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깅이 - 청소년을 위한 <지상에 숟가락 하나> 담쟁이 문고
현기영 지음, 박재동 그림 / 실천문학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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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덕정 광장에 읍민이 구름처럼 모인 가운데 전시된 그(이덕구)의 주검은 검은 카키색 허름한 일군복 차림의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집행인의 실수였는지 장난었는지 그 시신이 예수 수난의 상징인 십자가에 높이 올려져 있었다. 그 순교의 상징 때문에 더욱 그랬던지 구경하는 어른들의 표정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심란해 보였다. 두 팔을 벌린 채 옆으로 기울어진 얼굴. 한쪽 입귀에서 흘러내리다 만 핏물 줄기가 엉겨 있었지만 표정은 잠자는 듯 평온했다. 그리고 집행인이 앞가슴 주머니에 일부러 꽂아놓은 숟가락 하나, 그 숟가락이 시신을 조롱하고 있었으나 그것을 보고 웃는 사람은 없었다.-46쪽

그게 동물적 본능인지는 몰라도, 그 시절 나는 상처를 핥는 버릇이 있었다. 워낙 돌이 많은 고장이라 나 같은 아이들은 천방지축 뛰어놀다가 길바닥의 돌부리에 채어 넘어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내 무르팍은 성한 날이 드물 지경이었다. 무르팍이 깨져 피가 나오면 혓바닥으로 핥고 나서 고운 흙가루를 뿌려 지혈시키곤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상처들은 대개 덧나지 않고 쉬이 아물었다.-84쪽

<어머니와 어머니>가 씌어진 것도 바로 그러한 사정에서였다. 그러니까 그 작품이 곧 내 경험의 고백은 아니라는 말이다. 아버지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사실은 나에게도 치욕이였으므로, 그 작품 속에 드러나지 않게 은폐되어 있었다. 작품의 분위기는 내 경험에 의한 것이었지만 이야기 자체는 지어낸 픽션이었다. 그래서 주인공 소년은 나 자신도 아니고 승언이도 아닌, 그 둘이 합쳐진 것에다 다른 무엇이 더 보태어진 제3의 인물이 되었다. 픽션의 이름으로 난생처음 만들어본 그 인물에다 내가 지어준 이름은 준이었다. 속눈썹 긴, 슬픈 눈매의 소년.-186쪽

그렇게 아무 분수도 모르고 한 일이 그 후 내 인생을 좌우한 평생의 업이 될 줄이야. 승산 없는 싸움의 시작, 글쓰기 인생이란 아무리 애써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 아닌가. 물론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나의 고달픈 글쓰기 인생은 바로 그 작품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일탈 행위가 없었다면 아예 그 작품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을 생각할 때, 무정한 아버지야말로 나를 이 길로 걸어가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글쓰기는 그 작품에 앞서, 부재중의 아버지를 향한 7년 가까운 편지 쓰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계속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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