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과서 왜곡, 왜 이렇게 밀어붙이나 했더니
사설
 
 
한겨레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과 관련해 정진곤 교육과학문화수석을 크게 질책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자신을 보좌하는 수석들을 혼내는 일이야 새삼스러울 게 없다. 과거 정권에서도 아랫사람의 군기를 잡을 때 이따금 벌어지던 일이기도 하다. 이날도 정 수석뿐 아니라 다른 수석들도 대통령한테서 호된 꾸지람을 받았다고 한다.

문제는 대통령의 질책 내용이다. 이 대통령은 정 수석에게 “수정을 거부하고 있는 출판사의 입장은 뭔가? 출판사 쪽에서 ‘정부의 검인정 취소’ 얘기가 나오는데 이럴 경우 정부가 모든 부담을 짊어지는 것 아니냐, 연구는 해봤느냐?”고 추궁했다고 한다. 교과서 수정을 압박하는 교육과학기술부와 이를 거부하는 교과서 저자 사이에 끼인 출판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이럴 바에는 차라리 정부가 근현대사 교과서 검인정을 취소해 주면 좋겠다’고 푸념한 말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의 말에는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왜 출판사에 끌려다니느냐는 강한 질책의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정부의 교과서 수정 요구가 정당하고 합법적인 절차를 벗어난 채 억지로 진행되고 있는 데 대한 문제의식은 전혀 없다. 법질서를 강조해 온 기존의 태도와 모순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행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이 대통령의 편향된 시각도 드러났다. 즉 교과서 수정이 이뤄질 경우 전교조 등이 불매운동을 벌일 것을 우려하는 출판사가 있다는 정 수석의 보고에, 이 대통령은 “도대체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기에 그 출판사는 전교조만 두렵고 정부나 다른 단체들은 두렵지 않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다른 단체’란 일부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되게 서술돼 있다고 주장하는 단체로, 이 대통령은 이들과 정부의 입장을 하나로 보고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역사학자 등 전문가들은 ‘지적된 근현대사 교과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논란이 되는 부분은 역사 해석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반영할 뿐’이라고 본다.

근현대사 교과서를 출간한 출판사 다섯 곳은 어제 정부의 수정 지시를 그대로 따르겠다고 백기를 들었다. 국민들은 교과부의 밀어붙이기 뒤에 누가 있는지를 똑똑히 알게 됐다. 이 대통령은 교과서 왜곡 지시자로서 역사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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