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말 지인들과 대통령 사저에 나무를 심으러 갔었다. 대통령은 봄에 활짝 필 꽃들을 생각하며 권양숙 여사와 매화나무 심을 자리를 고르고 뒷마당 담벼락에 심어 두었던 사철나무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나무를 다 심고 우리는 한곳에 모여 식사를 했다. 대통령은 우리가 준비해간 생선회를 들며 "청와대 안에서 먹던 것보다 훨씬 더 맛있네요" 하며 특유의 그 소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때가 현실 속에서 내가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그리운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김은경-전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58쪽
'자존심은 한없이 강하지만 너무 솔직하고 여리고 눈물 많은 남자' 라고 이광재 의원은 인간 노무현을 그렇게 표현했다.(상동)-59쪽
노 대통령은 미국의 국무 장관, 국방 장관, 의회 지도자가 방한하면, 그들을 반드시 면담하고 접견 시간을 두세 배 더 할애해 한국의 입장을 설명하는 데 힘썼다. 나는 그때마다 '한미 관계와 동북아질서의 미래'라는 학술세미나에 참석한 것 같았다. 대통령은 특히 "한국인의 입장에서 '안보'라는 말을 생각해보라. 삶과 죽음의 문제다"라며 역지사지를 강조했다. 통역을 두고 대화하지만 외교의 상대방들은 노 대통령의 진지한 자세와 솔직한 성품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으로 느껴졌다.(김정섭-전 청와대 대변인)-79쪽
노 대통령은 2007년 12월 열린 균형발전정책보고회에서 "균형발전은 특별히 귀한 자식이다. 출세하고 힘 있어서 귀한 자식이 아니라, 재능과 의지는 있는데 빛 보지 못하고 고생하는 자식 같은 존재, 그런 심정으로 균형발전정책을 시작했다. 이제 희망은 보이는데 앞으로 계속 성장해줄지 불안하다. 어미새가 새끼를 혼자 날 수 있도록 돌봐주는 것처럼 지금껏 최고 우선순위를 둬왔지만, 앞으로 그런 대접을 받을지 걱정이다"라며 불안과 아쉬움을 토로했다.(상동) -80쪽
그러면서 "정책은 수혜자가 그 주인이다. 정책은 주인이 잘 돌봐야 제대로 간다. 성숙한 사회라면 전 국민이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이 정책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균형발전정책도 지방사람들이 주인 행세를 하면 지켜 나갈 수 있다"고 당부했다. 마산 간담회에서는 "집중이 좋은가, 분산이 좋은가? 분산이 국가에 유리하고, 국민 삶의 질도 분산했을 때 높아진다. 선진국이 모두 분산과 균형정책을 택했다. 행정수도 이전은 수도권 집중 해소를 위한 것이다. 아울러 지방적 사고를 하는 정부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국가정책을 서울에서 입안하는 것과 세종시에서 하는 것은 관점 자체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상동)-이어서쪽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출발하는 날(2007년 10월 2일), 본관 충무실에서 국무위원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대통령은 "(우화 속의) 두루미와 여우처럼, 잔칫상은 잔뜩 차렸는데 서로 딴 얘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돼요. 우선 보따리만 잔뜩 가져갑니다"라고 농담했다. 남북정상회담 직후에는, 그전에 정상회담을 왜 하지 않느냐는 비판이 많았다며 "익은 감을 따야기 땡감을 따라는 말이냐. 국사에도 순서가 있다. 정상회담은 서둘렀다면 잘 안 됐을 것이다. 때가 돼서 한 것이다"라고 했다.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담을 회고하면서는, "대화시간이 빠듯했다. 밑자락을 먼저 두툼하게 깔고, 또 슬그머니 끼워 넣고 하면서 해야 했다. 마치 '술이 있으면 안주가 있어야 한다' 해놓고, 그 다음에는 '이 안주에는 이 술이 좋다' 하는 식으로 대화를 풀(FULL)로 밀어붙였다. 네 시간 동안 굉장히 능률적인 회담을 했다. '됐나?' 하고 '됐다!' 하면 한 건 해치우고..."라고 회고했다. 그래도 시간이 부족해서 꺼내보지도 못한 문제가 많다고 아쉬워했다.(상동)-82쪽
노 대통령은 공사석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권력 집중과 국민들의 지나친 기대, 그로 인한 실망과 '실패한 대통령' 낙인찍기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그때마다 고 팔메 수상처럼 별다른 경호 없이 나들이도 하고 시장도 보고 언제든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친구 같고 이웃 같은 대통령'을 선망했다.(상동)-85쪽
"국민 여러분.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그냥 우리 땅이 아니라 40년 통한의 역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 역사의 땅입니다. ..(중략).. 지금 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의한 점령지 권리, 나아가서는 과거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중략).. 우리는 결코 이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중략).. 우리 국민에게 독도는 주권 회복의 상징입니다."(2006. 4. 25. 노무현 대통령 특별담화)(상동) (김현-전 춘추관장 겸 보도지원비서관)-87쪽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은 피기 쉬어도 아름답긴 어려워라./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산을 잎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야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고 김광석의 노래라 더 아프다. 엉엉 울었다. 소리 내서 엉엉 울었다. 장례 기간 내내 흘러나온 이 노래, 골방에서 혼자 이 노래를 부르며 엉엉 울었다.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어지러울 만큼 많이 울었다. 답답한 가슴이 좀 뚫린 듯했지만 사무치는 그리움에 또 울지 않을 수 없었다.(서영교 - 전 춘추관장 겸 보도지원비서관)-147쪽
빌딩에 오셔서 저희를 한참 쳐다보고는 후보 방이라고 꾸며 놓은 방에 들어가서 앉더니,
"자네들 이리 와서 보세." "왜요?" "이거(사무실) 왜 얻었어요?" "대선 도전하셔야죠." 그랬더니 대통령 하시는 말씀이.. "아직 마음을 못 굳혔는데." "아! 하셔야죠. 무슨 소리입니까?" 그러자 이광재 의원과 제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시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들 질 때 생각은 안 하나? 싸운다는 것에는 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동시에 열려 있는 것인데, 질 때 생각 안 하나? 지면 어떡할 거야? 지면 도와야지. 그런데 도와줄 자신 있는가? 난 없어. 도울 자신도 없으면서 왜 거기 승부에 뛰어들지?" "...." 그 순간 저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심정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그 때 이인제 대세론이 판을 치고 있는데, 진다면 불공정 경선이라고 시비하면서 판을 깨버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제 눈을 보면서 "자네들 질 때 생각 안 하는가? 질 때 이인제 후보 선거운동 할 자신 있느냐 말이야. 나는 3당 합당을 쫓아갔다가 경선에 불복하고 뛰쳐나온 그 사람, 우리 진영의 후보라고 자랑스럽게 운동할 자신이 없네."...(안희정)-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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