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0돌 기획특집의 하나로 이 글을 <한겨레>에 쓰기 시작하면서 두 갈래의 상반된 주문에 시달렸다. 첫 3회분 원고를 넘기자 편집위원회의 의견이라며 담당 데스크가 전하길 “널리 알려진 창간 초기의 내부 이야기보다는 그 이전 언론운동 선배들이 살아 온 얘기를 써 달라”는 것이 하나다. 다음은 10여회 연재가 계속된 뒤 담당 편집기자가 내게 한 말로서 “재미있게 읽고 있지만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의제 설정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겨레 20년 역사가 <희망으로 가는 길>이라는 이름의 두툼한 책으로 나온 터라 첫번째 주문은 그것대로 일리가 있고, ‘우리 시대의 의제 설정’은 귀중한 지면을 소비하는 자로서 마땅히 귀담아들을 소리다. 하지만 이 글은 창간 초기의 내부 사정을 어디까지나 특정인 나의 시각에서 본 기록이다. ‘주관’, ‘객관’ 양분법으로 하면 앞의 것에 가깝다. 또 회고록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일 때 비로소 교차 확인이 가능하므로 다른 한겨레 창간 멤버들이 회고의 글을 남기길 바란다. ‘의제 설정’은 한겨레의 논평 전담 기자들과 특별히 위촉된 외부 필진이 있는 까닭에 먼저 그들에게 주문할 일이다.
내 회갑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이계익(<동아일보> 해직기자, 교통부 장관 역임), 성유보, 나 셋은 1996년 여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열차 편으로 밀라노·베네치아·뮌헨을 거쳐 베를린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하찮은 일로 의견이 갈렸던 것이다. 저녁을 한식으로 할 거냐, 독일 맥주를 곁들인 양식으로 할 거냐를 두고 설왕설래 끝에 둘은 한국 음식집으로 가고, 나는 외톨이로 소지지를 먹었다. 배낭을 메고 이역만리 여행길에 올랐으면 의견이 다르더라도 밥은 같이 먹어야 하는데 밥이 의견차의 주제가 되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 두 사람은 서울을 떠난 뒤 한 차례도 우리 음식을 먹지 못했고 장차 폴란드와 러시아에 가서는 한식을 구경 못할 터이니 베를린에서 된장국과 김치를 실컷 뱃속에 채우자는 거였다. 그러나 나는 모처럼 유럽까지 왔으면 가는 곳마다 그 고장 음식을 맛봐야 여행의 보람이 있지 않느냐고 맞섰던 것이다. 세 사람이 모이면 뜻이 갈린다는 세상의 원리를 확인한 셈이었다.
한겨레의 소문난 ‘인파이팅’(집안싸움)은 신문이 나오기 전 안국동 시절부터 있었다는 걸 말하려던 참이다. 한겨레 20년사에는 컴퓨터 조판시스템(CTS) 채용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으나, 창간 준비 때 일을 돕던 젊은 패들 중의 하나가 ‘머지않아 군사독재를 끝장낼 대통령 선거가 있는데 … 선배들은 테크노피아에 빠져 있다’고 몰아세웠다. 테크노피아라는 말에 나는 열불이 터지는 것 같았다. 첨단 기술에 넋을 잃어 변혁의 대의를 저버렸다는 함축이다. 사실은 정반대로서 창간 준비에 여념이 없는 해직기자들은 중·노년을 가릴 것 없이 첨단 기술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고, 그중 일부는 첨단 기술의 해악을 경계하는 생태론자에 가깝다.
청암은 연로하였던 점도 있었겠지만 첨단 기술과는 도시 무관한 분이고, 리영희·최일남(소설가, 한겨레 논설고문 역임, 작가회의 의장)을 포함하여 한겨레의 논진은 한 사람만 빼고 모두 종이에다 펜으로 글을 썼다. 자동차 운전은 권근술·신홍범·성유보는 했으나 시티에스 주창자 정태기는 안 하는 주의. 한겨레의 해직기자 가운데서 자동차 운전과 컴퓨터 문서작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김종철(동아일보 해직기자, 한겨레 논설위원, 연합통신 사장 역임) 한 사람뿐이었다. 한국이 첨단 기술 상품으로 먹고살기 시작한 90년대 내내 신홍범과 나는 휴대전화를 쓰지 않았으며, 나는 95년 봄에 컴퓨터 문서작성기(워드), 그해 여름에 인터넷을 겨우 익힌 ‘테크노포비아’다.
대저 집안싸움은 형편이 어려워질수록 기승을 부리는 법. 한겨레에서는 자본 주체의 부재가 계서제(階序制)의 폐해를 제거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그에 대신할 자율 기능이 생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사실 내가 한겨레 집안싸움의 여러 원인을 말하기는 매우 거북한 위치다. 한겨레는 한국의 경제·사회적 여러 모순과 차별을 타파하고자 태어난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모순과 차별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인간 사회의 가장 오래된 성(젠더) 차별의 한겨레판은 없었을까?
임재경/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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