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우 일행도 오늘 산에서 함께 보내고자 했는데 봉우를 따라다니는 이방인 2명이 있었다. 봉우는 1983년 집시법(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으로 대학 4학년 때 감옥에서 8개월을 보내고 내가 등반 떠나기 불과 얼마 전에 풀려 나왔었다. 그 이방인은 형사들로서 풀려난 봉우를 아직도 따라 다니는 듯했고 서울에서 관광차로 이 첩첩산엘 여러 명이 내려오고 그 주인공인 누나는 무장공비 마냥 산을 헤메고 다닌다니 무슨 일인가 싶어 바짝 긴장하고 따라 온 모양이었다. 그들은 또다른 집회를 산에서 갖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자기네들도 산으로 따라 올라가겠다고 했다. 이 엄동설한에 텐트도 침낭도 없이 산에서 어떻게 밤을 보낼 생각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자기 의무를 다하려는 그 형사아저씨에게 오히려 동정이 갔다. 빨리 좋은 세상이 와서 이런 일이 없어졌으면 좋으련만, 그것은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었다. 내 동생도 이 시대의 피해자이며 그 형사 아저씨들도 마찬가지의 피해자일 뿐이다. -125쪽
12시 30분 대청봉에 도착했다. 그동안 입술을 다물고 참았던 통곡이 터져 나왔다. 무엇 때문에 내가 길을 떠났었는지 이제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제야 만날 수 있는 설악, 이 설악을 만나고자 70여 일을 그렇게 걷고 걸어서 왔던가? 한나절이면 만날 수 있는 설악을 난 왜 70여 일이나 걸려서 와야 했을까? 내게 설악은 왜 그렇게 멀리 있었을까? 오랜만에 연인을 만난 것처럼, 이산가족이 30여 년 만에 만난 것처럼, 뜨겁게 그리고 서럽게 울었다. 그래도 설악이니까 내가 이렇게 마음놓고 울 수 있다. 아무 말도 필요없었다. 그냥 감당 못할 이유들이 울음이 되어 밖으로 터져 나올 뿐이엇다. 하지만 난 아직 갈 길이 남아있는 사람, 진부령이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다.-2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