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리 - 정우영

간에 좋대요, 아내 말 한마디에

옷핀 편 꼬챙이로 부지런히

대수리* 속살 콕콕 찔러 빼먹는다.

머릿속으로는 그 여린 생명 앗는 것을

송구스러워하면서도 솔깃한 유혹 물리치지 못한다.

머리와 유혹 사이 어중간한 공간을 비칠비칠 헤매는데

그림자 키워 창밖에서 그윽히 건너다보던

대추나무가 실실 키득거린다.

제 발치에 대수리 껍질 수북이 쌓아놓고

햇살 담뿍 머금어 푸른 대추 알알이

반짝반짝 살찌운 내 또래 대추나무,

간 없이도 건장한 어깨 들썩거린다.

민망해진 나는 그럴수록 더 빠른 손놀림으로

대수리 집어들고 꼬챙이 잇달아 쑤셔대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내가 대수리를 까먹는 게 아니라

대수리 스스로 내가 불쌍타는 듯

내 입으로 훌훌 날아드는 것만 같다.

제 몸 내게 기꺼이 보시하겠다는 듯

지들끼리 앞다투어 뛰어내리는 것만 같다.

 

* 전라북도 임실에서는 '다슬기'를 '대수리'라 부름.

- <집이 떠나갔다>, 창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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