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는 권력 있는 거대 종교들과는 무관하게 생명의 본성을 섬기는 민간신앙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신구간이라는 독특한 이사 풍습도 그렇다. 제주에서는 지상의 모든 신들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대한 5일 뒤부터 입춘 전 3일까지의 일주일 동안에 이사를 하는 풍습이 남아 있다. 이때가 되면 섬 전체가 이삿짐을 나르느라 분주하다고 한다. 이때 이사나 집 수리를 해야 액을 막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때문에 가스안전공사나 한국통신 같은 곳은 아예 휴일도 없이 근무한다고 한다.-171쪽
오름은 한라산이 폭발할 때 생긴 기생화산을 부르는 제주도 방언이다. 제주도에서 산이라 부르는 것은 한라산과 송악산, 산방산, 영주산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오름이다. 높은 곳에서 제주를 내려다보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 것처럼 오름이 봉긋봉긋 솟아올라 있어 그야말로 제주가 오름의 세상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오름이라는 말은 산보다 솔직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낸 말 같다. '나는 땅에서 솟아오른다.' '올랐다'가 아니고 '오른다', 지금도 오름 밑에서는 들끓는 대지의 열정이 가만히 숨을 고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2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