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사들 ‘교과서 사수작전’
추천 거부·서명운동·1인시위…
 
 
한겨레 김소연 기자
 








 
“고작 2시간 교장 연수로…”
“정권 바뀌었다고 뿌리 흔드나”
학운위서 호소·교육청 민원


서울·부산·강원 지역 등의 일선 고교에서 교육청의 압력으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재선정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역사교사들이 “두 시간 동안의 교장 연수가 수십 년을 쌓아온 역사교사들의 전문성을 무너뜨리고 있다”며 ‘교과서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서울 강남구 경기여고에서는 역사교사들이 교사들의 정당한 권한을 활용해 교과서 재선정을 무산시켰다. 교장이 서울시교육청이 연 ‘좌편향 교과서 바로잡기’ 연수에 다녀온 뒤 곧바로 교과서를 바꾸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지만, 이 학교 역사교사 5명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회의를 열어 교과서 재선정에 반대하기로 의견을 모은 교사들은 학교운영위원회에 새로운 교과서를 추천하지 않는 방법으로 교과서 재선정 작업을 막아내기로 했다. 교과서를 다시 선정하려면 1단계로 해당 교과 교사들이 3종의 교과서를 선정해 학운위에 넘겨야 한다는 검정도서 선정 절차를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이들은 3종의 교과서를 선정하지 않고, 대신 전체 교사를 상대로 교과서 재선정 반대 서명을 받아 50여명이 넘는 교사들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학교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학운위에 교과서 변경 안건을 상정했다. 역사교사들은 학운위에 참관해 다시 한번 교과서 재선정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결국 학운위는 “교과서를 변경하지 않겠다”는 결론을 냈고, 교장도 이 결과를 2일 교육청에 통보했다. 이지현 교사(역사)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교과서를 다시 선정한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드는 행위”라며 “겨우 재선정을 막아냈는데 결국 교과서가 대폭 수정된다고 하니 참담하다”고 말했다.

강원 ㅂ여고도 비슷한 경우다. 이 학교 교장은 지난달 24일 “교과서를 재선정해 도교육청에 보고해야 한다”며 역사교사들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교사들은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교과서 선정을 교육청에서 지시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교장은 곧바로 학운위를 열어 교과서 재선정을 위한 표결을 진행했고, 표결 결과 기권 1명, 반대 2명, 찬성 9명으로 가결됐다. 교사들은 포기하지 않고 학기가 시작되기 6개월 전에 교과서를 선정하도록 한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및 검정도서 선정 절차 위반 등을 이유로 도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결국 교장은 재선정 결정을 철회했다.

물론 성공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산 부흥고 홍혜숙 교사(역사)는 “교육자의 양심으로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며 학교에서 닷새 동안 1인 시위를 했으나, 역사교과서 재선정을 막지는 못했다.

윤종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교과서 수정과 재선정, 서울시교육청의 현대사 특강 등을 보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지키기 위해 교과서 재선정을 막는 데 온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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