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작년 1인당 93병 마셨다
진로 12월 판매량 사상 최고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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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 국민은 성인 1인당 93병의 소주를 마신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최대 소주업체 진로는 지난해 12월 한 달간 685만여 상자를 판매, 85년 역사상 최고 판매기록을 세웠다.

22일 대한주류공업협회에 따르면 불황이 짙어지면서 지난해 소주 판매량이 전년 동기대비 5.6% 증가한 1억1,613만9,000상자(360㎖ 30병입)에 달했다. 병으로 따지면 34억8,417만병이 팔려나갔다.

전체 국민 중 19세 이상인 음주 가능인구 3,750만 명을 기준으로 1인당 연간 93병을 소비한 셈이다. 1주일에 2병을 마신 꼴이다. 그러나 주류업체가 소매 유통업체에 판매한 양이 아직 모두 소진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소비량은 이보다 다소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년 대비 소주 판매량 증가율은 2006년 6.7%에서 2007년 1.3%로 크게 둔화했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시화한 불황과 맞물려 다시 큰 폭으로 뛰었다.

제조사별로는 진로가 전년 대비 8.7% 늘어난 5,973만4,000상자를 판매해 시장점유율 51.4%를 기록했고, 두산은 전년 대비 5.2% 증가한 1,285만3,000상자를 팔아 11.1%의 점유율을 보였다. 그 다음은 금복주, 무학, 대선, 보해, 선양, 하이트, 한라산 등의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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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설 선물은 '웃음'
온 가족 모여 사진 속 추억 더듬어봐요 



"엄마는 선본 지 한 달 만에 결혼하셨대요. 아빠가 좋긴 했지만 연애도 제대로 못하고 결혼하는 게 서운해서 신혼여행 가던 날 안 나가고 마구 우셨대요. 그 사이 동네 사람들은 새신랑 구경하자고 몰려들었다지요."

학원강사 이소라(여·24)씨는 22일 부모님 결혼 26주년을 앞두고 엄마가 보여준 사진을 들여다보며 엄마의 추억을 되짚었다. 택시 옆에 두루마기 입고 선 젊은 아버지 주변으로 구름 떼같이 모여든 마을 주민들의 흥분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씨는 "엄마 아빠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더라"고 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카메라는 특별한 날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귀한 기계였다. 깊고 흥미로운 아날로그 이야기가 옛 사진 속에 숨어 있다. 온 가족이 모이는 설 연휴, 장롱 깊숙이 묵혀 놓았던 옛 사진이 진가(眞價)를 발휘할 찬스다. 묵은 앨범을 꺼내 사진을 들여다보며 이야깃거리를 찾아보자.

수학여행 기념사진 속 아빠, 가사 실습 중인 엄마 등 낡은 사진 속 '그분' 찾기 게임으로 옛 사진 탐색을 시작하는 게 이야기 보따리를 여는 비결이다. 고교생 권유진(17)양은 "아빠의 고등학교 소풍 사진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고 했다. 1975년 경복궁으로 놀러 간 사진 속에서 아빠는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까지 손에 든 모습이었다. "저 어릴 땐 '공중 도덕 지키라'며 잔디밭 들어가면 많이 혼내셨거든요. '아빠는 왜 그러셨느냐'고 했더니 머쓱하게 웃고 마시더라고요."

회사원 정현교(31)씨는 아내와 함께 옛 앨범을 뒤적이다 35년 전 아버지 고등학교 졸업식 사진을 발견했다. "대구 시내 한복판을 계란과 밀가루 뒤집어쓴 모습으로 당당히 걷는 아버지의 모습이란…. 밤 11시 넘어 들어갔다고 신발을 집어 던지시던 엄한 아버지와 매치가 되지 않더라고요. 아버지는 "만날 1등만 했는데 돈이 없어서 대학 못 갔다"는 한마디로 사진 속 '정황'을 설명하셨어요."

불안한 경기 탓에 뒤숭숭한 올해 설, 힘들었지만 꿋꿋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사진 속 옛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도 좋겠다. 훈장님이었던 아버지가 "여자는 공부하면 안 된다"며 책을 불태워 상경했던 엄마, 유원지에 데이트 가서 남의 스쿠터 빌려 포즈 취하는 연인들…. 부자(富者)가 아닌 게 확실한데도 어깨 펴고 까르르 웃는 사진 속 얼굴들이 명절에 웃음을 선물한다.

※사진이 소개된 분들께는 '한국후지필름 포토이즈'에서 사진을 인화해 액자에 담아 보내드립니다.



▲ 신혼여행 떠나기 직전, 엄마는 나가기 싫다고 집에서 울고 있고 훤칠한 아빠만‘새신랑 보자’는 동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네요. 엄마 아빠는 22일 결혼 26주년을 맞으셨어요. 이소라(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




▲ 1970년 엄마의 운동회 사진입니다. 엄마는 지나간 젊음이 서글프다3며 옛 사진을 멀리 하시지만 저에겐 엄마가 김연아보다 아름답답니다. 그 런데 엄마! 옷이 좀 야한 거 아니우? 백소영(경기 평택시 합정동)




▲ 1975년 아빠의 고등학교 시절 경복궁 소풍 사진입니다. 사진 찍자마자 경비원 아저씨에게 걸려 혼이 단단히 났다고 하네요. 권유진(서울 노원구 중계 1동)




▲ 요즘은‘함 사세요’하는 소리 듣기 힘들어진 것 같아요. 1990년 12월 ‘함진아비’가 신부 집 문 앞에서 버티고 있네요. 뒤에서 미는 신부 친 척들의 웃는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장경환(서울 은평구 구산동)




▲ 1960년대 대구 시내에서 찍은 아버지의 뒷모습. 아버지도 졸업식 날은 계란세례 받고 밀가루 범벅이 되어서 거리를 활보하셨네요.“ 고등학교 땐 1등만 했다”던 아버지의 말, 믿어도 될까요? 정현교(경남 거제시 신현읍)




▲ 오빠는 운전사3, 나는 사모님3? 두 살 터울인 사촌오빠와‘새나라 택시’ 를 사이 좋게 타고 찍었어요. 1960년대에는 이런 모형 택시나 꽃마차를 들고 다니며 사진 찍어주는 사진사가 있었죠. 김동숙(서울 노원구 중계동)




▲ 엄마가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공장 나가 일할 때 만난 또래 친구들 이래요. 맨 왼쪽이 저희 엄마고요, 뒤에서 짓궂게 장난치는 분은 같은 동네 살던 동생이래요. 최예지(서울 도봉구 방학3동)




▲ 1969년 연애 중이던 부모님이 송추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바 이크는 현장에서 미인계(?)를 이용해 빌려 타고 찍으셨답니다. 40 년전 모습이지만 지금 봐도 멋쟁이시죠? 송윤태(서울 서초구 서초동)




▲ 제일 가운데서 신나게‘돌리고’계신 분이 저희 아빠세요. 저 옷은 아마도 교복인 듯한데, 정말 즐거워 보이네요. 아빠에게도‘전성 시대’가 있었나 봅니다. 김승연(서울 서초구 서초동)

김신영 기자
박효재 인턴기자·고려대 사회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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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상 2011-10-09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지막 사진은 교련복입니다. 1994년도에 교련 수업이 없어지면서 사라졌지만 한 동안 교련복 입고 다니는 학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1994년 졸업이라 기억이 나네요..유일하게 '수' 받던 교련수업 ㅋㅋㅋ

최원석 2011-10-27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지막사진 님의 아버지께서 입고계신옷은 교련복이라는 옷입니다. 1990년도 초순까지는 남녀를 구분하지않고 고등학교 정규과목중에 교련이라고하는 군사교육시간이 일주일에 2시간간정도 배정이 되어있었지요. 교련시간에 군복처럼 입어야만했던 군사교육복장입니다. 그 때 그 시절에 남학생들은 학교밖에서도 간편하게 많이들 입었지요.
 

[곽병찬칼럼] 송아지 값, 청년 값
곽병찬칼럼
 
 
한겨레 곽병찬 기자
 








 

» 곽병찬 논설위원
 

 
올 들어 개봉된 한국 영화는 <워낭소리>가 유일하다. 침체를 넘어 공황 상태지만, <워낭소리>가 보여준 우리 영화인의 저력은 위안 삼을 만하다. 비탈밭과 천수답을 가꿔 9남매를 기른 80살 농부와 40살 소의 삶과 죽음을 담은 기록물이다. 생명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헌신은, ‘유년의 우리를 위해 고생하신 부모님과 소에게 바친다’는 평범한 헌사마저 눈물샘을 자극했다.

불과 한 세대 전이다. 부모에게 가장 큰 희망은 자식이었고, 재산은 소였다.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아이들 목으로 밥 넘어가는 소리와 마른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였다. 소는 자식 다음으로 귀했으니 마찬가지다. 그러던 것이 지금 소와 장성한 자식은 우리 시대의 절망을 상징한다.

육우라도 큰 놈 한 마리면 대학 등록금과 1년 하숙비가 너끈했다. 지금 육우 수송아지는 씨받이 값도 안 되는 3만원에 내놔도 가져가질 않는다. 10만원에 수매해 2만원에 주겠다는 지자체도 나왔다. 수송비 2만원은 거저라니, 공짜다. 키워 봤자 사료값도 못 건지니, 나설 이가 별로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추락한 것이 청년이다. 고졸 84%가 대학에 진학하니, 청년은 곧 대학생이다.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사교육비만 평균 4000여만원, 대학 4년에 등록금 평균 3500여만원이 든다. 요즘엔 취업용 사교육비까지 든다. 그러나 절반 넘는 이들이 졸업 후 제시받는 몸값은 시급 4000원(최저임금) 수준이다.

그마저 준다. 지난 12월 신규 취업자는, 40대 이후는 조금이나마 늘었지만, 20~30대는 20만여명 이상 줄었다. 청년 실업자 35만명, 구직 포기자 15만명, 취업 준비자 60만여명을 합치면 110만명이다. 체감 실업률은 20%에 이른다. 여기에 청년 비정규직 200만여명까지 합치면, 청년의 절반은 불완전고용 상태다. 스물다섯 청년이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진출해 10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하면, 주택청약저축도, 자가용도 없고, 결혼도 못하는 3무 인생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회의 시선은 차갑다. 한편에선 대통령부터, 등 따습고 배부른 직장만 찾으니 그렇다고 힐난한다. 다른 쪽에선 사회적 정의감이나 소명감도 없이, 그저 학점과 취업, 가벼운 연애질이나 한다고 핀잔한다. 사실 그들만큼 촛불시위 때 무관심한 세대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 탓은 아니다. 그들은 이 사회의 문법에 충실히 따랐다. 기어다닐 때부터 정글에서 살아남는 기술을 연마했다. 소설 시집 한 권 제대로 읽지는 않아도, 토플 점수, 인턴 연수, 봉사활동 등 최고의 취업 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사회는 대졸자 중 단 10%에게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한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나머지 90%는 비정규직 혹은 주변부 신세다. 처음엔 비정규직을 피하려 알바를 전전하지만, 오히려 막장 신세를 재촉한다.

그 원인은 효율과 경쟁을 신성시하는 권력과 자본이 제공했다. 주주 이익만 생각하는 주주 자본주의, 산업자본의 금융자본화, 노동시장 유연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와 중소기업의 몰락, 10%를 위한 교육제도, 부실한 직업교육, 공공부문의 위축 등. 엊그제 정부의 실업 대책도 기존의 일자리 유지 차원이지, 2월에 쏟아져 나올 50여만, 겉도는 110여만, 비정규직 200만명 등 청년용은 아니다.

권력과 자본에 선처를 기대해선 안 된다. 최저임금마저 깎으려 하는 게 그들이다. 나머지 90%가 결혼조차 못 해도 눈 하나 깜짝 않는다. 자신을 옭아맨 주술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봄 농부가 그러하듯, 그들도 제 논과 밭, 그리고 의식을 갈아엎어야 한다. 그래야 제 결실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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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억 김은혜는 모른다



  • 글쓴이: 이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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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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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9.01.2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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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억 김은혜는 모른다
“과격시위 끊으라”는 청와대 부대변인…70대 철거민은 왜 죽었을까?
 
 
 

"용산에서 셋방살이하던 가난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명박 정부는 지금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을까?" 어제 저녁 촛불집회에도 참가할 겸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경찰들의 변함없는 강경한 태도를 보면서 얼핏 든 생각이었다.

아침신문과 방송을 보고 내린 결론은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 것 같다"다. 철거민은 물론 부하 경찰관까지 죽게 만들고도 진압작전이 정당했다고 강변하는 용산경찰서장이나, 경찰청 차장의 발언. '불법시위 단호 대처'가 핵심 내용인 국무총리 담화문. "철거민 저항에 도시 테러적 성격이 있었다"는 한나라당 진상조사단장 장윤석 의원의 발언….

부동산 재산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나는 청와대 김은혜 부대변인이 했다는 말이 목에 자꾸 걸린다. 보도에 따르면 김 부대변인은 어제 "지금까지의 사고를 보면 시위의 악순환이 계속됐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과격시위의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
문제가 커질 조짐이 일자 곽경수 춘추과장이 40분 뒤 청와대 기자실에 나타나 "김 부대변인의 발언은 개인 의견으로 정리됐다"고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사실관계를 따지자면 김은혜 부대변인은 자신의 발언을 취소하지 않고 '개인 의견'으로 계속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MBC 9시 뉴스데스크 앵커로 이름을 날리던 김은혜 기자가 이명박 대통령의 입노릇을 하러 청와대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적이 있다. 약력을 보면 1971년생이니 아직 젊은 나이에 그것도 아주 잘 나가는 여성이 왜? 그 뒤 내 '아하, 그렇구나' 했던 건 다른 게 아니라 김은혜 부대변인의 재산공개 목록을 보고서였다.

인터넷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정부 관보 2008년 5월 7일자를 보면 김 부대변인의 재산은 모두 97억 원으로, 이 중 95억 원이 부동산이다. 강남구 대치동에 88억 짜리 빌딩을 한 채 갖고 있고, 강남구 논현동에 6억이 넘는 고가 주택도 있으며, 경기도 일산에 땅도 소유하고 있다.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다음으로 부동산 재산이 많다.

물론 당시 김부대변인이 언론에 해명한 것을 종합해보면 ‘부동산 재산이 많은 남편을 만났을 뿐’이라는 얘기인데, 어쨌든 그녀의 부동산 재산을 보고 그녀가 왜 이명박 정부의 입노릇을 하게 됐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던 건 사실이다.

나의 한국사회 부동산 계급 구분법에 따르면 김 부대변인은 부동산 1계급이니, 부동산 1계급을 대변하는 이명박 정부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70대 할아버지의 죽음을 95억 부동산 부자가 이해할 수 있을까?

김 부대변인은 아마 지금쯤 어제 용산 참사 희생자 중 일흔이 넘은 이 아무개 할아버지 사연을 보고 들었을 것이다.

이 할아버지는 진압 현장 뒤편 건물에서 3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다 지난해 호프집으로 바꿨는데, 재개발 때문에 생존권이 벼랑에 몰리자 막내 아들(36)과 함께 농성에 참여했다가 졸지에 ‘테러리스트’로 몰려 불에 타 죽어야 했고, 아들도 크게 다쳤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이 할아버지의 큰 아들(45)은 "아버지께서 원한 것은 조그만 공터에서라도 장사를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고, "당시 아버지는 망루에 계셨고 동생은 건물 벽에 매달렸다가 떨어진 것 같다. 농성자들은 밑으로 떨어지든지, 죽든지 두 길밖에 없었다"며 강제진압을 비난했다고 한다.

이번 발언도 나는 그녀의 부동산 재산으로 이해하려 한다. 100억 가까운 부동산을 소유한 부동산 부자가 이 할아버지의 삶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부동산 부자들의 재산을 불려주는 뉴타운 재개발을 반대하는 과격시위요 도심 테러로밖에 달리 볼 수 없다고 한다면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일까.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김 부대변인은 매우 솔직한 사람이고, 그 발언을 취소하지도 않은 셈이니 줏대도 있는 사람이다. 그 줏대의 코드가 부동산 부자들하고만 연결돼 있으니 문제지만.

뉴타운 재개발은 한나라당 장기집권 프로젝트

내가 보기에 한국사회는 부동산으로 계급을 이루고 있는 부동산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한국정치도 부동산 정치고, 선거도 부동산 선거이며, 심지어 재판도 부동산 재판이다.

지난 번 헌재의 종합부동산세 판결 당시에도 부동산 재산이 많은 재판관일수록 부자들에게 종부세를 많이 내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결했고, 부동산 재산이 적은 사람들 일부만 부자가 종부세를 내는 게 옳다고 했지 않은가.

이명박 대통령이 단군 이래 최대 개발공약인 한반도 대운하를 대표 공약으로 당선된 것이나,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서울 수도권을 휩쓴 비결이 다름 아닌 뉴타운 공약이었단 점에서 한국의 선거도 부동산으로 이해하는 게 빠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당선될 때 내세운 공약으로 시작된 뉴타운 재개발이 급속히 확산되는 데는 건설재벌에게 큰 돈 벌이가 되고, 집주인과 건물 주인들도 재산을 불릴 기회가 되는 경제적 배경이 있는 게 맞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주로 빈곤층이나 경제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 서민층이 주로 사는 동네를 대상으로 하는 뉴타운 재개발이 서민들을 서울 밖으로 내몰고 그 자리를 중산층 이상의 계층으로 교체하는 결과가 되고 있다. 용산 참사는 생생한 증거다.

그런데 재개발된 값비싼 아파트에 입주한 여유 있는 사람들이 아파트값이 계속 오르기를 희망하게 되고, 정치세력 중에서는 아파트값을 가장 많이 올려줄 한나라당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문제는 매우 복잡해진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수도 서울은 계급적으로는 중산층 이상 상류층만 사는 도시가 되고, 정치적으로는 한나라당의 굳건한 지지 기반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니 이미 그렇게 가고 있다.

"뉴타운 재개발이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의 장기집권 프로젝트가 되는 셈인가." 섬뜩한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서울을 대부분 한나라당이 석권하고 서울에서 밀려난 서민들이 사는 남양주 등 경기도 일부에서 야당의원이 가뭄에 콩 나듯 당선되는 지난 총선 결과를 보면 근거가 아주 없는 비약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것도 모르고 야당의원들까지 너도나도 뉴타운 공약을 내세웠다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진실로 참회할 때 용산 참사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은 재발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이나 권력 핵심부의 움직임을 보면 참회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다. 셋방살이를 한 죄밖에 없는데 끔찍하게 목숨을 빼앗기고 과격시위니 도심테러니 하는 무시무시한 누명까지 써야 하는 고인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다시 한 번 두 손 모아 이 할아버지를 비롯한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 이 글은 오마이블로그 '손낙구의 세상공부'에 올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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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서울로 현지출근하다가 강변북로 양화대교부터 꽉 막혔다는 소식에 신수동 뒷길로 해서 마포로 돌았더니, 역시 공덕사거리도 꽉 막혀서 모처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려서 도착했다. 그 시간 얼마전 용산로 일대가 완전차단된 상태에서 특공대 진압작전이 있었단다. 무려 여섯 명이 불에 타고 물에 젖은 싸늘한 시체로 돌변한 사실을 빠져나와서야 알았다. 차 막힌 것을 푸념하는 내 옹졸함이란...

다시 돌아오는 공안정국,  

이러한 결과를 예상치 못했던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도대체 이 정부는 국민들을 어떻게 보는건지 새삼 이를 앙다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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