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범 2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구판절판


피스와 나(히로미)는 숨은 연출자이면서 그 사건에 배우로도 등장하여, 스스로 창작한 각본에 따라 연기할 것이다. 자작 연출. 참을 수 없는 쾌감에 사로잡힐 것이다. 지금까지의 각본으로는 피스와 나는 영원히 사건의 표면에 등장할 수 없었다. 가즈아키를 범인으로 날조하면 그와 어릴 적 친구라는 이유로 다소나마 매스컴의 주목을 받아 발언할 기회가 주어지겠지만, 그건 한정된 범위을 따름이다. 그러나 피해자의 유족이 되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247쪽

기억. 기억. 기억. 인간이란 존재는 기억으로 만들어져 있는 모양이다. 그런 통찰이 번개처럼 뇌리를 가로질렀다. 수많은 기억을 얇은 피부 한 장으로 감싸고 있다. 그것이 인간이다. 어린아이게서 어른으로 성장함에 따라 몸이 커지는 것은 그만큼 피부 속의 기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금 구리하시 히로미라는 인간의 피부는 찢어지고, 그것이 감싸고 있던 기억이 바깥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처음에는 서서히, 그러다 점점 폭포수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기억이라는 내용이 다 빠져나가버리면, 히로미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그 자리에 풀썩 쓰러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한번 살면 되지 않을까. 쭈그러진 히로미라는 그릇에 새로운 기억을 흘려넣어 새로운 히로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히로미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382쪽

그것이 어떤 계기로 다카이 가즈아키라는 외부 요인이 가해짐으로써 사회에 대한 도전적인 자세가 환기되어, 단순한 기호에서 일종의 메시지성을 띤 극장형 범죄로 발전했음이 분명하다. 그것이 바로 다케가미가 생각하는 두 미치광이의 형상이었다. 그 형상은 구리하시 히로미라는 매우 경박한 살인자의 미숙한 머릿속에서 구축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회에 대한 뿌리 깊은 열등의식과 증오심, 그리고 소외감이 없다면 절대로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없다. 구리하시 히로미라는 인간만으로는 그 허들을 넘을 수 없다. 그래서 다카이 가즈아키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흘수선(?)을 넘기 위한 밸러스트의 역할로서.-4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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