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달에 취한 그대에게

정용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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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주·시인
치악산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내 움막을 방문하는 사람들 중에 이곳을 취월당(醉月堂)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움막 뒤편의 톱날 같은 능선에서 잡힐 듯이 불쑥 얼굴을 내밀고 하나의 흠집도 없이 사뿐히 무한 허공으로 제 몸을 띄워 올리는 이 기막힌 순간을 운 좋게 맞이하는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그 달에 취한 듯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달에는 모든 이들의 잃어버린 추억이 저장되어 있다. 산 속에 살며 때로는 잊어버리고 한줄기 굴뚝 연기를 겨울 숲으로 보내고 잠이 들 때에도 저 달은 묵묵히 내 움막을 내려다보며 긴 밤을 건너가고, 문득 쳐다보면 달은 두고 온 아이와 같이 저 혼자 불쑥 커져 나를 쳐다보고 있다.

오늘은 음력 열엿새 날, 십육야(十六夜)이다. 매월 열엿새 날 밤에 뜨는 달을 기망(旣望)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바라보며 감탄하던 달은 보름달이 아니라 오히려 기망이라고 하는 이 달이었다. 송나라의 소식(蘇軾)은 적벽부(赤壁賦)에서 '임술지추 칠월기망(任戌之秋 七月旣望)' 으로 시작하며 밝은 달빛 아래 천하의 절경으로 일컬어지는 적벽의 흥겨운 놀이를 담고 있다. 그 옛사람이 보던 달을 이제 내가 보고 있다.

아무도 올 이 없는 산 속의 밤에 장작 몇 개를 가져와 마당에 모닥불을 피운다. 노란 종이 등이 켜진 방으로 들어가 오래된 빙 크로스비의 크리스마스 캐럴송을 틀어놓는다. 남자의 낮은 음성으로 은은하게 울리는 '고요한밤 거룩한밤'이 창호지 문틈으로 흘러나온다. 겨울나무와 달과 별이 음악을 듣는다. 이렇게 내 한해는 가고 또 새로운 해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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