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에세이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2월
장바구니담기


하지만 생각해보면 세상에 살면서 죽을 고비도 여러 번 있었다. 대개는 사고가 일어날 뻔한 일이고 더러는 내가 자초한 일도 있었다. 만일 그때 그 운전자가 핸들을 약간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돌렸거나, 바람이 좀 더 세게 불었거나, 나를 목 졸랐던 괴한이 얼결에 팔을 풀지만 않았어도, 새벽안개 속에서 달려오는 트럭에 뛰어들려는 나를 잡는 누군가의 손길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일을 생각하며 나는 겸손이라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얼마 전 누가 "마음에 새기고 사는 구절 하나쯤 있으세요?" 묻길래 그런 대답을 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내 맘대로 되는 일 하나도 없다. 그래서 순간순간이 재미있다."-154쪽

오늘도 우리 둘째와 셋째는 티격태격한다. 언제나처럼 애들의 대화는 이렇게 끝이 난다.
"니가 먼저 그랬잖아!"
"형아가 그러니까 내가 그랬지."
그러면 한 살이라도 더 먹은 내가 억지로,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됐다, 다 에미 탓이다. 내가 너희들을 더 좋은 성격으로 낳지 못해 그렇다. 그러니 그만들 해라." 하면, 아이들은 엄마에게 감동을 받아 조용히 생각에 잠기기라도 해야 하는데 천만의 말씀, 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둘이 입을 맞추어 그런다.
"맞아, 엄마 탓이야!"-163쪽

"아이들 우열반 편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대답했다.
"모든 과목에는 아이들 별로 분명 우열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함께 넣어놓으면 다들 힘들어요. 수학을 못하는 게, 영어를 못하는 게 열등하다는 것과 동일어가 되는 게 더 문제가 아닐까요? 김연아라면 어땠을까요? 박태환이라면? 우리 아이는 수학은 아니지만 영어도 아니지만 피겨도, 수영도 아니지만, 그 다가 아니라도 무언가 잘하는 게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게 뭔지 아직 나는 모르지만 저는 그걸 믿어주고 싶어요."
기자는 나를 아직 철없는 엄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여느 때처럼 생각했다.
하는 수 없지!-20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