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논에서 짠물이 나오니 참… "
섬진강 하구 농민들 '염분피해'로 생계 막막
광양만 매립·강 골재채취 따라 해수 유입
재첩도90% 급감… '남도의 젖줄' 말라가
水公등 뒷짐에 주민들 내주에 상경 시위
광양·하동=안경호기자 khan@hk.co.kr
2일 오후 전남 광양시 진월면 인근 섬진강변에서 한 어민이 바닷물 역류로 폐사한 민물조개 재첩을 치우다 말고 주저앉아 허탈한 표정으로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다. 안경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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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전남 광양시 진월면 인근 섬진강변에서 한 어민이 바닷물 역류로 폐사한 민물조개 재첩을 치우다 말고 주저앉아 허탈한 표정으로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다. 안경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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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엑, 퉤퉤! 물 맛이 더 짜져븐 것 같소. 에잇, 퉤퉤!"
2일 오후 전남 광양시 진월면 송금리 송현마을. 자신의 양상추 재배 비닐하우스 앞에서 뽑아올린 지하수를 맛보던 김현홍(53)씨는 연방 침을 뱉어댔다. "염전도 아닌디 멀쩡한 땅에서 짠물만 나오고, 정말 미쳐블겄소. 이런디 농사를 짓겄소?"
지하수 관정 구멍을 우악스럽게 틀어 막던 김씨는 "섬진강(하구)에서 12㎞나 위쪽에 있는 곳에서 판 지하수가 이 모양"이라며 "목구녕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이 물을 끌어다 비닐하우스 난방용으로 쓰기는 하요만, 이 땜시 노랗게 변한 양상추를 보면 (농사를)때려 치우고 싶당께"라고 허탈해 했다.
'남도의 젖줄' 섬진강 하구에 농어민들의 한숨소리가 넘쳐 나고 있다. 바다로 흘러가야 할 강물이 오히려 바닷물에 밀리면서 바다화 해 섬진강을 밑천으로 살아가는 영호남(전남 광양ㆍ경남 하동) 주민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 지류까지 차고 올라온 바닷물로 농업용수를 빼앗긴 농민들은 "물이 부족하다"며 아우성이다. 평생 섬진강 특산물인 재첩을 잡아 삶을 이어가던 어민들도 하나 둘씩 짠물로 변한 강을 등지고 있다.
"세상에 강에서 적조가 발생하고 감성돔이 잡힌다면, 볼짱 다 본 것 아니겄소?" 진월면 월길리에서 20년째 재첩잡이를 해온 양현호(63)씨는 넋이 반쯤 나가 있었다.
올해 최소한 30톤은 채취했어야 할 재첩을 겨우 3톤밖에 건지지 못해 1,000만원의 적자까지 본 터였다. "수년째 적조가 생기면서 재첩 씨가 말랐어. 그나마 건진 것 중 폐사한 게 절반 이상이여. 무담시 죽은 것 골라낸다고 인부 썼다가 돈만 날렸제. 올해도 빚 갚기는 폴세 틀렸어."
재첩 산지로 유명한 경남 하동군 신기리 상저구 마을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이미 하구 일대가 바다로 변하면서 생계기반을 잃은 주민들 대부분이 막노동판을 전전하고 있다.
주민 경강근(50)씨는 "재첩과 민물고기는 다 죽고 붕장어나 농어, 숭어 등 바닷고기만 잡힌다"며 "돈벌이가 없어진 마을 사람들 80% 가량이 인근 광양제철소나 하동화력발전소 등지에 잡부로 일을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바닷물의 역류는 현재 강 하구에서 상류쪽으로 20여㎞ 지점인 광양시 다압면 신원리까지 집어 삼켰다. 이 곳 염분농도는 바다의 평균 염분농도 30~32‰(퍼밀ㆍ1퍼밀은 1,000분의 1)에 육박하는 26‰로, 이미 민물생태계는 파괴된 상태다. 이 때문에 강 중류에 있던 다압취수장도 상류쪽으로 4.6㎞ 올라가 새로 지어 이전했다.
바닷물이 섬진강을 거슬러 북상하는 것은, 강 하구와 연결된 광양만에 광양제철소와 율촌산업단지 부지 매립으로 수위가 41㎝ 높아지고 자치단체의 무분별한 골재 채취로 강 바닥이 2m 정도 낮아지면서 해수 유입량이 증가한 반면 주암댐 건설 등으로 섬진강 수량이 줄어든 탓이다.
실제 2003년 당시 건설교통부의 섬진강 수계 하천정비기본계획에 따르면 주암댐 건설 이후 강 중류인 경남 하동읍 송정지점의 초당 유입량이 98㎥에서 49㎥로 절반이나 줄었다.
게다가 현재 다압취수장이 하루 28만 톤의 섬진강 물을 뽑아올리고 있지만 주암댐과 섬진강댐에서 하천 유지용수를 흘려보내는 양은 1일 19만여 톤에 불과하다.
초당대 환경보건학과 조기안 교수는 "섬진강이 물을 주암댐과 취수장 등에 빼앗기면서 늘 수량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다"며 "강물이 마르면서 바닷물이 올라와 농어업 피해가 속출하는 만큼 한국수자원공사와 광양제철 등은 당장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관계 기관들은 뒷짐만 지고 있다. 수자원공사는 2006년 4월 섬진강 주민들과 섬진강 환경영향 및 농ㆍ어업 피해 조사를 하기로 합의해 놓고도 3년째 연구용역발주도 하지 않고 있다.
포스코 광양제철도 광양만권 부지 매립으로 인한 수위상승 등 섬진강 피해를 인정하면서도 주민들의 대책 마련 요구에는 귀를 막고 있다. 심지어 영산강유역 환경관리청은 섬진강 바다화와 염해 피해 실태 등에 대해 "우리는 잘 모른다. 전문가인 초당대 (조기안) 교수에게 물어보라"는 황당한 답변만 늘어놓았다.
광양 진월면 선소리 이기태(53)씨는 "주민들이 10년 넘게 염해 피해를 호소하고 섬진강 살리기에 나설 것을 요구했는데도 책임 지고 나서는 곳 하나 없다"며 "지금껏 제대로 된 섬진강 환경피해실태 조사도 한 번 없었다는 게 말이 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참다 못한 섬진강 주민들이 포스코와 수자원공사 등을 상대로 '전면전'을 선포했다. 섬진강 바다화 방지와 염해 피해 대책 등을 촉구하는 대규모 상경 시위를 벌이기로 한 것.
영호남 농어민 염해 피해 대책위원회 김영현 상임대표는 "섬진강 바다화로 인해 생계를 위협 받고 있는 광양과 하동 지역 농어민들은 줄잡아 10개 읍ㆍ면ㆍ동 3만여 명에 달한다"며 "8일 포스코 본사 앞 시위를 시작으로 전면투쟁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