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버리다 - 류민영

맨홀 구멍 스치듯이 보았을 때,

그만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순간의 일이었다

 

(걸려오지 않을 전화가 걸려올 것 같았다)

 

환청으로 울리던 전화벨 소리

확인하지 않은 문자

수없이 쌓여 있을 음성 메세지

 

법문을 지워버린 낙산사 홍련암 법당의 구멍

같은 하수구

질퍽한 오수 아래 떨어트린 핸드폰

 

벨 소리는 울릴 것이다

죽어가는 기계에서 상냥한 목소리 젊은 여인이

나의 부재 끊임없이

 

<핸드폰을 버리다>(시평 24호), 시평사. 2006

 

핸드폰이 '병원'에 갔을 때 느꼈던 불안감이 어느덧 진화하여 공식적인 '꺼짐' 상태를 오히려 즐겼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 불안감이 일탈 또는 휴식이 되기 위해서는 적잖은 감정기복 역시 있었고... 던져버리기 보다는 스스로 꺼놓을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살아야 하지 않을지. 정작 필요하여 '소통 중단'을 연락할 사람은 돌이켜 세어 보면 많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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