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시장 - 정연홍

키를 꽂으면 부르르 몸을 떤다

하품을 하며 일어나는 바퀴 달린 코뿔소

사내는 엑셀레이터를 깊이 밟는다

드문드문 불 켜진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그들의 실루엣

어둠속 고양이들이 청소부의 빗자루를 툭툭, 건드리는 사이

간밤의 오물자국들이 바퀴에 눌려 흩어진다

골목길이 급히 허리를 휠 때마다

조수석 여자가 자리를 고쳐 앉는다

뒤로 젖힌 그녀의 얼굴에

선잠이 머리칼처럼 흘러내린다

사내는 여자를 돌아보고 잠시 웃는다

저들이 살아왔던 길들도 저렇게 급커브였을까

수금되지 않던 수수수 단풍잎

밤이 되면 안방까지 점령하던 빚쟁이들,

이삿짐을 꾸리던 그날 밤도

골목길은 휘어져 있었다

 

새벽 야채시장, 밤새 달려왔을 초록의 잎들이

사내의 트럭으로 옮겨진다

아무렇게나 던져 넣어도 척척 자리를 잡고 정좌하는 배추들

부부도 세월에 차여 이리저리 떠돌면 저리 될까

하지만 그들도 이제는 트럭에 오를 때마다

때 묻은 자리에 편안히 앉을 수 있다

사는 것은 자리 하나 제대로 잡는 것

코뿔소가 푸푸거리며 야채시장을 돌아

도시를 향해 헤엄쳐 간다

- <시평> 22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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