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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난출판 신경렬 사장 |
“할 말이 별로 없는데…. 저는 편집이나 출판영업 같은 것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그저 직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제 몫이죠.” 더난출판 신경렬(申京烈·42) 사장의 첫마디였다.
1990년부터 15년 동안 경제·경영서 외길을 걸어온 전문출판사의 사장이라면 나름의 철학이나 원칙을 얘기해줄 법도 한데 겸손이 지나친 게 아닐까? 역시나, 이 회사 박정하 주간은 “전문출판사는 아무리 소신 있는 편집자가 버티고 있다고 해도 사장의 의지 없이는 절대 오래 못한다”며 “사장님이 사실 할 말이 많으신 분”이라고 거들었다. 더난출판은 경제·경영 관련 서적 중에서도 실용, 대중서를 전문으로 출간한다. ‘더난’이란 이름은 ‘더 나은’의 줄임말로 신 사장은 “출판사 설립 당시 우리말 이름 짓기가 붐이었다”고 이름에 얽힌 내력을 소개했다.
“제가 대학(인하대 회계학과) 다닐 때 학원에서 부기(簿記)강사를 했어요. 급수를 따는 게 목표라고는 해도 막상 가르치는 학생들이 급수를 따고도 직장에 가서는 제대로 써먹지를 못하는 게 안타깝더라고요. 이때부터 어떻게 하면 이론과 실제를 접목시켜서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을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출판업에 발을 들이게 된 것도 ‘어떻게 하면 실전에 필요한 지식을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무관하지 않다. “대학 졸업 후 처음 들어간 회사가 출판업을 겸하는 곳이었어요. 우연히 당시 국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경영실무에 대해 쉽게 풀어놓은 외국 서적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이런 책을 출간하면 실무자 입장에서 정말 유용할 것 같았어요. 회사 측에 출간을 제안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더라고요. 답답해하던 차에 마침 같은 회사에서 출판 영업 일을 하던 동료가 이런 분야에 대해 시장조사를 해주겠다는 거예요. 조사를 하고 나니 승산이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들어간 회사를 5개월 만에 그만두고 나와 출판사를 차렸다. 출판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다만 새로운 틈새를 개척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만 있었다.
“회계학, 경영학 책은 일반인이 혼자 보기엔 너무 어렵잖아요. 처음 출판사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경제·경영 관련 서적은 대학교재만 있을 뿐 대중을 상대로 쉽게 풀어 쓴 책이 거의 없었어요. 부기강사 경력을 살려서 경리(經理)업무에 관련된 책을 냈는데 막상 책을 사가는 사람들은 경리 일을 하는 분보다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더 많더라고요. 사장님들은 자기가 직접 경리 일을 안 하더라도 그 업무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걸 마땅히 배울 통로가 없었던 거죠.” 이런 식으로 예상했던 독자 외에 잠들어있던 잠재수요가 깨어나면서 회사 시작 3년이 지날 때쯤 슬슬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었다.
“그래도 처음 3년 동안은 정말 힘들었어요. 직원이라고는 편집자 1명만 두고 제가 경리 일까지 직접 했죠. 1년에 펴내는 책의 수도 10권을 넘지 않았어요. 현금서비스 받아서 편집자 월급을 주기도 하고 그랬어요. 혼자서 너무 무리를 했는지 어느 날 병원에서 폐결핵 말기 진단을 받기도 했죠.”
이야기가 무르익자 처음엔 출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던 신 사장이 슬슬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시작할 땐 독자 눈높이에 맞게 쉽게 쓸 수 있는 저자를 찾는 일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특히 당시만 해도 학계에서는 대중을 상대로 책을 쉽게 쓰는 걸 부끄럽게 여기는 분위기 같은 게 있었어요. 그래서 많은 출판사들이 번역서에 의존하게 되죠. 하지만 전문출판사라면 국내 저자를 발굴하는 것은 일종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신 사장은 국내 저서와 번역서를 닭과 치킨으로 비유했다.
“외국 서적을 들여오는 것은 요리된 치킨을 사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치킨을 들여오면 당장은 팔아먹기가 좋죠.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요리를 하려면 닭을 키워야 하잖아요. 출판시장을 국내에만 한정한다면 몰라도 앞으로 동아시아, 일본 등에 우리 책이 본격적으로 출간될 날을 대비한다면 닭을 키워 찜닭, 삼계탕 등의 형태로 재가공해서 팔아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국내 저자가 쓴 책 중에서도 더난출판의 핵심역량은 재무, 회계, 영업, 마케팅 등의 분야를 독자가 혼자 보고 익힐 수 있도록 구성한 경영실무서다. ‘노트시리즈’가 대표적인 예이다.
“저희 책 중에서 경영실무서가 뼈대라면 재테크, 자기계발 같은 책은 살이에요. 당장은 돈이 안되더라도 뼈대를 튼튼히 해놓으면 출판사는 안정적으로 굴러갈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를 노리고 재테크, 자기계발 같이 외형적으로 살이 붙는 게 보이는 책만 내다보면 살이 빠지는 것도 한순간이에요. 이런 책들은 출판사의 역량으로 기획을 해서 성공하는 것이라기보다 트렌드에 영합하는 측면이 강하거든요.”
이번엔 경제·경영 실무서 전문출판사 경영자의 경영철학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판은 3점짜리 고스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출판을 하면서 쓰리고에 피박까지 씌우는 대박을 노리는 것 같아요. 한 점 한 점 쌓아가는 더하기는 작아보이지만 확실하게 점수를 따는 방법이에요. 2배, 4배를 노리는 곱하기는 상대적으로 위험요소가 크죠. 출판은 밑천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3점짜리 고스톱으로 운영해 나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신 사장의 말처럼 더난출판사를 유지하는 버팀목은 소수의 베스트셀러가 아닌 다수의 스테디셀러다. 신 사장은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구성하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출간한 종수만 500종 이상. 이 중 200권 이상이 꾸준히 쇄를 거듭해 팔려나가면서 아직까지 시장에서 제몫을 하고 있다. 올해에 출간된 책만도 50종에 다다른다. 매출액은 연 40억원 수준, 여기에 가끔 ‘쓰리고’까지 가는 책들이 나와 어깨를 가볍게 해준다. ‘돈버는 사람은 분명 따로 있다’ ‘상경’ ‘변경’같이 10만부 내외로 팔린 책들이 예다.
더난출판의 관심은 책에만 머물지 않는다. “작년부터 경영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회사 지하에 강의실을 만들었어요. 저자나 저희가 섭외한 강사가 관심있는 독자를 대상으로 경제·경영 관련 강의를 해요. 이제 독자들은 책으로만 지식이나 정보를 습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책과 교육이 함께 하는 출판사’란 모토가 더난출판의 지향점을 나타내준다. ‘더난비즈’라는 이름의 출판사 인터넷 사이트도 단순히 책을 소개하고 주문받는 식이 아닌, 경제·경영 지식에 대한 지식포털 사이트로 키워가겠다는 것이 더난출판의 목표다. 인터넷 사이트 관리를 전담하는 직원도 따로 뒀다.
“정보를 인터넷에 띄워놓으면 사람들이 인터넷만 보고 책은 안 살 거라고들 하는데 제 생각은 반대예요. 저희 사이트에 들어와서 정보를 뒤질 정도의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저희 책도 사볼 겁니다. 관심이 없는 사람은 투자를 안하려고 하고 공짜만 찾지만, 자신이 어떤 지식에 대해 욕구가 있는 사람은 그 지식을 얻기 위해 책도 사보고, 강연도 좇아다니는 식으로 투자를 하게 됩니다. 저희는 앞으로 책이든 인터넷이든 강연이든 독자가 갈구하는 지식이나 정보가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충족시키는 게 목표입니다.”
김재곤 주간조선 기자(trum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