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탄생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품절


그러나 설날(2008), 온 국민이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말 하는 이 지독한 '경제 신앙국'에 희망이라는 게 있을 턱이 있나? 지옥이라면 바로 이곳이 지옥일 게다. 영화 <콘스탄틴>에는 지옥에 대한 아주 세세한 묘사가 나온다. 뇌가 뻥 뚫려 있고 입만 기형적으로 커진 '지옥의 시민'에 대한 묘사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한국 정치인, 한국 기업인 그리고 한국의 학부형들에 대한 묘사와 기가 막히게 일치한다. "지옥은 마음속에 있습니다."라는 표현을 생각하면, 가난한 사람들, 약자 그리고 많은 여성들에게 한국은 이미 '쌩'지옥이다. 그런데 희망을 말하라니? 없는 희망을 어떻게 말할 수 있나? 이 시리즈명(한국경제대안시리즈)에 들어 있는 '대안'이란 말에는 잔인한 의미가 담겨 있다.-6쪽

그리고 학자로서의 삶을 거의 포기할 뻔했던 절망의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의욕을 불타게 해준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남다른 감사를 표해야만 하겠다.-10 쪽

홉스의 '리바이어던'-15쪽

어쨌든 현재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과 자신이 '서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앞으로 3년 동안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국민경제의 미래가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서민, 사실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이 기괴한 단어는 박정희가 유행시켰고, 이제는 경제학과는 상관없어진 아주 정치적인 용어가 되어버렸다. '서민이 행복해야 좋은 경제'라는 의미로 통용되겠지만, 언젠가부터 대단히 반동적인 용어가 되었다. 한국에서 이제 서민이란 '너희들은 쓸데없는 데 상관하지 말라'와 같은 말이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영화 <콘스탄틴>의 비유를 들자면, '뇌는 사라지고 입만 큰 존재'와 동의어가 되었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지만, 하여간 그렇게 되고 말았다. 국민, 시민, 민중 같은 용어 대신에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가장 하부의 주체들을 한국에서는 서민이라고 부르게 된 셈이다. 지금 정치인이 말하는 서민이란 '조작이 가능한 사람들'이고, 언론에서 서민이라고 부를 때는 '논설로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는 존재'를 뜻한다. 한국 경제가 정말 '좋은 국민경제'가 되는 순간은, 역으로 '서민'이라는 용어가 사라지는 순간일 것이다.-22쪽

새로 출범한 노무현 정권은 한국에서 그 어느 때보다 변화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시기였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하면서 '2만 달러 경제'라는 식으로 1인당 국민소득을 국정의 최대 기조로 잡는, 세계적으로 거의 전례가 없는 이 과정을 통해 한국 경제는 본격적인 위기로 진입하게 됩니다. 그는, 케인즈 우파 정도의 정책기조로 볼 수 있는 '한국형 뉴딜'과 같은 토목사업 중심의 경제운용 계획을 세워 1970년대 박정희식의 고성장에 의한 포퓰리즘을 시도합니다. '골프장 300개'를 비롯해, 이름도 세기 어려운 수십 개의 특화 도시들에 대한 계획을 세우면서 21세기형 한국 경제의 전환에 결정적인 오점을 남기게 되지요. '2만 달러 경제'와 더불어 노무현 1기에 국정지표가 되었던 것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였습니다. 이러한 경제정책은, 외형적으로 대실패라고까지 하기에는 뭤하지만, 적절한 국민경제의 구조조정 시기를 놓침으로써 한국 경제를 헤어나기 어려운 구렁텅이로 빠뜨리게 됩니다.-138쪽

한국에서 기업은 김대중 2기, 즉 2001년에서 2002년 사이에 이미 승리를 얻었고, 그 뒤의 5년은 기업에 의한 지배라 할 '삼성공화국' 현상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중남미의 경제구조가 IMF의 권고와 미국의 나프타를 통해서 완전히 해체된 것과는 달리 한국에서 아직도 공공 부문이 남아 있고, 또 기업집단이 정부를 직접 장악하지는 못한 상태이지요. 그런데 이것을 해내겠다는 것이 이명박의 후보 시절 공약이었는데, 어쨌든 이로 인해서 한국의 기업은 완전히 정부를 장악하게 되고, 또 권력으로서의 시장은 그 절정에 도달하게 됩니다. 남은 것은 중남미형 경제로의 전환을 충실하게 이루면 되는 일입니다.-152쪽

자, 그럼 여기서 이 핸디캡 개념을 한국이라는 공간에다 적용해봅시다. 지방에 사는 사람은 지금의 시스템에서 출발부터 핸디캡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에 사는 대학생은 원래 사는 집에서 아침에 밥먹고 나와서 학교에 오면 되지만, 지방에 살던 대학생은 전혀 다른 조건에서 학생으로서의 삶을 꾸려가야 합니다. 실제는 그 정도에서 결코 끝나지 않지요? 비단 대학생만이 아닙니다. 이 '서울공화국' 체제에서 이미 '내부식민지'로 전락한 지방, 거기에 사는 사람들 역시 핸디캡을 가지고 있겠지요. 이게 싫어서라도 어떻게든 서울에 오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181쪽

그러다 보니 지금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사는 이상한 구조가 되었지요. 그뿐이던가요?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은 한국에서 살아가기도, 차별 없이 경제활동을 하기도 대단히 힘듭니다. 여기에 나이라는 변수, 즉 '세대'라는 개념도 추가해야지요. 제가 <88만원 세대>를 쓸 때 확인해본 정부 통계에 의하면, 이십대는 노동자 평균에 비해 74%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더군요. 여기에 마지막으로 '고졸'이라는 변수 하나를 추가해봅시다. 느낌이 좀 오시는가요? 이런 여러 가지 요소를 '약한 고리'라고 불러 봅시다.-182쪽

만약 어떤 이가 이십대이고, 여성이고, 지방에 살고 있는데, 거기에 고졸이고, 또 아주 약간 다리가 불편하다고 생각해봅시다. 자, 이 사람의 삶은 어떨 것이고, 임금은 어느 수준일지, 도대체 가늠이나 되십니까?-182쪽

쉽게 말해 '좋은 경제'란 게 뭘까요? 아주 부자는 아니더라도 그 시젤에 사회가 '성실'이라고 말한 것들을 충실하게 수행한 사람의 입에서 '죽겠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국민경제 아니겠어요?-184쪽

우리가 양극화라고 부르는 현상, 지식이나 문화 부문 대신 투기 영역으로 사회적 부와 자본이 흘러 들어가는 현상, 서울과 지방의 내부 식민지 문제, 그리고 십대들을 매개로 사교육을 통한 '인질경제'가 중산층의 소비능력마저 분해하는 현상...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이 숱한 문제들은 지금의 대통령이 말하는 것처럼 대기업에 모든 경제적 성과를 몰아준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또 힘들게라도 공공 부문을 지켜낸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닐 겁니다. 여기에 조건 하나가 더 필요하다면, 어려워도 지금 공공 부문을 지켜내면서 동시에 미약하게나마 제3부문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 아닐까 합니다.-198쪽

한국 경제는, 계속해서 떨어지는 경제적 효율성을 비정규직화와 노동시간의 유지를 통해 억지로 끌어가는 중입니다. 그래서 '삶의 질'과 같은 고상한 단어가 아니라, 고통지수 혹은 신경질환발생률 같은 것으로 '삶의 고통'을 짚어보기에 훨씬 알맞은 나라입니다. 일을 많이 시켜도 좋으니 일할 자리라도 달라고 절규하는, 이런 경향은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한국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점차 괴로워지는 중입니다. 앞서의 강의에서 말했던 '약한 고리'들로부터 지옥을 체험하고 있다는 거지요.-219쪽

그런데도 노무현 때부터 강화되어온 토목경제로의 전환이 이명박 시기에는 아예 대놓고 진행되는 중이니, 생태적 효율성은 엄청나게 떨어지겠지요. 농업은 몰락하고, 생태계는 보존이 아니라 어떻게든 파내서 먹고라도 살아야 한다는 상황으로 갈 텐데, 이렇게 생태적 효율성과 경제적 효율성이 동시에 떨어지는 방향으로 한국은 가고 있습니다.-220쪽

그러나 이 논리는-개개인에게는 유용한 진리가 집단에게는 전혀 유용하지 않다는-'구성의 오류'라는 논리증명으로써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습니다. 야구장에서, 누군가 더 잘 보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면 결국 모든 사람이 다 일어서게 됩니다. 그러나 모두가 일어서면 결국 처음에 모두 앉아 있던 경우와 마찬가지가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일어서서 게임을 봐야 하니까 나중에 다리가 아프겠지요. 그리고 다리가 아픈 게 싫어서 그냥 앉아 있는 사람들은, 같은 돈을 내고 야구장에 들어왔는데도 게임을 전혀 볼 수가 없게 되지요. 이 상황은 사교육 열풍의 경우가 완전히 똑같습니다. 과외 혹은 사교육은 이런 '구성의 오류'와 마찬가지로, 모두가 사교육비를 지출하지 않거나 혹은 모두가 사교육비를 지출하거나 같은 상태가 된다는 거지요.-224쪽

물론, 현실에서는 모두가 사교육비를 지출할 수 없으므로, 이런 게임은 진행되자마자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승리하는 게임이 되고 맙니다.-224쪽

담배와 휘발유 같은 재화에서 보듯이, 가격이 아주 많이 오르면 대체재를 찾거나 소비를 줄이겠지만, 과거 데이터를 꼼꼼히 살펴보면 가격이 올랐던 당시만 잠깐 소비가 급감하고 두어 달 지나면 다시 원래 소비 상태로 돌아감을 알 수 있습니다. 자가용 운전자가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거나, 혹은 주행량을 잘 줄이지 않는 것은 그 재화의 중독성 때문입니다. 대학등록금의 결정 과정도 이와 유사한 흐름을 보여줍니다. 조금씩 조금씩 물가상승률의 몇 배를 올리더라도 어지간해서는 그 소비자들이 가격 상승에 저항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232쪽

물론 더 이상 사람들이 그 비용을 내고는 대학을 못 가겠다며 격한 저항에 나서지만 않게 될 수준에서, 대개는 등록금이 결정됩니다. 그러나 등록금이 그렇게까지 올라가도, 부모들은 대학교육을 다른 '대체재'가 없는 중독성 재화처럼 간줗나 채, 여타 소비를 줄이고 빚을 내서라도 그 가격을 지불하게 되지요.-232쪽

한국의 교육은 '외고'라는 것을 만드는 순간에 제 정신을 가진 경제학자가 참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지만, 그렇게 '풀 파워'의 기운을 받은 학원들이 주식회사가 되는 상황을 많은 동료 경제학자들이 묵묵히 참고 있다는 것은 한국 경제학계의 수치입니다.-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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