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흔히들 이승이라고 말하는 인간세계를 바라보는 구도 가운데 제3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품들이 있다. 예를 들어, 천사라든가(<베를린 천사의 시>) 저승사자(서양식 저승사자는 <구해줘>의 경우)라든가... 이 작품 역시 주인공은 '사신(死神)'이다. 소임이 대상자를 만나 '죽어도 되는 사람인가'에 대한 가부간의 조사직을 하는 경우인데, 그들에게도 매너리즘이 있어 업무에 그리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한 거리감을 통해 인간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관계를 설정하고, 인간세계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생을 반추하게 한다는 장치인 것이다. 재미있는 구도는 이 사신들의 업무 외 소일거리가 대부분 음악을 듣는 것이나, 주인공인 치바가 조사작업을 수행하는 기간에는 꼭 비가 온다는 등등의 설정이다. 아뭏든 '인간' 또는 '삶'이라는 보편적 주제에 제3자의 시각에서 거리감을 두고 접근하는 설정은 꽤 재미있는 발상으로 읽힌다.

연작 형태의 여섯 편의 단편 중에서 인간세계에 대한 사신의 고찰이 나오는 대목들.

'나는 무심코 그의 옆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말았다. 기가 막힌다거나 놀랍다거나 하는 것과는 좀 다르지만, 어쨌든 위화감이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인간의 대부분은 죄를 저지르면 무거운 돌덩이나 술통이라도 짊어진 듯한 괴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초조감이나 공포감을 드러내기도 하고, 한층 더 흉악해지기도 하고, 아무튼 평상심을 잃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모리오카는 어딘가 모르게 자연스럽다. 도망치고 있고 때로는 신경질적인 면도 보이지만, 라면 가게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주인장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223~224쪽)

' "이봐, 달아나." 모리오카가 손을 뻗자, 그때 천만 뜻밖에도 여자는 화난 표정을 보이며 발로 모리오카의 팔을 걷어찼다. "뭐하는 거야! 달아나다니 무슨 소리야?" 여자는 으르렁대며 잇몸을 훤히 드러내고 있다. "너 유괴당한 거 아니야?" 모리오카의 눈은 이미 초점을 잃은 듯했다. "뭐?" 여자는 눈썹을 확 찌푸렸다. "오빠들이랑 드라이브하러 나온 것뿐이라구.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 장난하니."(262쪽)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 대해, 또는 인간세계에 대해 사신이 갖고 있는 상식들이 깨지는 것은 아마도 현대문명의 흐름에 따라 인간사고의 변화를 새삼 깨닫게 하는 듯하다.

그러나,

' "무슨 말인가?" "하지만 암으로 죽는 것보다는 이렇게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죽는 편이 잘 된 거예요." 끊길 듯 말 듯, 그는 그렇게 말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인간은 모두 죽어." "죽고 싶지는 않지만, 하지만 어차피 죽을 거라면." 그의 눈은 초점을 잃었다. "최선은 아니지만, 최악도 아니야." '(208쪽)

좋아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한 젊은이의 의연한 죽음에 대해 감동하기도 한다. 결국 이 작품은 여섯 편의 단편을 통해 개별 인간이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예를 들어 죽음에 대한 야쿠자의 시선이나, 칠순 노인의 시선 등)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죽음,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해를 통한 보다 '인간다운'  삶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비록 몇 편에 불과하지만 근래에 본 일본작가의 작품 중에서는 비교적 수작이라고 생각된다.(단, 몇 개의 오자나 미진한 교정을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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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9-07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밌게 보았어요. 소재가 참신한데, 제 경우 글이 좀 더 섬세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았답니다. 그래도 전 별 다섯개 줬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