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 도종환

노래방에 갇혀 노래를 부르면서

정작 노래를 잃어버렸다

텅 빈 하늘을 향해 서서

목이 터져라 부르던 노래

바람이 머리칼을 흔들면

걸음을 뗄 때마다 저절로 나오던 노래

물가에 앉으면 가슴이 먼저 젖어 흘러나오던

그런 노래를 잃어버렸다

노래의 마음인 노랫말이 우리 마음을 움직이고

노래의 몸인 소리가 우리 몸을 흔들던 그런 노래들

어떤 날은 노래가 깃발이 되어

우리를 끌고 가고

어떤 날은 수천 수만의 사람을

한 방향으로 한 발짝씩 나아가게 하던 노래

혼자서 돌아오는 밤길 낮은 소리로 읊조리는

내 노래에 내 볼이 젖던 노래

그런 노래들을 잊어버렸다

혼자 부르고 또 불러서

온전히 내 노래가 되던 노래

노래 한 곡이 술 한 잔을 마시게 하고

노래만으로도 온 밤을 깨어 있게 하던

그런 노래들이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중심도 방향도 놓친 뒤부터

바람도 물소리도 멀리한 뒤부터

 

- <슬픔의 뿌리>, 실천문학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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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9-16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의 공원에서 빙 둘러앉아 한 명씩 호명하여 노래 부르던 날들이 그립군요.
시구처럼, 노래방이 생기면서 노래를 잃었다는 생각이.....

달빛푸른고개 2006-09-18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햇수로 헤아려보니 노래방을 자주 갔던 기간이 약 3~4년인 것 같고, 그로부터 또 멀어진 시간도 그 정도 되나 봅니다. 반주 없이도 부르던 노래가 심금을 울리는 장면도 있었고... 그런 기억을 더 만들어가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