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출판 갈수록 ‘수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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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형출판사로 매출 집중
    중소형은 급감 고사위기

    경기침체 여파로 출판 시장도 불황의 먹구름이 짙어지면서 출판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자금력이 풍부한 대형 출판사들이 매출 규모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늘려가는 반면, 중소형 출판사들은 매출액이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특히, 소규모·다품종 생산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인문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들은 존립 자체를 위협받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출판사를 차린 지 8년째 된 한 인문학 전문 출판사 사장은 1일 “지난해에 비해 매출액이 30~40%는 줄었다”며 “출판시장 도매상들이 부도를 내던 아이엠에프 때도 이렇게 어렵진 않았다”고 울상을 짓고 있다. 그의 이런 한탄은 다른 대다수 소형 출판사 사장들에게서 어김없이 들을 수 있다. 철학·인문학 전문 출판사인 이제이북스의 전응주 사장은 “출판사를 차린 지 3년 만에 5억원을 까먹고 1억5000만원의 빚을 졌다”며 “그래도 우리 출판사는 직원 3명의 월급은 주고 있는데, 주위를 보면 월급을 몇달째 주지 못한 출판사들이 여럿 있다”고 인문학 출판사의 열악한 사정을 전했다. 실제로 150여 중소 출판사와 거래하고 있는 한 도매회사는 지난해에 비해 평균 18% 정도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돼 이런 사정을 방증하고 있다. 특히 5명 이하의 소규모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은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50%까지 매출액이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반면, 단행본 출판사로 매출액 순위 1, 2위를 다투는 랜덤하우스 중앙은 올해 상반기에 전년 대비 25%의 신장률을 보였다. 지난해 100억원이 넘는 매출액을 기록한 ‘북21’의 경우는 지난해에 견줘 성장률을 무려 70% 정도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단행본 출판사 가운데 지난해 가장 많은 매출액을 기록한 실용서 전문 출판사 넥서스도 20%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출판계의 양극화 현상은 통계에서도 그대로 잡히고 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소장 한기호)가 국내 출판도매업체들의 판매추이를 집계한 결과를 보면, 단행본 출판사 가운데 상위 20개사의 매출액은 2000년 전체 매출규모의 61%였던 것이 2002년에는 71%로 꾸준히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올해에는 75% 이상을 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상위 5개사의 경우 2000년에는 42%였던 것이 2002년에는 49%로 늘었으며, 올해는 50%를 훌쩍 넘어설 것이 확실해 보인다.

    한기호 소장은 “출판시장의 양극화 현상 배후에는 유통질서의 문란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한 소장은 “도서 정가제가 사실상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각종 할인점과 인터넷 서점, 대형 서점들이 자본력이 있는 출판사들과 손잡고 큰 폭으로 책을 깎아 팔거나 경품을 끼워서 파는 할인·경품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런 요구를 맞출 수 있는 대형 출판사는 유통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지만, 독자 수가 많지 않은 책을 펴내는 소형 인문 출판사들은 계속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백원근 선임연구원은 “출판을 이대로 왜곡된 시장에만 맡겨둘 경우 신문시장의 독과점화가 가속화되듯, 소형 출판사들의 소외와 위축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며 “그렇게 될 경우 문화의 정신적 기반인 출판의 다양성이 크게 훼손되고, 돈 되는 책을 좇는 대형 출판사에 독점된 시장에서 작지만 꼭 필요한 책을 내온 출판사들은 퇴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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