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보다 늦게 창간된 어느 신문사 사람이 무슨 얘기 끝에 “한겨레는 ‘브랜드 파워’가 있다”고 한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20년이 되었으니 그런 말이 나올 때가 됐다. 브랜드라면 요샛말로 ‘명품’이라는 뜻인데, 승용차의 ‘베엠베’(BMW), 향수의 ‘샤넬’을 떠올려도 이상스러울 것이 없으며, 조악품과 싸구려의 반대말로 쓰인다.
그러나 다음 순간 마음속으로 한겨레에는 일반 상품에 붙이는 ‘브랜드 파워’란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한겨레는 상업재가 아니고 공공재라 굳게 믿기 때문이다. 상법상의 주식회사, 한 부에 600원, 한 달 구독료 1만5천원, 직원은 법인 한겨레신문사의 피고용자 신분, 정년 퇴직 …, 다른 신문과 한겨레의 같은 점을 들자면 16절지 한 장을 가득 메워도 모자랄 판이다.
주관적이란 비난을 무릅쓰고 단언하건대, 한겨레는 상업적 이윤 추구를 위해 출범한 것이 아니다. 인수·합병(M&A)의 귀신이 나와 비싼 값을 주고 한겨레 주식을 몰래 사 모아 경영권을 장악하는 방법, 직업 테러 분자들을 동원하여 한겨레에 물리적 타격을 가하는 방법, 교묘한 수법을 써서 한겨레 내부 분쟁을 조장하는 방법 등 시장경제 사회에서 상상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을 쓰든 일시적 훼손을 가할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한겨레를 변질시키거나 말살하려는 기도는 실패할 것이다. 4·19 혁명과 6월 항쟁과 6·15 선언을 일궈낸 대한민국의 시민사회는 지금 한겨레를 지킬 만한 저력을 지녔다.
문제는 한겨레 종사자들이 어떻게 하느냐다. 열심히 성실하게 일한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특히 회사 안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은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봉급생활자로 설정하고 안주하는 자세야말로 경계해야 한다. 성실과 근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때로는 번뜩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고, 때로는 자기희생과 인욕(忍辱)을 감수해야 한다.
완전히 폐기된 구식 용어, ‘지사’(志士)란 말의 본디 쓰임새가 있는 곳이 바로 한겨레다. 한겨레를 영달의 발판으로 이용하고 싶은 유혹이 들거들랑 그 순간 떠나라!
한겨레 재임기간(1988~91) 나의 잘잘못을 가리는 일은 창간 동인들을 포함하여 한겨레에 애정을 지닌 모든 사람들의 몫이다. ‘편집인 겸 부사장’으로서 겪은 안팎의 인욕은 무수하지만 후진들에 참고가 될 듯하여 하나만 털어놓겠다. 인욕이란 말은 수동적 위치에서 취하는 언행을 통해 적극적 의미와 가치를 찾는 것이므로 욕된 일을 행한 자의 존재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이다.
당시 신문 발행 여부를 소관하는 부처의 장관이 나에게 “한겨레에 외국 불순자금이 유입된 사실이 포착되어 기관에서 조사 중인 모양이니 조심해야 되겠습디다”라 말하는 거였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사극에서라면 ‘어허 별 해괴한 말씀을 다 하시는구려’ 하며 손에 든 부채를 한번 요란하게 펼치는 것으로 장면은 바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1930~61)에게 총련의 자금으로 신문사를 차렸다는 날조된 혐의를 씌워 1961년 박정희가 교수형에 처했던 사실이 있는 터라 나는 까무러치게 놀랐다. ‘한겨레의 몇 사람을 넥타이 공장(서대문 형무소의 교수대를 가리키는 말)에 보내겠다는 수작이구나’ 하는 공포감과 ‘공갈·협박치고는 되게 유치하다’는 생각이 엇갈리는 거였다.
‘불순 외국자금 유입’ 첩보를 입수했다면 수사기관의 1급 기밀사항인데 소관 장관이 피의자인 한겨레 관계자에게 발설하는 것은 상식으로 불가해한 짓이다.
이 자명한 공갈·협박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것이 문제였는데, 우선 발행인 겸 대표이사인 청암(송건호의 아호)에게 보고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나는 하룻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했다. 청암 역시 십중팔구 한겨레에 겁을 주려는 협박이라 생각하겠지만 대응 방식을 회사 공식기구에서 논의해 보자고 할 때는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적극 대응론이 고개를 들 터인즉, ‘한겨레 말살 음모를 분쇄하자’는 팻말을 들고 광화문으로 나가는 방식이다. ‘리영희 고문 방북취재 계획’ 사건과 ‘서경원 방북 자료 압수수색’ 사건으로 피가 마르는 소모전을 했는데 또다시 소모전을 치르게 되면 신문 제작에 큰 어려움을 가져올 것이 뻔하다. 더구나 저쪽에서 ‘불순자금 여부를 가리게 경리 자료와 주주 관련 자료를 내놓으라’ 하면 어떻게 할지 캄캄했다. 국가보안법 혐의는 그쪽에서 씌워 놓고 ‘네가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입증하라’는 것이 무고한 사람 괴롭히는 상투 수법이다.
온건 대응은 알아서 기는 건데, 그것은 한겨레의 죽음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협박에 대한 강-온 대응 어느 쪽이거나 저들은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판단이 섰다. 그러면 협박에 대한 최선의 대응은 묵살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 혹시 ‘외국의 불순자금’이 정말 들어왔으면 어쩌나 싶어 다음날 저녁 괜히 주주관리실에 들어갔다. 퇴근 준비 중인 여성 직원이 어쩐 일이냐고 물어 종이 상자에 쌓인 전산용지에 손을 얹으며 “요새 바쁘지?” 하고 그냥 나왔다.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협박을 묵살하자니 간이 타들어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욕된 도발에 대한 묵살, 즉 ‘무대응’처럼 쉬운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무대응이야말로 내공이 필요한 인욕의 경지임을 이때 터득했다. 끝내 신문 발행 소관 장관의 협박을 묵살한 것은 재임 중 스스로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의 하나라 하겠다.
임재경/언론인
삽화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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