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장場거리.
다른 때보다 이른 시간인데도 분주하다.
젊고 늙은 할머니들이 앞 다투어 말린 고추를 팔러 나왔다.
여름 내내 인근 마을, 집이란 집의 모든 마당과 도로변에서는
고추와 참깨를 말리고 있었다.
오늘 장은 단연 '장에서 중 찾기'란 속담에서 '중'을 '고추'로
바꾸어도 될 만한 고추판이었다.
햇볕에 말린 태양초는 꼭지가 노랗고 그 색이 투명하다.
건조기에 말린 놈들은 꼭지에 녹색이 남아 있고
붉은 기운도 거무튀튀하다.
내 눈에는 구례장에 나온 모든 고추 꼭지가 노랗고 색이 맑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지천댁에게 물었다.
"장에 고추가 많이 나왔습디다.
오늘 사는 게 쌀까요? 추석 무렵이 쌀까요?"
마당에서 고추와 참깨를 뒤적이던 지천댁은 무심하게 대꾸했다.
"지금 나오는 고추는 손주들 등록금이여. 인자 가을 등록금 낼 참인께."
바싹 말린 태양초를 씹은 것도 아닌데
명치를 맞은 것처럼 가슴이 뜨끔했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고만고만한 형편의 사람들.
그렇다. 여기는 이랜드 계열사가 활개치는 저잣거리가 아니다.
이 집 저 집 할 것 없이 그리도 정성껏 고추를 말렸던 것이
꼭 제 식구들 입으로 들어갈 것이라 그런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모종 만들고
심고
따서
말리는 동안
주름진 손은 고추를 쓰다듬었던 모양이다.
마치 친손자 어루만지듯 말이다.
도시로 나간 새끼들 힘들어하는 것 나누겠다고.
고추 참 붉다.
- 출처 ; www.jiri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