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암은 잘릴이 단호하고 즐겁게 선물 주던 방식을 떠올렸다. 그것은 고마움 외에는 아무 반응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쾌활함이었다. 나나가 잘릴의 선물에 대해서 한 말은 옳았다. 그것은 내키지 않아하는 속죄의 표시였고, 그녀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불성실하고 잘못된 몸짓이었다. 마리암은 라시드가 준 숄이 진정한 선물이라는 걸 알았다. "예쁘네요."-106쪽
마리암은 소파에 누워 무릎 사이에 손을 넣고 눈발이 날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나는 눈송이 하나하나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자의 한숨이라고 했었다. 그 모든 한숨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어 작은 눈송이로 나뉘어 아래에 있는 사람들 위로 소리 없이 내리는 거라고 했었다. "그래서 눈은 우리 같은 여자들이 어떻게 고통당하는지를 생각나게 해주는 거다.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걸 우리는 소리없이 견디잖니?"-125쪽
엄마는 곧 잠이 들었다. 라일라는 이중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엄마가 살려고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엄마가 살려는 이유가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괴로웠다. 그녀는 오빠들처럼, 엄마의 가슴에 흔적을 남기지 못할 존재였다. 엄마의 가슴은 창백한 해변 같았다. 부풀었다가 부서지고, 다시 부풀었다가 부서지는 슬픔의 물결에 자신의 발자국이 영원히 씻겨내리는 차가운 해변 같았다.-195쪽
"젊은 친구들, 저게 우리나라의 역사라네. 끝없이 반복되는 침략의 역사지. 마케도니아인들, 사산 왕조의 사람들, 아랍인들, 몽골인들. 이제는 소련인들이지. 하지만 우리는 저기에 있는 벽과 같다네. 부서지고, 쳐다봐야 아름다울 것도 없건만, 아직도 저렇게 서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은가요, 바다르(어르신)? 바비가 말했다. "맞습니다."-198쪽
그것(로켓탄)은 때로 그녀가 바비와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일어났다. 그것이 시작되면 그들의 고개가 순간적으로 들렸다. 그들은 포크를 공중에 들고 씹다 만 음식을 입에 담은 채 쌩- 하는 소리를 들었다. 라일라는 그들의 흐릿한 얼굴이 칠흑처럼 까만 창문유리에 비치는 걸 보았다. 벽에 비친 그들의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쌩- 하는 소리. 다행스럽게도 다른 곳으로부터 들리는 폭발음, 적어도 이번에는 목숨을 건졌다는 걸 알고 내쉬는 안도의 숨. 그 사이,어딘가에서는 아우성과 질식할 듯한 연기 속에서 맨손으로 형제자매, 손자손녀의 남아 있는 시신을 파편 속에서 끌어내고 있을 터였다. -235쪽
같은 달인 6월의 어느 날이었다. 기티는 두 명의 동급생들과 함께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기티의 집에서 불과 세 블록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로켓탄의 유탄이 그들을 덮쳤다. 나중에 라일라는 기티의 어머니 닐라가 기티가 죽은 곳으로 달려가서, 비명을 지르며 앞치마에 딸의 살점을 주워 담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몸에서 떨어져 나간 그녀의 오른발이 2주 후에 어떤 집의 옥상에서 발견되었다. 아직도 나일론 양말에 자주색 운동화가 신겨 있었다고 했다. 기티가 죽은 다음 날, 라일라는 울고 있는 여자들 사이에 어리벙벙하여 앉아 있었다. 라일라가 알고, 가깝게 지내고 사랑했던 누군가가 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는 기티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라일라와 둘이서 수업시간에 은밀한 쪽지를 주고받던 기티였다. 손톱을 예쁘게 다듬고, 핀셋으로 턱에 난 털을 뽑던 기티였다. 그 기티가 죽은 것이었다. 죽었다. 산산조각이 나서, 마침내 라일라는 친구들 위해 울기 시작했다. 오빠의 장례식 때는 흘릴 수 없었던 모든 눈물이 그녀의 눈에서 쏟아져내리고 있었다.-242쪽
"영화 속의 한 장면 같구나. 사람이 외딴 섬에 살며, 다섯 권의 책만 가질 수 있다면 어떤 책을 선택할 것인가. 그 기로에 처한 사람처럼 말이다. 나는 실제로 내가 그런 일을 겪을 거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빠, 나중에 책을 다시 모아야겠어요." 그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음. 내가 카불을 떠나다니 믿기지 않는구나. 나는 여기에서 학교를 다녔고 첫 직장을 여기에서 잡았고 여기에서 아빠가 되었다. 내가 곧 다른 도시의 하늘 밑에서 잠을 잘 거라고 생각하니 낯설구나." "저도 그래요." "하루 종일, 카불에 관한 한 편의 시가 머리에 떠돌더구나. 사이브레타브리지라는 시인이 17세기에 썼던 시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다네.' 전에는 전체를 다 외웠었는데 지금은 두 줄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구나." 라일라는 고개를 들었다. 그가 울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머리에 팔을 둘렀다. "아빠, 우리는 다시 돌아올 거예요. 전쟁이 끝나면요. 알라신의 뜻이라면, 우리는 카불에 다시 올 거예요. 두고 보세요."-258쪽
그때 거대한 소리가 났다. 그녀의 뒤에서 하얀 빛이 번쩍였다. 그녀의 발밑이 기울어졌다. 뭔가 뜨겁고 강력한 것이 뒤에서 그녀를 덮쳤다. 그것은 그녀에게서 샌들을 벗겨냈다. 그리고 그녀를 들어올렸다. 이제 그녀는 비틀거리고 돌아가며 공중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하늘이 보였다. 그 다음에 땅이 보이고 다시 하늘이 보이고 다시 땅이 보였다. 불이 붙은 커다란 나무조각이 날아갔다. 산산조각이 난 유리조가들도 날아갔다. 하나하나가 주위에서 날아가고 겹겹이 튀어오르고 햇볕을 받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작고 아름다운 무지개들... 라일라의 몸이 벽에 부딪쳤다. 그리고 땅으로 떨어졌다. 그녀의 얼굴과 팔 위로 먼지와 작은 돌과 유리가 쏟아졌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건 근처에서 쿵 소리를 내며 뭔가가 떨어지는 모습이었다.-261쪽
라일라는 엄마가 어떻게 땅에 고꾸라졌으며, 어떻게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쥐어뜯었는지 기억했다. 하지만 라일라는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 손끝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대신 그녀는 무릎에 손을 축 늘어뜨리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바라보지 않고 마음이 날아가도록 했다. 그녀는 그것이 아름답고 안전한 곳을 찾을 때가지 계속 날아가게 했다. 푸른 보리밭이 있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수천 개의 가시나무 씨가 공중에서 춤추고, 바비는 아카시아나무 밑에서 책을 읽고, 타리크는 가슴에 손을 얹고 낮잠을 자고, 그녀는 시내에 발을 담그고, 햇볕에 하얘진 바위로 된 불상들의 눈길 밑에서 좋은 꿈을 꾸는 아름답고 안전한 곳을 찾을 때까지.-282쪽
이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고 싶었다. 거리의 모퉁이마다 함정이 있고, 골목길마다 도깨비상자처럼 그녀를 덮칠 유령을 숨기고 있는 이 도시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그녀는 그 모험을 감행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떠나는 것이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게 되었다. 날마다 터져 나오는 구토. 커지는 가슴. 이 혼란의 와중에서 여하튼, 생리를 하지 않았다는 깨달음. 라일라는 수천 개의 막대기들에 매달린 비닐들이 살을 에는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삭막한 들판의 난민 수용소를 상상해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그곳에 있다고 상상해보았다. 그녀의 아이가 초췌한 관자놀이, 늘어진 턱, 얼룩덜룩하고 푸르스름한 피부를 하고 텐트 속에 있다고 상상해보았다. 그녀는 아이의 작은 몸이 낯선 사람들에 의해 씻겨 황갈색 수위에 싸여 독수리들의 실망한 눈길 밑에서, 바람에 노출된 땅에 파인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녀가 어떻게 지금 달아날 수 있겠는가. 라일라는 자신의 삶을 스쳐간 끔찍한 숫자의 사람들을 생각해보았다. 아마드와 누르는 죽었고, 하시나는 어디로 가고 없고, 기티는 죽었고, 엄마는 죽었고, 아빠도 죽었고...-293쪽
이제 타리크마저... 하지만 기적적으로 이전 삶의 일부가 남아 있었다. 그녀가 이토록 철저히 외로운 사람이 되기 이전과의 마지막 끈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몸에 아직도 살아 있는 타리크의 일부. 작은 팔이 솟고 반투명의 손이 자라는 그의 일부가 살아 있었다. 그가 라일라에게 남긴 것, 그리고 그녀의 옛 삶에서 남은 유일한 것을 어떻게 위태롭게 할 수 있겠는가?-294쪽
1978년과 1992년 사이에 여자들이 즐겼던 자유와 기회는 이제 과거의 것이 되고 말았다. 라일라는 아직도 바비가 공산주의 정권이 통치하던 때에 관해서 하던 말을 기억했다. "라일라, 지금은 아프간 여성으로서는 좋은 때다."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무자히딘이 1992년 4월에 권력을 잡으면서, 아프가니스탄의 명칭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국으로 바뀌었다. 라바니가 정권을 잡으면서 대법원은 이제 강경파 율법학자들로 채워졌다. 그들은 여자들에게 권한을 주었던 공산주의 시절의 법령을 폐지하고, 여자들에게 몸을 가리라고 명령하고 남자 친척 없이 여자들이 여행하는 걸 금지하고, 간통을 돌로 쳐 죽이는 엄격한 이슬람법에 기초한 법령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법을 실제로 집행하는 것은 드문 경우였지만 여하는 법은 법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 싸우느라 그렇게 정신이 없지 않다면 우리들한테 그걸 더 강요할 거예요." 라일라는 마리암에게 이렇게 말했었다.-349쪽
"나는 여기에서 끝나. 더 이상 원하는 게 없어. 내가 어렸을 때 원했던 모든 걸 너는 이미 나한테 줬어. 너와 네 아이들이 나를 너무 행복하게 해줬어. 라일라, 괜찮아. 괜찮아. 슬퍼하지 마."(마리암)-489쪽
그녀는 앞에 있는 책상으로 돌아가면서, 전날 밤에 저녁을 먹으며 다시 즐겼던 이름 짓기 놀이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은 라일라가 타리크와 아이들에게 그 소식을 전해준 후로 계속되는 밤의 의식이 되었다. 그들은 돌아가며 자기들이 지은 이름에 대한 이유를 댄다. 타리크는 모하마드라는 이름이 좋다고 한다. 최근에 비디오로 <수퍼맨>을 본 잘마이는 왜 아프간 소년의 이름이 클라크일 수 없는지 궁금해한다. 아지자는 아만이라는 이름이 좋다고 열을 올린다. 라일라는 오마르라는 이름이 좋다. 하지만 이 놀이에서는 남자 아이의 이름만이 거론된다. 딸의 이름은 라일라가 이미 지어놓았기 때문이다.-5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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