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과연 인문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문학은 위기에 빠진 것일까? 아니면 인문학 바깥에서 비꼬듯 인문학자들이 위기를 맞은 것일까? 출판 측면에서 보면 둘 다 아니다. 정 교수가 그 증거다. 지식기반사회, 콘텐츠의 시대를 맞아 인문학적 콘텐츠의 쓰임새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해졌다. 인문학 콘텐츠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인문학은 지금 위기가 아니라 정반대로 기회를 맞았다고 볼 수 있다. 정 교수가 펴내는 책들이 인기를 누리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정교수는 어떻게 가장 고리타분해 보이는 전공을 가장 모던한 감각으로 무장하고 독자들을 이끌어갈 수 있을까? 여타 인문학자들과 다른 그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아니, 그 이전에 그는 왜 그렇게 열심히 책을 쓰는가? (중략) 이렇게 아이디어를 글로 쓰면서 추구하는 목표는 '소통'이다. (중략) "제가 논문을 쓰면 극소수가 읽는데, 조금 관점을 달리해 쓰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던 겁니다. 어떤 글이 더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11쪽
(정민) 글쟁이로서 그가 추구하는 목표는 문학을 통해서 문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는 옛 사람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 바탕에는 "세상은 늘 변하지만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지론이 깔려 있다. "옛 사람들의 고민과 관심사는 지금 우리의 것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잘 들여다보면 현실의 이야기가 옛사람들 이야기와 포개지는 지점이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18쪽
(정민) 책에 대한 구상이 서면, 제자들로 팀을 꾸린 뒤 각자에게 정확한 작업을 나눠주고 지침을 내려 지식을 뽑고 정리해 카드로 만들라고 하는 방식이다. 그 카드들을 모아 구상한 순서대로 배치하고 종합 편집한 뒤 마지막에 다산 자신이 도입부를 쓰고, 중간에 생각을 집어넣고 종합한다. 다산 정약용이 그렇게 많은 책을 써낼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여기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경이로운 저술능력을 방법론 측면에서 들여다본 책이 <다산의 지식경영>이라고 할 수 있다. (정민의 경우) 요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찾아 편집해서 요긴한 정보로 배열해내는 작업이 그가 추구하는 글쟁이로서의 방향이다.-20쪽
(정민)"'~이다' 체는 잽이에요. 툭툭 던지는 잽. '~있다' 체는 어퍼컷이나 훅이 되죠. '~것이다' 체는 스트레이트에요." 그래서 정 교수는 "잽이 되는 '~이다'체가 기본"이라고 말한다. 반면 '것이다'는 결정타가 된다고 본다. 때문에 이 '것이다'를 자주 쓰면 짜증나는 글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 '~있다' 체는 글이 늘어져 긴장감이 없어지는 약점이 있다. 결국 '~이다' 체를 기본으로 하고, 가끔 힘을 줄 때 '~있다' 체와 '~것이다' 체를 적절히 써야 한다는 것이 정 교수가 권하는 요령이다. -23쪽
1995년 봄, 그는 무작정 화랑 겸 출판사인 학고재의 우찬규 사장을 찾아갔다. 그는 우 사장에게 유럽 주요 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답사해 기행문처럼 들려주는 대중적 미술책을 펴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 취재 비용으로 1천만원을 먼저 달라고 요청했다. 책의 인세를 미리 받는 선인세를 조건으로 내건 것이다. 책이 나온 뒤에 팔리는 만큼 갚는 방식이다.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더 달았다. "책이 많이 안 팔려 절판되더라도 갚을 돈이 없다"고 미리 못 박은 것이다. 모든 것을 출판사가 먼저 부담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배쩨라" 수준이었지만 당시 목돈이 없었던 이씨의 형편으로선 솔직하게 밝힐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 있게 내세운 것은 단 한가지. "아직 우리나라에 이런 책이 없다"는 차별성이었다. (중략) 그해 8월 말, 이씨는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유럽으로 출발했다. 이씨 나이 33세, 아이들은 겨우 세 돌과 한 돌이 지난 때였다.-28쪽
(이주헌) 혹시 '선수들끼리 읽는 책'도 써보고 싶지는 않냐고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쓰고 싶기도 해요. 하지만 제가 그런 책을 쓰는 것은 약속위반이라고 생각해요. 독자들이 보시는 제 책은 저를 위한 책이 아니잖아요. 독자들이 미술을 쉽게 감상하실 수 있게 도와주는 책, 그런 책을 계속 써야죠."-35쪽
(이덕일) 그는 앞으로 저술가로서 나아갈 주요한 방향을 '평전'으로 잡고 있다. (중략) 그러나 들이는 품만큼 판매가 따라주는 경우는 드물다. 선진국에 견줘 한국에서 평전의 판매는 특히 부진한 편이다. 여기에 평전 자체를 쓰기 힘든 한국만의 독특한 사회문화적 특성도 존재한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비판적 평가에 거부감을 갖는 인식과, 조선에 대한 비판 자체를 거부하는 종친회 문화가 평전을 쓰는 것을 쉽지 않게 만든다.-49쪽
(이덕일) "책도 상품인데 아이스크릠을 겨울에 낼 수는 없잖냐"며 이씨는 웃었다. 이씨의 책을 편집했던 한 편집자는 "술 마시는 시간 빼고는 늘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귀뜸했다. 다른 저술가들도 비슷하다. 대부분 새벽 시간과 오전에 글쓰기를 하고 오후에 자료 수집을 한다. 저녁 약속은 극도로 피하는 이들이 많다. 사람 만나고 모임 나가면 글을 쓰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프로 글쟁이들의 생활은 일반 직장인보다 훨씬 단조롭고 반복적이며 금욕적이다. 세상 사는 일상의 재미를 추구하는 이들에겐 가장 맞지 않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게 고독과 고생을 자처하는 대가로 자기 이름을 건 책을 남기는 것이다.-51쪽
(한비야) 첫 책 <~세 바퀴 반>이 100만부 이상, <~우리 땅에 서다>가 20만 부, <~중국견문록>이 50만 부, <지도 밖으로~>가 65만 부. 다 합치면 200만 부가 넘는다. 중요한 점은 그의 책들이 몇 년이 지나도 힘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판시장에서 판매부수가 50만 부라는 것은 상업적으로 볼 때 작가의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과 여 양쪽 모두에게 인기가 있어야 가능하고, 좌와 우를 막론해야 가능하다. 청년층과 장년층 어느 한쪽에게만 인기가 좋아서도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모든 연령, 모든 성별, 모든 성향을 뛰어넘는 호응을 얻어야 가능한 수치다. 곧 한씨가 남녀노소 모든 독자들에게 보편적인 즐거움을 준다는 뜻이다.-57쪽
(한비야) "만만한 거죠, 저는 독자들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제 눈높이가 바로 젊은 독자들 눈높이예요. 전성기를 향해 항상 진행형이라는 게 젊은이들과 같은 거죠. 나이 들면 사람들은 세상 다 산 것처럼 '돌아보니 이렇더라'고 쓰기 십상인데 저는 반 발짝 앞에서 제가 목격한 세상을 보여주면서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거예요. 멀리 떨어져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똑같이 누군가를 욕하기도 하고, 깨져도 앞으로 조금씩 나가려고 무진 애를 쓰는 언니, 누나로 보는 거지요."-59쪽
(도올) 도올은 또한 저술가의 경영학적 모델로도 흥미로운 사례다. 무엇보다도 그가 다른 저술가들과 가장 구별되는 것은 자기만의 '저술-출판시스템'을 갖췄다는 점이다. 연구를 하고, 그 성과를 책으로 쓰고, 통나무라는 전속 출판사에서 책을 낸다. 그리고 그 내용을 방송에서 강의한다. 특히 독특한 점이 전속 출판사 통나무의 존재다. "세미나도 하고 공부를 하려면 지속적인 자금이 필요하더라고. 그래서 당대의 출판사들을 찾아갔어요. 당시 돈으로 50만 원을 달라, 앞으로 내 책이 많이 팔릴 텐데 다른 데서 안 내고 전속으로 책을 내겠다. 그렇게 제안을 했어. 그런데 아무도 그 구라를 안 믿어. 모두 거절했어요. 그런 제안을 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그런 발상도 생소했겠지." 그래서 제자들과 함께 차린 출판사가 통나무다. 이후 그는 모든 책을 통나무에서 내고 있다.-68쪽
(도올) 도올 특유의 행동 때문에 그가 무척이나 자유분방하고 변덕스러울 것 같지만, 글에 있어서는 치밀하고 전략적이다. 자기 글을 읽을 대상을 분명하게 정하고 그들이 이해하기 쉽게 쓰는 것을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게 여긴다. 도올은 책을 쓸 때 대상을 25~35세로 잡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세월이 흘러도 늘 독서 대중의 주류를 이루는 이들 연령대에 맞춰 스스로 젊어지는 것이 저술가의 의무이자 철칙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이 작업이 쉬울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여기에 저술가의 생명이 달렸다고 본다. "어떻게 하면 대중과 교감할 수 있는 끈을 놓치지 않는가. 그게 내 삶에서 끊임없이 벌여야만 하는 사투라고 할 수 있어요."-69쪽
(구본형) 공병호 씨가 노골적일 만큼 실용성을 추구하는, 자기계발서 트랜드를 대표하는 필자라면, 구씨는 보다 거시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인문학적 취향을 지닌 독자들을 거느린 필자라고 할 수 있다. 공씨는 세상 흐름을 기민하게 포착해 사람들이 필요로 할 만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해 폭넓은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타일이다. 반면 구씨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타성에 젖기 쉬운, 보다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려 현실생활도 잘하면서 삶도 충만하고자 하는 성향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책 내는 스타일도 공씨가 매년 책을 몇 권씩 몰아서 내는 다작형인 반면 구씨는 규칙적이고 주기적으로 내는 형이다.-80쪽
(이원복) 그렇게 모으고 정리한 자료들은 모두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재창조된다. 바로 '전달'. 정확하게 말하면 지식과 교양의 전달이다. 교양만화는 콘텐츠 전달이 가장 큰 목적이므로 내용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데에 모든 것을 맞춘다. 그가 만화가이지만 이전에 글쟁이인 이유가 바로 정보와 지식을 꿰고 엮어서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제가 보기에는 교양만화는 콘텐츠가 70퍼센트이고 그림은 30퍼센트예요. 제가 나이가 들면 체력 때문에 작업은 줄어들 거예요. 하지만 콘텐츠는 만들 수 있거든요. 그런 것을 감안해 그림 그리는 몫을 제자들에게 넘겨가는 거죠. 언젠가는 '글 이원복, 그림 아무개'가 될지도 몰라요.'-102쪽
(이원복)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으로 그 모든 어려움이 해결됐다. "모든 저술가들에게 그랬겠지만 인터넷의 등장은 그야말로 '신이 내린 선물' 같았어요. 무료에, 그것도 실시간이라니!"-107쪽
(공병호) 하루를 오전 오후로 나누면 주말에 모두 세 개의 반일 시간이 생겨요. 주말을 그렇게 3등분해서 2등분은 내가 쓰고, 1등분은 자식과 가정에 쓰는 겁니다. 놀이공원에 가도 새벽에 가서 놀고 오후 시간을 제 것으로 확보하는 거죠. 그러지 않고는 자기를 단련할 시간을 만들 수가 없어요. 주말을 자기계발의 유일한 기회로 보고, 일주일의 일정을 주말 기준으로 생각하는 거예요."-113쪽
(주강현) 우선 어떤 생각이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수첩이든 종이쪽지에든 반드시 적는다.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에 메모를 입력한다. 그리고 메모 원본을 전용 보관함에 항목별로 넣어 보관한다.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렸을 때의 느낌을 상기하기 위해서다. 주씨가 꺼내어 보여준 메모들은 가지각색이었다. 책의 제목에 대한 아이디어부터 각종 카피 글귀, 구성도 등 다양한 것들에 대한 메모가 가득했다. 사소한 자기 생각들을 챙기는 것이 바로 저술의 시작임을 보여주는 부분이다.-147쪽
(김세영) 그의 바람은 시장에 연연하지 않고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만화를 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만화라는 장르가 소설과 다른 것이 혼자서는 못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과 같이 해야만 작품이 나오고, 그래서 제약이 많다. 그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작품을 발표할 지면조차 없는 한국 만화의 실정이다. 그의 현실이 곧 한국 만화의 현실이다. 그의 미래도 마찬가지. 그래서 그의 행보는 중요하다.-162쪽
(노성두) 미술 저술가들을 나눌 때 교양 차원에서 출발해 대중적으로 알기 쉽게 미술을 소개하는 '저널리즘 기반의 저술가'와, 미술사와 비평을 전공한 학자 출신의 '아카데미즘 기반의 저술가'로 구분한다면 이주헌 씨는 전자를, 노성두 씨는 후자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177쪽
(노성두) 왜 전문가와 독자의 평이 모두 좋은데 많이 팔리지 않는 것일까? 그게 한국 미술책 시장의 현실이다. 한국에서 잘 팔리는 미술책은 늘 인상파 같은 인기 유파와 특정 장르에 대한 책이다. 내용 역시 보기좋게 편집하면서 부담없는 수필처럼 가볍게 쓴 책이 인기를 누린다. 그러다 보니 교양미술책들은 특정 주제나 화가에 대한 책만 지독하게 중복 출판된다. 고흐에 대한 미술책이 나머지 전체 화가들에 대한 책의 종수만큼 나온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그가 다루는 고전미술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념이 강하게 박혀 있다. 그래서 그의 책은 어렵지 않은데도 결국 보는 사람들만 본다고 할 수 있다. 저서 중에서 중요한 책으로 꼽는 <성화의 미소> 같은 경우는 고정팬들에겐 "지나치게 쉽게 썼다"고 불평을 들을 정도인데도 아직 2천 부도 안 팔렸다.-183쪽
(노성두) 비싼 도판의 경우 책 한 페이지 정도 크기로 쓰는 데 10만 원 가량 들기도 한다. 300쪽짜리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사진을 100장 정도 쓴다면 거의 수백만~1천만 원 정도가 도판 사용료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보통 1~2천만 원이니, 이 비용을 건지려면 최소 3천 부는 팔려야 한다. 미술책의 경우 사진을 넣은 만큼 더 많이 팔아야 손익분기점을 넘기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처럼 도판 사용료를 내야 하는 경우는 작가가 생존해 있거나 세상을 떠난 지 50년을 넘지 않았을 때다. 20세기 초반 활동한 작가들이 대부분 여기에 해당된다.-186쪽
(정재승) 여기에 정 교수의 저널리즘 감각과 기획력, 그리고 독자들의 호기심을 읽어내는 판단력도 빼놓을 수 없다. 편집자 김형보 씨는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아는 점"을 정 교수의 힘으로 꼽는다. "베스트셀러 작가와 아닌 작가의 차이는 글쓰기 능력보다는 독자들이 무엇을 알고 싶어하는지, 이 시기에 무엇을 말해주어야 하는지 아는 기획적 사고에 달려 있다"며 "정 교수가 바로 그런 필자"라고 분석했다. "기존 과학책들은 대중화가 어려운 과학을 쉽게 설명하고, 독자들이 꺼리는 숫자만 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 교수는 달랐다. 과학이 인문학, 사회학, 문학과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뽑아낸 것이다."-191쪽
(정재승)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두 가지를 이어서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 재미있어요. 그런 글 읽기를 좋아하고요. 상대성원리를 설명하는데 교향곡 이야기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는, 이렇게 연관 없어 보이던 것들이 실은 잘 묶인다는 것을 알았을 때 느끼는 기쁨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거죠."-194쪽
(조용헌)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강호동양학이라는 게 도대체 뭡니까?" "학게가 말하는 강단동양학이 아니라 우리 민중 생활 속에 들어 있는 동양학, 보다 넓은 동양학이지요. 동양학의 뼈대인 문-사-철하고 유-불-선에 천문, 지리, 인사를 보태어 9궁이 되는 겁니다. 이 강호동양학이 내 학문이고, 내 갈 길이에요." 제현들이 숨어 사는 강호의 연파에도 동양학이 있다? 사대부와 승려들의 동양학이 아니라 처사와 은자들의 동양학이라,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히 그런 동양학이 있었을 텐데, 우리가 신경 안 쓰고 지나가버려 알지 못할 뿐 아니겠는가. 조씨는 강호동양학에 우리 조상들이 삶 속에서 깨우친 지혜가 녹아 있고, 그래서 지금 산업화 사회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현대인의 근본적인 욕망을 달래주는 치유제가 된다고 역설했다.-201쪽
(조용헌) "글쟁이로서 어떤 글을 들려주고 싶으세요?" 그는 직장생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요즘 세상이 거의 30년 공부해야 취직하는데 15년 직장 다니면 나가라고 합니다.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데 이런 위기를 극복할 정신적인 도움을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삶이 정답이라면서 다들 그 길에 줄을 서요. 저는 다른 줄도 있다고 그냥 알려주고 싶다 이거예요. 당신들만 이렇게 쫄딱 망한 게 아니다, 여기 이런 건달 같은 삶도 있다, 그런데 이런 삶을 들여다보니 그리 불행하지 않고 정신적으로는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 속에서 새로운 지혜를 얻어 가시면 좋겠습니다."-202쪽
(조용헌) 역시 팩트는 힘이 세다. 그러나 팩트 자체로는 팔리지 않는다. 팩트는 이야기가 될 때 팔린다. 이게 바로 기자는 돈을 못 벌고 작가는 돈을 버는 이유다. 미국 사람들이 하는 말 그대로 "Facts tell, stories sell"이다. 팩트라는 구슬을 꿰는 것, 그걸 잘 하는 게 저술가다. 그런 점에서 작가(writer)는 기자(reporter)와는 정말 다른 종족이다. 조씨의 책이 어찌됐든 팔린 것은 그가 이야기로 만들어낸 힘의 덕분일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시대다. 소스가 무엇이든 이야기로 만드는 자가 그 과실을 딴다.-207쪽
(주경철) 주 교수는 경제사로 출발했고, 경제라는 전망대에서 역사를 보는 작업을 펼쳐나가고 있다. 당연히 경제와 문화가 주된 관심거리다. 그가 가장 많은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 주제는 '해양사'다. 바다를 통한 경제와 문화의 교류사를 큰 틀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16~18세기, 그러니까 식민지가 만들어지기 직전 세계의 모습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유럽이 만들어낸 유럽 중심 이데올로기 이전의 역사를 통해 유럽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자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229쪽
(주경철) "역사교양서라고 하면 시오노 나나미처럼 대중이 이해할 수 있게, 그러면서도 고급스럽게 써주는 것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우리는 전문 연구자들이 자기가 아는 것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영역 자체가 엇는 거예요. 전문 연구자와 대중을 연결하는 것을 서양에서는 '고급 통속화'라고 하는데, '대중화 전문가'쯤 될까요? 이런 영역이 무척 활성화되어 있어요. <몽타이유> 서평을 부탁받아 쓰면서도 과연 이 책이 국내에서 몇 권이나 팔릴까 싶더라고요. 프랑스에서는 정말 많이 팔렸거든요. 깊이 들어간다고 해서 꼭 어려운 것은 아니예요." <몽타이유>는 중세 말 프랑스 남부 한 마을 주민들의 생활문화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책으로, 20세기 서양사학에서 새 흐름을 이끈 아날학파 에마뉘엘 르루아 라뒤리의 대표작이다. 프랑스에서만 20만 부가 팔렸을 만큼 높은 인기를 누렸다. -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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