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겠다는 정아에게 전날 먹던 국에 대충 밥을 말아 먹였다. 정아가 나간 뒤 우두커니 방구석에 앉아 있다가 차 열쇠를 꺼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행주대교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동두천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더는 빠져나오지 못하는 미로를 헤매고 싶지 않았다. 나쁜 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제 그 골목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29쪽
그렇지만 아버지가 뭐라고 하건 나는 미군부대에서 나온 소시지와 햄으로 반찬을 해 먹는 다른 집들이 부러웠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싸구려 시계라고 해도 미제 타이맥스 시계를 차고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미군부대에 다니는 아버지를 둔 덕분에 피아노학원을 다니고 새집으로 이사를 가는 친구들을 보면 똑같이 미군부대에 다니는데도 늘 가난한 우리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아직 소시지 하나 못 먹어봤느냐고 놀리는 친구들 앞에서는 나는 미군들이 먹다 버린 쓰레기는 안 먹는다고 짐짓 당당한 척을 했다.-34쪽
"병원비? 미군이 때린 거라며 미군이 물어줘야지." 내 말에 해자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어, 이 멍텅구리야. 너 정말 몰라서 그래? 미군이 한국 사람 때렸다고 병원비 물어주는 거 봤냐?" 나도 그런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마음이 답답하다 보니 얼결에 나온 것뿐었다. 기지촌 사람들 사이에는 불문율이 있었다. 아무리 억울해도 괜히 미군한테 대들거나 시비를 걸면 안 된다는 거였다. 미군하고 실랑이가 붙으면 무조건 한국 사람만 손해였다. 미군들이 한국 사람을 때려서 심하게 다쳤다 해도 병원비 청구는 엄두도 못 냈다.-78쪽
엄마 말에 윤희 언니는 또 눈물을 그렁거렸다. 조산소에서 헤어진 뒤 일 년 반 동안 윤희 언니는 참 많이 변해 있었다. 하지만 언니가 강파르게 변한 것을, 예전처럼 살갑고 따뜻한 윤희 언니가 아닌 것을 섭섭해할 수 없었다. 이미 나 역시 언니가 까만 아기를 키우면서 사람들한테 얼마나 따가운 눈총을 받았을지, 그러면서 얼마나 속을 태웠을지 짐작할 만큼 철이 들어 있었다.-109쪽
재민이도 코끝이 빨갰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억지웃음을 짓는 재민이를 보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아 그때까지 겨우겨우 참고 있던 울음이 터져버렸다. "잘 가. 미국 가면 여기 생각 다 잊어버려야 돼." 그때 왜 하필 미국 가면 한국을 다 잊을 거라던 윤희 언니 말이 생각났는지 모른다. 나도 재민이도 윤희 언니처럼 한국에서 받은 상처와 기억을 다 잊기를 바랐다. 아무런 편견도 없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때까지 나는 미국이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곳이라는 어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다. "자, 이거 너 가져." 겨우 울음을 멈춘 내게 재민이가 불쑥 내민 건 우표수집책이었다. "이걸 왜 다 줘." "비행기 탈 때 짐이 너무 많을 거 같아서. 이거 보니까 너랑 같이 우표 사러 다니던 기억이 나더라. 여기에는 너한테 없는 것만 골라서 넣었어. 잘 가." 재민이는 내가 우표수집책을 받아 들자마자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대문 앞에 세워두었던 자전거에 올라타더니 쏜살같이 골목을 빠져나가 버렸다.-169쪽
"재민아, 동두천은 말이야. 사람들을 떠나보내지 않는 곳이야. 여기 살던 사람들에게 동두천은 특별한 흔적을 남기는 거 같아. 나는 여길 떠날 기회가 있었고, 얼마든지 여길 잊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아니더라고. 너랑 너희 엄마, 해자가 여기 동두천에서 질기고 독하게 사는 동안, 윤희 언니가 미국에서 눈물겹게 사는 동안 나도 그렇게 아프면서 살았어. 왜냐하면 동두천은 현실이거든. 이 땅 어디를 가도 지워버릴 수 없는. 그래서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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