 때문에 경영을 계속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족들은 출판사의 거취를 놓고 고민했다. 이 부사장은 “출판 일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엄두가 안 났죠. 그렇다고 사장님이 그토록 애정을 가진 사업을 그만둘 수는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결국 유학 가기 전에 잠시 회사 일을 돕고 있던 큰 아들과 함께 이 부사장이 회사를 맡기로 했다.

“예전에 사장님이 집에 오면 회사 얘기를 참 많이 했어요. 그냥 무슨 일이 있었다는 정도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회사에 이러이러한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식으로 저한테 자문도 많이 구했거든요. 그래서인지 집에 있으면서도 회사가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었죠. 또 회사에 와보니 매출, 수금현황 등 회사 경영에 대한 자료가 워낙 투명하게 잘 정리돼 있어서 그런 것들을 하나둘 보면서 업무를 익힐 수 있었어요.”

취재를 하면서 매출실적, 출간현황 등을 물어보면 이 부사장의 큰 아들인 김찬우 부장이 표와 자료를 뒤져가면서 정확한 수치를 대답해줬다. 김 사장이 쓰러진 후 항간에는 ‘서광사가 문을 닫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사장이 경영을 맡은 후에도 서광사의 책이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되는 등 전과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자 다시금 출판사엔 역·저자의 원고가 밀려들고 있다.

30년 이상 철학책만 펴내다보니 주위에서 “돈 안되는 철학만 전문으로 할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책을 내보라”고 권유도 많이 받았다. 서광사는 ‘철학 외길’을 포기하고 다른 분야의 책을 내는 대신에 다른 연령대를 공략하는 전략을 택했다. 1990년부터 출간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철학 동화 ‘사랑과 지혜가 담긴 동화’와 ‘세상의 빛깔들’ 시리즈, 1997년부터 펴낸 청소년을 위해 만든 ‘만화로 읽는 철학’ 시리즈가 그것이다. 현재는 청소년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철학책이 전체 매출액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서광사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아동용 철학책을 찾는 분 중에 논술과 관련된 책인지를 묻는 분이 적지 않게 있어요. 철학책마저도 입시에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보고 찾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해요.”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무어냐고 물었다. “플라톤의 ‘국가’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계약을 한 건 1983년이었을 거예요. 1997년에 출간됐으니까 책이 나오기까지 14년이 걸린 거죠. 원고가 도착하던 날 사장님이 ‘14년 만에 원고 받아오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벅찼다’고 말씀하시던 게 생각나요. 플라톤의 ‘국가’는 원체 유명한 고전이긴 하지만 국내에서 그리스어를 원서로 해서 완역을 한 건 처음이었을 거예요.”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덕인지 판매실적도 지금껏 나온 책 중에 가장 좋다. 지금까지 1만2000부 정도가 팔려나갔다.

어느덧 30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그동안 서광사는 국내 철학 출판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 앞으로의 목표는 소박하다. “집에 계신 사장님 꿈이 생전에 철학책 1000권을 출간하는 거예요. 30년 동안 절반 정도 냈으니까 앞으로도 부지런히 내야죠. 시장환경이 안 좋아도 좋은 책은 꾸준히 팔리더라고요. 특히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같은 고전은 세대가 바뀌어도 계속 찾는 사람이 생기잖아요. 이런 고전분야를 비롯한 좋은 철학책을 꾸준히 내서 서광사 일련번호를 1000번까지 늘리고 싶습니다.”

김재곤 주간조선 기자(truman@chosun.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문출판사를 찾아서(15)] 과학전문 ‘전파과학사’
“트렌드보다 한발 앞서 가는 책”
반세기 동안 순수과학과 함께 외길... 한때 24명이던 직원이 IMF 이후 한 명으로 줄어

▲ 전파과학사 손영일 사장
전문출판은 한눈팔지 않고 계속 해나가기가 어렵다. 출판을 하다보면 자신의 전문 분야와 관련이 없지만 상업적으로든, 내용적으로든 욕심이 나는 원고를 접할 때가 있게 마련이다. 이때 자신의 출판사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런 원고를 뿌리치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과학서적을 전문으로 펴내는 ‘전파과학사’는 1956년 7월 23일 세워져 올해로 50년째를 맞은 장수 출판사다. “올 7월에 기념행사라도 하려고 했는데 형편이 좋지 않아서 그만뒀습니다.” 지난 1989년부터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손영일(孫永一·60) 사장의 말이다. 순수과학 책을 펴내고 있지만 정작 손 사장 본인은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지금까지 펴낸 책은 문고판을 포함해 850여종. “한때는 월간지까지 펴내서 직원이 24명에 이른 적도 있어요. IMF의 직격탄을 맞고 사원들이 하나둘씩 떠나가다가 3년 전쯤 마지막으로 있던 편집자도 아이 양육 문제로 그만뒀습니다.”

전파과학사의 창업자는 손영일 사장의 사촌 형인 손영수씨다. 군대에서 통신장교로 근무했던 손씨는 체신부에서 근무하던 시절 국내에 통신 관련 서적이 전무하다시피 한 것을 보고 외국의 통신 관련 서적을 하나둘씩 들여오기 시작했다.

처음 펴낸 책들은 모스 부호, 전화교환기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전파과학사’란 이름은 처음에 출판했던 책들의 성향에 따라 지었다. 이후 국내에 본격적으로 TV가 출시되면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전자’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자 1970년대 초부터 전자 관련 책을 출간했다. 1960년대 말 을유문고, 삼성당문고 등을 중심으로 문고판 붐이 일자 1972년부터 ‘현대과학신서’라는 문고판을 펴내기 시작했다. 총 139권까지 발간된 현대과학신서는 전파과학사를 과학 전문 출판사로 자리매김해주었다.

손영일 사장은 1975년 “영업을 맡아달라”는 사촌형 영수씨의 부탁으로 전파과학사와 인연을 맺었다. 지난 1989년엔 정식으로 회사를 인수했다. 영업으로 출발한 손 사장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회사 인수 직후부터 영업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전문적인 책은 동네 서점엔 갖다놓을 데도 없어요. 그나마 대형서점에 갖다놔야 하는데 저희같이 몇 권 팔리지 않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는 그다지 중요한 고객이 아니잖아요. 이 때문에 대형서점은 책을 납품받을 때 값을 할인받으려고 합니다. 몇 권 팔리지도 않는데 책값까지 깎아주면 어떻게 장사합니까? 그래서 대형서점에 있는 책들을 다 빼버렸죠.”

현재 시중에서 유통되는 전파과학사의 책은 출판사들이 출자해 만든 유통기관인 한국출판협동조합을 통해 배포되는 것이 전부다. 보통 1000부를 찍으면 400부를 조합에 보내고 600부는 회사에 쌓아놓고 주문을 받아 판매한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사무실은 사무실이라기보다 창고에 가까웠다. 별도의 창고가 있지만 사무실 여기저기에도 책이 쌓여있었다. 사무실에 하나뿐인 손 사장의 책상 위엔 ‘WONDER GENES’라는 제목의 영문 원서가 놓여있었다. 미국의 맥스웰 멜먼(Maxwell J.Mehlman) 교수가 지은 이 책은 이달 말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 책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핵심 쟁점이 고스란히 소개되어 있어요. 우리나라 제목은 ‘기적의 유전자’로 정했습니다. 조금만 일찍 출간되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처럼 이슈가 발생한 이후에 관련 책이 나올 때도 있지만 평소 손 사장의 경영철학은 ‘책이 팔리든지 말든지 과학책으로서 한국에서 출간되지 않은 책은 가장 먼저 낸다’는 것이다. 손 사장은 “트렌드를 봐가며 책을 내는 게 아니라 한발 앞서 출간하다 보니 책은 잘 안팔리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지놈 프로젝트의 완성에 임박해 유전자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증폭되자 처음으로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 노벨상 수상자가 된 제임스 왓슨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졌다. 우리 사회에서는 1990년대 후반 들어서야 주목을 끌기 시작한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도 이미 전파과학사에서 1970년대 초에 발간했다. 애초 손바닥 크기만한 문고판으로 출간되었다가 현재는 일반 단행본 사이즈로 겉모습만 바뀌었다.

850여종 출간, 절반이 절판 안되고 꾸준히 팔려

현재 전파과학사의 직원은 손 사장을 제외하고 1명뿐. 그 1명도 편집자가 아닌 영업과 창고 관리 등을 담당하고 있다. 편집, 조판, 디자인 등은 모두 외주를 주고 있다. “출판사 문을 연 지가 50년이 되다보니 과학계에 있는 사람은 거의 다 알아요. 미국에 공부하러 간 사람들한테 전화가 와요. ‘나한테 좋은 책이 있는데 번역해서 내보면 어떻겠냐’는 식으로요. 따라다니면서 원고 달라고 할 필요가 없죠. 또 한국유전학회나 동물학회처럼 학회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책을 내자고 제안하는 경우도 있죠. 조판하는 쪽에서도 전파과학사 스타일을 아니까 교열 봐서 원고만 넘기면 알아서 해주니 손발이 척척 맞죠.”

이런 점은 50년 전통의 전문출판사가 갖는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편집과 교정은 생물학 박사인 윤실씨가 담당하고 있다. 어린이 과학잡지 편집장 출신인 윤씨는 전파과학사에서 자신의 책을 출간한 것이 인연이 돼 현재 이같은 중책을 맡게 되었다. “IMF 이전엔 한때 편집자가 10명에 이른 적도 있어요. 편집자를 뽑을 때는 물리, 화학, 지질학 식으로 분야별로 겹치지 않게 1명씩 뽑았었죠.”

50년을 채워가는 기간 동안 다른 분야로 한눈판 적이 한번도 없을까? 손 사장은 “지금껏 딱 두 번 ‘외도’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한번은 중국의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의 부인이 결혼부터 부의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구술한 책이었고, 또 한번은 주요 대학 교수들이 모여서 만든 논술책이었습니다. 두 번 다 제가 나서서 한 건 아니고 번역자와 저자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부의 부인의 책은 화제가 되겠다 싶었는데 도무지 홍보가 안돼서 실패했어요. 논술 책은 출간 직후부터 반응이 대단했습니다. 초판 5000부를 찍은 지 얼마 안돼 3000부를 더 찍었는데 논술시험이 끝나면서 판매는 고사하고 반품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시장 상황을 잘 모르고 뛰어들었다가 혼쭐이 난 거죠. 그 뒤로는 과학 이외에는 눈을 돌린 적이 없습니다.”

과학책의 특성상 책의 수명이 길다는 것이 좋은 점이다. 베스트셀러도 몇 년만 지나면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전파과학사의 책은 지금까지 펴낸 850여종의 책 중 절반 정도인 400종 정도가 절판되지 않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책 같은 경우는 일반·특수 상대성이론이 뒤집어지지 않는 한 생명력을 가지게 되잖아요. 저희 책은 한번 만들면 오래 가서 지금 만든 책을 10년 뒤에 봐도 상관없습니다. 적어도 1~2년 있다 죽는 책은 없어요.” 지금도 매년 6~10권의 책을 만들어내고 있다. 손 사장은 “그 이상은 더 낼 능력도, 욕심도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 전날 저녁 손 사장은 학습지 회사에서 문제 출제위원 일을 하고 있는 딸과 산책을 하면서 오래간만에 후계자 논의를 했다고 한다. “그래도 50년 동안 유지해온 출판사 아닙니까? 전통을 이어가야지요. 처음엔 ‘그거 하면 굶어죽는다’면서 반대했던 딸이 어제는 ‘그러면 아빠가 언제까지 할 거냐’고 묻더라고요. 내가 ‘칠십까지는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죠. 일단 물려받을 사람은 정해진 셈입니다.”

김재곤 주간조선 기자(truman@chosun.com)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땜쟁이 2012-03-27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1959년 창간된 전파과학 월간지를 지금도 보물같이 보관하고 있지요.
저를 1961년 부터 전자회로 땜쟁이로 만든 책이었지요.
그책은 트랜지스터 동작원리를 가장 쉽게 이해하게 해준 책이기도 하지요.
1971년부터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공부를 계속했지만 그 책만큼 많은것을 가르쳐주지는 못했지요.
전파과학사의 은혜?를 입은셈인데 아직도 전자회로 땜쟁이로 헤매고 있으니 ....
 

[전문출판사를 찾아서 (14)] 동아시아 전문 ‘이산’
“동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시각 제공”
부부가 편집부터 영업까지 도맡아... "출판사 편집자들이 벤치마킹 하는 책"

▲ 이산의 공동대표인 강인황, 문현숙씨 부부

책을 잘 만드는 것과 잘 팔리게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다. 동아시아의 역사·문화에 관한 책을 전문으로 내는 ‘이산’은 책을 잘 만드는 출판사로 알려졌다. “이산의 주독자층의 하나가 출판사 편집자들이에요. 내용을 보려는 게 아니라 어떻게 편집했나를 보려고 사는 거죠. 벤치마킹이 많이 돼서인지 이제는 다들 엇비슷해진 것 같아요.”

이산의 강인황(康仁煌·44) 공동대표의 말이다. 또다른 대표는 강씨의 부인인 문현숙(文賢淑·40)씨. 이들 부부 외에 다른 직원은 없다. 이들 부부가 편집, 영업은 물론 표지 디자인까지 도맡아 한다. 둘 다 일손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남편 강씨가 인터뷰하는 동안 부인 문씨는 묵묵히 일에 매달렸다. “한 달쯤 전에 편집 일을 하던 직원이 그만뒀어요. 지금까지 한두 명 정도 직원을 두기도 했지만 주로 둘이서 운영해왔습니다.”

부부는 모두 출판사 편집자 출신이다. 각각 한 동네에 있던 출판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문화운동에 관심있는 편집자들의 모임에서 만나 인연을 맺었다. 결혼 후 남편 강씨는 서울 신촌에서 ‘알서림’이란 사회과학 서적을 취급하는 서점을 인수해 5년 동안 운영했고 부인 문씨는 돌베개에서 편집장을 지냈다. 마침내 1996년 여름 자신들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야에서 자기 출판을 해보기로 결심하고 ‘이산’을 차렸다.

출판사 이름은 중국 고사성어 ‘우공이산(愚公移山)’에서 따왔다. ‘우공’(愚公:어리석은 이)이란 사람이 산을 옮기려고 한 데서 나온 이 말은, ‘쉬지 않고 꾸준하게 한 가지 일만 열심히 하면 마침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을 속뜻으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산이란 이름이 발음하기에 좋잖아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독자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을 지어야겠다는 취지에서 지은 이름이에요.”

우직하게 산을 옮기려고 한 ‘우공’마냥 이산은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라는, 장사가 안 되는 분야에서 우직하게 책을 펴내고 있다. 출판사 설립 당시 이산의 소망은 책 한 권 내서 다음 책 낼 자금 정도만 마련하는 것. 다행히 첫 책인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가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으며 다음 책을 만들 종자돈을 마련해주었다.

“서양인의 시각에서 동양을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은 잘 알려졌었잖아요.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는 일본인이 자신을 서양과 동일시한 채 동양을 바라보는, 동양적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시각이 신선하잖아요. 지금까지 5000부 정도가 팔렸는데 인문 학술서적이 이 정도 팔렸으면 전국의 인문학 하는 웬만한 대학원생은 다 한 권씩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지금까지 이산에서 나온 책은 총 45권. 지난 10년 동안 1년에 4~5권 정도 만들어온 셈이다. 이 중 한 권만 빼고는 모두 번역서다. “처음부터 번역서만 내겠다고 정해놓은 건 아니에요. 다만 저희같이 한 번에 책을 한 권씩 만드는 소규모 출판사는 막상 기획을 했는데 원고 내용이 기획한 대로 나오지 않을 경우 대책이 없어요. 그러다보니 사전에 원고 내용을 검토할 수 있는, 외국에서 출간된 책에 눈이 먼저 가게 되는 거죠. 내년에 국내 저작을 한 권 더 출간할 예정입니다.”

유일한 국내 저작은 서울대 동양사학과 유인선 교수가 쓴 ‘새로 쓴 베트남의 역사’. “이 책은 원래 대우학술총서로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기 직전까지만 다뤘었는데 근대 이후를 추가하고 앞부분을 수정, 보완해서 분량이 두 배 정도로 늘었죠. 예전에 출간됐던 책을 제가 봤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상태였고 베트남사는 국내에 집필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책을 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죠.”

이 책의 저자 유인선 교수는 원고를 마무리할 즈음 책을 어디서 내면 좋을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학생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이산이요”였다. 정작 교수는 이산을 알지 못했지만 젊은 인문학도 사이에서는 이산의 브랜드가 단단히 자리매김한 것이다. 문제는 이산의 책이 인문학도를 넘어 대중에게까지 어필하기에는 너무 딱딱하다는 것. 좀더 책을 잘 팔리게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것은 또다른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공들여서 잘 만드는데 이왕이면 조금만 더 말랑말랑하게 해서 팔릴 수 있게 하면 출판사나 출판계 모두 좋지 않겠느냐’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10년쯤 전문출판을 하다보니 좋은 책을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베스트셀러 만드는 것 또한 어렵다는 걸 알게 됐죠. 우리한테는 베스트셀러 만드는 재주는 없는 것 같아요. 굳이 베스트셀러를 상업적이라고 욕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베스트셀러에 편승해서 쉽게 돈 벌려고 하는 아류작은 문제가 있지만요.”

실제로 이산의 책은 눈에 확 들어오는 활자나 편집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손이 가지 않는다. 책 뒤에 빽빽이 붙어 있는 주석, 참고문헌 등을 보면 기가 질리기 때문이다. 어떤 책은 주석과 참고문헌이 책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할 정도다.

“출판사 중에는 판매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원서에 나와있는 주석이나 참고문헌을 빼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책 뒤에 붙어 있는 참고문헌은 이 책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책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근거예요. 이런 작업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출판업계에선 이산의 책은 책 뒤를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책 뒷부분에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출판사들이 이 부분 작업을 본문 작업이 다 끝난 후에 마무리하듯 하는 데 비해 이산은 본문 편집과 병행한다. “본문과 동시에 진행해야 책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게 가능합니다. 잘 이해가 안되는 본문 내용도 주를 같이 보면서 작업을 해나가면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교정을 볼 수가 있거든요.”

현재 이산의 연매출은 2억원 수준. 2001년 출간된 ‘강희제’가 이산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9000부 가까이 팔려나간 이래 매출은 계속 이 수준을 맴돌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출판환경이 많이 변했어요. 예전에는 책을 서점 이외에는 팔고 사는 곳이 없었잖아요. 지금은 인터넷, 홈쇼핑 심지어 대형 할인매장에서도 쉽게 책을 구할 수가 있습니다. 독자가 아무데서고 책을 구하기 쉬운 환경으로 변한 셈이니까 저희 같은 출판사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서점영업도 제대로 못하는데 인터넷, 할인매장 영업은 엄두도 못내거든요. 결국 홍보나 마케팅에 대한 충분한 여력이 있는 출판사는 더 많은 책을 팔고 저희 같은 출판사는 현상유지하기도 어려워지는 거죠.”

우공이산 고사(古事)에 따르면 결국 우공의 정성에 감복한 옥황상제가 산을 옮기도록(移山) 도와준다. 옥황상제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이산의 앞으로 목표는 무엇일까?

“뭔가 포부를 거창하게 말하는 건 체질에 안 맞는 것 같아요. ‘왜 사냐고 물으면 그냥 웃지요’라고 말한 조지훈 시인의 말처럼 뭔가를 정해놓고 전진하기보다 그냥 주어진 현실에 충실한 쪽을 선호합니다. 앞으로 출판환경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선 걱정이 되지만, 현재로선 지금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공부하면서 출판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즐겁습니다.”

김재곤 주간조선 기자(truman@chosun.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문출판사를 찾아서 (13)] 그림책 전문 ‘보림’
“그림은 무엇보다도 훌륭한 언어”
“아이들 눈높이 맞추는 게 가장 어려워... 교육적 영향 생각하면 쉽게 만들 수 없어”

▲ `보림`의 권종택 사장
“그림책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에 수출하기에 가장 적합한 출판물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일러스트(illustration) 수준은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올해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 둥지를 옮겨 튼 보림출판사는 유·아동용 그림책을 전문으로 내는 출판사다. 권종택(權鍾澤·59) 사장이 1976년 문을 연 이래 30년 가까이 이 분야에 천착하면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가 주빈국으로 초청을 받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는 보림의 책 두 권이 ‘한국의 책 100권’에 선정되기도 했다.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을 만드는데 어려울 게 뭐가 있느냐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일반 책이 기획에서 책이 나오기까지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는 데 비해 저희 그림책은 보통 30쪽 분량의 책 한 권 만드는 데 2~3년 정도 걸립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책이라면 그 책을 읽고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독자의 몫으로 돌릴 수 있겠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신경을 더 쓰게 되고 책임감을 크게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책 속에 항상 교육적인 내용이 녹아들도록 노력합니다.”

책의 제작과정은 일반 책을 만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요즘은 일반 출판사도 기획출판의 비중이 크게 늘었지만, 저희는 기획의 역할이 특히 중요합니다. 보통 책처럼 저자가 완성된 원고를 넘기는 경우는 별로 없고 대부분 출판사가 기획을 하고 작가가 거기에 따라 원고를 작성하게 되거든요. 궁극적으로는 기획 이전에 완성도 높은 원고를 창작해내는 작가가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책의 특성상 책을 만드는 사람은 어른이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눈높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이에 대해 권 사장은 아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그림책 판별법을 소개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어린이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아이들 속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는 건지 잘 모를 수밖에 없죠. 하지만 잘 만든 그림책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이 봐도 재미있습니다. 반대로 어른이 봐서 재미없는 책은 아이들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책이라고 해서 이해하기 쉽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안일한 생각입니다. 작품성이 갖추어졌느냐를 꼼꼼히 따져봐야 아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보림은 그림책이면서도 흥미 위주가 아닌 작품성을 갖춘 교양서를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둔다. 책의 소재는 우선적으로 우리 전통문화에서 찾는다. ‘까치 호랑이’ 시리즈는 ‘흥부 놀부’ ‘호랑이와 곶감’ 같은 전래동화를 각색해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지에 수출했다. ‘솔거나라’ 시리즈는 김장, 떡만들기, 항아리 빚기 같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기 쉬운 그림과 함께 소개해 5세 이상 아이면 누구나 우리 전통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최근에는 순수 창작물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중이다. 2000년부터 매해 ‘보림 창작그림책 공모전’을 개최해 역량있는 신예작가를 발굴하고 있다.

보림의 역사는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예전엔 아이들 책은 전집으로 사다줬잖아요. 저희도 1990년대 초반까지는 그런 책을 만들었죠. 그러다가 앞으로의 출판시장은 어떻게 달라질까를 생각해 봤어요. 전집은 책 외판원이 집집마다 방문해서 책을 파는 시스템인데 산업인력 구조가 변하면 앞으로 그런 식의 판매구조로는 살아남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앞으로는 아이들 책 시장도 단행본 중심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1980년대 후반부터 차근차근 단행본 출판으로의 전환을 준비했습니다. 미리부터 준비한 덕에 1990년대 중반 단행본 출판으로 전환하는 데 연착륙할 수 있었죠.”

보림은 출판업계에서 창작 그림책을 가장 많이 만드는 전문출판사로 알려졌다. 여기서 오는 효과는 어떤 것일까? “아무래도 부모들이 아이에게 책을 사줄 때는 무척 신중하기 때문에 신뢰할 만한 브랜드를 가지는 게 유리한 것 같습니다. 특히 아이들 책을 사줄 때는 ‘요즘 유행하는 책이 무엇이냐’를 따지기보다 ‘어디 책이 좋대’라고 묻게 되잖아요. 한두 권의 책보다 출판사의 브랜드가 중요해지는 거죠. 현재 흥미, 재미 위주의 책을 만드는 곳은 많지만 교양있는 창작 그림책을 전문으로 하는 곳은 별로 없거든요. 창작 그림책을 열심히, 많이 만든 회사라는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단행본 출판으로 전환한 이래 지금까지 출간한 책은 250여종. 현재 27명의 직원이 해마다 20종 정도의 그림책을 만들어내고 있다. 연매출은 작년 60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에는 70억원 수준을 바라보고 있다.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그림책의 특성상 베스트셀러랄 책도 없지만 재고가 남아 손해보는 책도 없다. 대부분의 책이 재판(再版)까지 가며 수천 부 정도는 팔려나간다고 한다. 경영원칙에 대해 묻자 권 사장은 “베스트셀러를 노리고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할 경우 거기에 맞지 않으면 재고가 쌓일 수밖에 없다”며 “어느 출판분야든 일정한 수요가 있기 때문에 품질만 갖춰놓으면 장기적으로 출판시장에서 실패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림은 앞으로 해외판매 비중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소극적으로 저작권을 판매하는 수준에 머물러 해외판매 비중은 5% 미만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이미 9종의 책이 세계 6개국에 번역·출간되었고 올 4월 열린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선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80인’에 보림의 작가 3명이 선정되는 등 향후 해외진출에 대한 전망이 밝은 편이다. “과거에는 판권을 수출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앞으로는 저희가 직접 수출용 책을 제작, 판매할 계획입니다. 수동적인 마케팅에서 능동적으로 돌아서는거죠.” 올해부터 해외마케팅을 전담하는 담당 팀장도 배치했다.

“우리나라는 그림책을 만들기 위한 인프라가 잘 발달돼 있습니다. 해마다 미술·디자인 관련학과 졸업생만 수만 명이 쏟아져나오죠. 또 그림책은 글 없이도 그림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과 공동기획을 할 수 있는 여지가 큽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기획을 하고 미국이 그림을 그려서 프랑스에 내다파는 식의 작업을 할 수 있는 거죠. 앞으로는 이런 식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사업을 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김재곤 주간조선 기자(truman@chosun.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문출판사를 찾아서 (12)] 경제·경영 대중서 전문 ‘더난출판’
“이론이 아닌 실전을 위한 책”
경영실무 위주로 총 500권 출간..."출판사가 돈버는 책보다 독자를 돈벌게 하는 책 만들고 싶어"

▲ 더난출판 신경렬 사장
“할 말이 별로 없는데…. 저는 편집이나 출판영업 같은 것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그저 직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제 몫이죠.” 더난출판 신경렬(申京烈·42) 사장의 첫마디였다.

1990년부터 15년 동안 경제·경영서 외길을 걸어온 전문출판사의 사장이라면 나름의 철학이나 원칙을 얘기해줄 법도 한데 겸손이 지나친 게 아닐까? 역시나, 이 회사 박정하 주간은 “전문출판사는 아무리 소신 있는 편집자가 버티고 있다고 해도 사장의 의지 없이는 절대 오래 못한다”며 “사장님이 사실 할 말이 많으신 분”이라고 거들었다. 더난출판은 경제·경영 관련 서적 중에서도 실용, 대중서를 전문으로 출간한다. ‘더난’이란 이름은 ‘더 나은’의 줄임말로 신 사장은 “출판사 설립 당시 우리말 이름 짓기가 붐이었다”고 이름에 얽힌 내력을 소개했다.

“제가 대학(인하대 회계학과) 다닐 때 학원에서 부기(簿記)강사를 했어요. 급수를 따는 게 목표라고는 해도 막상 가르치는 학생들이 급수를 따고도 직장에 가서는 제대로 써먹지를 못하는 게 안타깝더라고요. 이때부터 어떻게 하면 이론과 실제를 접목시켜서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을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출판업에 발을 들이게 된 것도 ‘어떻게 하면 실전에 필요한 지식을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무관하지 않다. “대학 졸업 후 처음 들어간 회사가 출판업을 겸하는 곳이었어요. 우연히 당시 국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경영실무에 대해 쉽게 풀어놓은 외국 서적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이런 책을 출간하면 실무자 입장에서 정말 유용할 것 같았어요. 회사 측에 출간을 제안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더라고요. 답답해하던 차에 마침 같은 회사에서 출판 영업 일을 하던 동료가 이런 분야에 대해 시장조사를 해주겠다는 거예요. 조사를 하고 나니 승산이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들어간 회사를 5개월 만에 그만두고 나와 출판사를 차렸다. 출판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다만 새로운 틈새를 개척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만 있었다.

“회계학, 경영학 책은 일반인이 혼자 보기엔 너무 어렵잖아요. 처음 출판사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경제·경영 관련 서적은 대학교재만 있을 뿐 대중을 상대로 쉽게 풀어 쓴 책이 거의 없었어요. 부기강사 경력을 살려서 경리(經理)업무에 관련된 책을 냈는데 막상 책을 사가는 사람들은 경리 일을 하는 분보다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더 많더라고요. 사장님들은 자기가 직접 경리 일을 안 하더라도 그 업무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걸 마땅히 배울 통로가 없었던 거죠.” 이런 식으로 예상했던 독자 외에 잠들어있던 잠재수요가 깨어나면서 회사 시작 3년이 지날 때쯤 슬슬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었다.

“그래도 처음 3년 동안은 정말 힘들었어요. 직원이라고는 편집자 1명만 두고 제가 경리 일까지 직접 했죠. 1년에 펴내는 책의 수도 10권을 넘지 않았어요. 현금서비스 받아서 편집자 월급을 주기도 하고 그랬어요. 혼자서 너무 무리를 했는지 어느 날 병원에서 폐결핵 말기 진단을 받기도 했죠.”

이야기가 무르익자 처음엔 출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던 신 사장이 슬슬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시작할 땐 독자 눈높이에 맞게 쉽게 쓸 수 있는 저자를 찾는 일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특히 당시만 해도 학계에서는 대중을 상대로 책을 쉽게 쓰는 걸 부끄럽게 여기는 분위기 같은 게 있었어요. 그래서 많은 출판사들이 번역서에 의존하게 되죠. 하지만 전문출판사라면 국내 저자를 발굴하는 것은 일종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신 사장은 국내 저서와 번역서를 닭과 치킨으로 비유했다.

“외국 서적을 들여오는 것은 요리된 치킨을 사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치킨을 들여오면 당장은 팔아먹기가 좋죠.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요리를 하려면 닭을 키워야 하잖아요. 출판시장을 국내에만 한정한다면 몰라도 앞으로 동아시아, 일본 등에 우리 책이 본격적으로 출간될 날을 대비한다면 닭을 키워 찜닭, 삼계탕 등의 형태로 재가공해서 팔아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국내 저자가 쓴 책 중에서도 더난출판의 핵심역량은 재무, 회계, 영업, 마케팅 등의 분야를 독자가 혼자 보고 익힐 수 있도록 구성한 경영실무서다. ‘노트시리즈’가 대표적인 예이다.

“저희 책 중에서 경영실무서가 뼈대라면 재테크, 자기계발 같은 책은 살이에요. 당장은 돈이 안되더라도 뼈대를 튼튼히 해놓으면 출판사는 안정적으로 굴러갈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를 노리고 재테크, 자기계발 같이 외형적으로 살이 붙는 게 보이는 책만 내다보면 살이 빠지는 것도 한순간이에요. 이런 책들은 출판사의 역량으로 기획을 해서 성공하는 것이라기보다 트렌드에 영합하는 측면이 강하거든요.”

이번엔 경제·경영 실무서 전문출판사 경영자의 경영철학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판은 3점짜리 고스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출판을 하면서 쓰리고에 피박까지 씌우는 대박을 노리는 것 같아요. 한 점 한 점 쌓아가는 더하기는 작아보이지만 확실하게 점수를 따는 방법이에요. 2배, 4배를 노리는 곱하기는 상대적으로 위험요소가 크죠. 출판은 밑천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3점짜리 고스톱으로 운영해 나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신 사장의 말처럼 더난출판사를 유지하는 버팀목은 소수의 베스트셀러가 아닌 다수의 스테디셀러다. 신 사장은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구성하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출간한 종수만 500종 이상. 이 중 200권 이상이 꾸준히 쇄를 거듭해 팔려나가면서 아직까지 시장에서 제몫을 하고 있다. 올해에 출간된 책만도 50종에 다다른다. 매출액은 연 40억원 수준, 여기에 가끔 ‘쓰리고’까지 가는 책들이 나와 어깨를 가볍게 해준다. ‘돈버는 사람은 분명 따로 있다’ ‘상경’ ‘변경’같이 10만부 내외로 팔린 책들이 예다.

더난출판의 관심은 책에만 머물지 않는다. “작년부터 경영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회사 지하에 강의실을 만들었어요. 저자나 저희가 섭외한 강사가 관심있는 독자를 대상으로 경제·경영 관련 강의를 해요. 이제 독자들은 책으로만 지식이나 정보를 습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책과 교육이 함께 하는 출판사’란 모토가 더난출판의 지향점을 나타내준다. ‘더난비즈’라는 이름의 출판사 인터넷 사이트도 단순히 책을 소개하고 주문받는 식이 아닌, 경제·경영 지식에 대한 지식포털 사이트로 키워가겠다는 것이 더난출판의 목표다. 인터넷 사이트 관리를 전담하는 직원도 따로 뒀다.

“정보를 인터넷에 띄워놓으면 사람들이 인터넷만 보고 책은 안 살 거라고들 하는데 제 생각은 반대예요. 저희 사이트에 들어와서 정보를 뒤질 정도의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저희 책도 사볼 겁니다. 관심이 없는 사람은 투자를 안하려고 하고 공짜만 찾지만, 자신이 어떤 지식에 대해 욕구가 있는 사람은 그 지식을 얻기 위해 책도 사보고, 강연도 좇아다니는 식으로 투자를 하게 됩니다. 저희는 앞으로 책이든 인터넷이든 강연이든 독자가 갈구하는 지식이나 정보가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충족시키는 게 목표입니다.”

김재곤 주간조선 기자(truman@chosun.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