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통령은 시민 속으로 들어가려는 전직 대통령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퇴임해서도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을 통해 시민과 진한 대화를 나누는 전직 대통령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시민과 격의 없는 만남을 즐거워했기에 결국은 봉하마을을 관광 명소로 만들어버린 전직 대통령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현직 대통령 vs 전직 대통령 - 시민' 싸움이었습니다. 왜 장례 기간 내내 시민분향소와 서울광장을 경찰차벽으로 둘러쌌을까요? 죽은 노무현과 살아 있는 시민을 분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연장전의 한 장면입니다. 우리 눈에 선명하게 보인 경찰차벽, 그것 이전에 우리가 보지 못했던 긴 물밑싸움이 있었던 것입니다.-35쪽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인간 노무현은 자신이 받는 고통보다, 자신에 의해 받게 될 여러 사람의 고통을 참을 수 없어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마지막까지 자유인이 되지 못했다. 정치인이었다. 마지막까지 승부사였다. 이명박 대통령과 검찰과 보수언론에게 온몸으로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이제 그만, 나로 끝내라.' 그래서 그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고시 공부하면서 꿈을 키웠던 토굴 근처에 있는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45미터 낭떠러지 아래로. 역사 속으로.-47쪽
"그런데요. 나는 나 때문에 구박당하는 지지자들을 만나면 미안해하면서도 마지막엔 이런 말을 해줍니다. '조금 더 가봅시다. 조금 더 가봅시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작은 오류들은 있었지만 큰 틀에서는 제대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이렇게 되물었다. "오 대표, 근데 한번 물어봅시다. 내가 뭘 잘못했어요? 뭐가 틀렸어요?"-62쪽
노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컴퓨터에 '원칙이냐, 승리냐' 라는 화두를 적어놓았다고 했다. "원칙 있는 승리가 첫 번째고, 그 다음이 원칙 있는 패배, 그리고 최악이 원칙 없는 패배다." 대통령은 왜 '원칙 없는 승리'라는 가정을 하지 않았을까? 노무현 '정치사전'에는 그러한 가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일까? 대통령은 '원칙'과 '승리'를 별개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으로 인식하고 있었다.-84쪽
이명박 정권은 그런 식이다. 한 전직 대통령이 정치 보복 논란 속에 저세상으로 갔는데, 또 다른 노(老) 전직 대통령에게는 추도사도 못하게 하는 모욕을 안겨준다. 왜 그런 무리수를 둘까? 김대중-노무현 이어달리기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두려워서였을까? 그들은 모르나 보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역사 이어달리기, 그 길에 함께하는 이들은 두 전직 대통령만이 아님을. 노무현은 김대중을 공부했다. 이제 살아남은 자 누군가가 노무현을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126쪽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간곡히 호소합니다. 저의 안마당을 돌려주세요. 안마당에서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자유, 걸으면서 먼 산이라도 바라볼 수 있는 자유, 최소한의 사생활이라도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렇게 '간곡히 호소'하던 전직 대통령 노무현은 한 달여 후 저세상으로 갔다. 바보 노무현과 조중동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최종 싸움이 남아 있다. 역사의 눈높이에서 본 역사의 평가가 남아 있다.-156쪽
"무엇이 원칙이고 무엇이 전략인가. 원칙은 타협할 수 없는 것이고 전략은 타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론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라는 것은 가치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민주주의 정도의 수준을 갖춘 가치 그 자체가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인 것이고 나머지는 타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당내에서 FTA 같은 경우는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라크 파병까지 그렇게 봤습니다."-188쪽
2007년 가을, 퇴임을 6개월여 앞둔 대통령 노무현은 초조해하고 있었다. 도덕 문제와 신뢰 문제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경제, 경제' 하는 후보에 마음을 주고 있는 국민들에게 섭섭해하고 있었다. "지금 민주주의 문제나 도덕적 가치에 대한 문제를 전부 다 무가치한 것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고 있어요. 쟁점화가 안 되고 별 필요 없는 것처럼 그냥 묻혀버린 거죠. 그러나 결코 현실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황은 절대 그렇게 만만치 않은데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위기감이 없어져버렸어요."-231쪽
대통령 노무현은 나에게 반문했다. "뭐가 해결이 됐나요? 내 속이 탑니다. 미치겠어요." 그러면서 이번엔 자신에게 반문한다. "내가 민주주의를 하지 말았어야 했나요?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감이 없어진 게 참여정부에서 권위주의를 해체하고 민주주의를 확장시켰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그럼 내가 그런 것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아, 미치겠어." 대통령 노무현은 다음 대통령으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선택하고 있는 국민들을 향해 말했다. "권력이 저쪽으로 넘어가야 이쪽 사람들이 자성도 생기고 투쟁도 생길 겁니다. 지금 사람들이 위기감이 없어지고 전부 관심을 안 갖고 있는 것은 권력이 저쪽으로 안 넘어가 있으니까 그래요."-이어서쪽
노 대통령은 공권력과 정보(이데올로기), 그리고 돈, 이 세 가지가 결합해서 권력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그는 그 중에서 유권자의 최종 선택을 결정짓는 정보(이데올로기) 마당이 '결전의 장'이라면서 미디어 공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주권자인 유권자들이 정보와 이데올로기를 미디어를 통해 접하고 움직이니까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부분에서 약합니다. 그럼 어떻게 (진보언론이) 독자층을 넓혀갈 것이냐? 소비자의 성향을 바꾸지 않으면 주류가 될 수 없습니다. 독자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가치와 비전, 그리고 전략을 보여주면서 끊임없이 그들을 설득하고 훈련시키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242쪽
"아주 깔끔하게 정리는 안 되어 있지만, 아까 내가 말한 몇 가지 명제, '권력은 위임하되 지배는 거부한다.' 뭐 이런 것이 요새 머릿속에 정리해보려고 시도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대강 이쯤 해가지고 오연호 기자한테 맡겨놓을 테니까 나중에 알아서 잘 정리해주세요."-25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