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자가 기다리고 있는 모국에 48살의 중년이 돌아가기 끔찍했다고 하면 십중팔구 듣는 사람이 고개를 갸웃할 일이다. 인간이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의식, 감정, 심리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전유물인 까닭에 도축장 앞의 소를 자신에 비유한다는 것은 말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논리로는 성립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1984년 7월 미국 체류 1년을 마치고 귀국할 때 나는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를 생각했다. 한국에 있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1천여 해직기자들, 수백명의 해직교수들, 수천명의 구속 대학생들이 모두 도축장에 끌려간 소란 말인가. 물론 그런 뜻은 아니다.
미국 바람을 쏘이지 않고 지긋이 서울에 앉아 썩고 있었다면 ‘도축장의 소’ 생각은 안 했을 것이다. 생활환경의 변화를 겪은 다음에는 그것이 1년이든 한달이든 간에 ‘지금, 여기’와 ‘그때, 거기’를 아주 첨예하게 비교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가출 소년이 아는 어른에게 손목을 잡혀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집에 갈 때처럼 단 하루라도 귀국을 늦추고 싶었다. 그래서 런던, 파리, 도쿄를 거치는 ‘팔방돌이’를 했다. 미국에 올 때는 형과 아우 덕분에 돈 걱정을 별로 안 해도 됐으나 여행길에는 빠듯한 노자 때문에 가는 곳마다 친구들 신세를 져야만 했다.
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런던 시내의 호텔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옥스퍼드대 유학 중인 왕년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간사 손학규(경기도지사, 통합민주당 대표 역임)의 집에서 나흘을 묵었다. 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던 그는 경황 없는 가운데 틈을 내 셰익스피어의 생탄지와 케임브리지대를 보여주기 위해 장시간 운전을 하는가 하면, 옥스퍼드대 경제학 박사과정의 김대환(인하대 교수, 노동부 장관 역임)을 불러내 ‘비터’란 이름의 맥주를 샀다. 하루는 옥스퍼드에서 열차편으로 런던에 가 국제사면위원회 본부의 동아시아 담당자 프랑수아즈 방달을 만났다. 뉴욕에 본부를 둔 언론인보호위원회(CPJ)와 국제사면위원회가 나를 반겨준 두 개의 국제인권단체인데, 특히 후자의 벨기에 출신 여성 방달은 한국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 그 직업적 성실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때 만남 이후 방달은 한국에 올 때마다 나에게 연락했고, 5년 뒤 당시의 <한겨레> 논설위원 박원순(희망제작소 소장)을 그에게 소개할 기회도 생겼다. 박원순이 방달의 초청으로 런던에 가 국제사면위원회 본부에서 국제 인권변호사로 활약하게 된 데 일조가 되었다면 다행이다.
파리를 12년 만에 다시 본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71년에는 사회당 소속 국회의원에 지나지 않았던 미테랑이 대통령이 된 지 3년, 프랑스 공산당은 사양길을 걷고 있었으며 파리의 서쪽 교외에 ‘라 데팡스’라는 초현대적 부도심이 새로 개발되어 낭만적 풍취는 내가 있을 때보다 못하다는 느낌. 파리의 즐거움은 호주머니 사정에 비례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터라 불안하던 차에, 뜻밖에 대한무역진흥공사(현 코트라) 파리지사장으로 있는 고교동창 김진숙(코트라 스웨덴지사장 역임)을 만났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말대로 20여년 만에 보는 나를 그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환대했다. 또 <한국일보>의 파리 특파원 안병찬을 만났다. 초년 시절 경찰기자를 같이 한 인연에다 내가 논설위원으로 있을 때 그는 한국일보 노조 결성을 음양으로 돕던 처지여서 마음으로 통하는 사이. 베트남 특파원으로서 미군이 호찌민(사이공) 대사관의 성조기를 허겁지겁 내리고 헬리콥터 편으로 패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현장을 지킨 기자 안병찬을 나는 높이 평가했다. 그와 비슷한 나이의 ‘중도 아니고 속한도 아닌’ 내 처지가 서글펐다. 더구나 서울에 돌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 판인데….
도쿄에서는 20대 초의 술친구 윤충기(해운공사 동경지사장 역임, 작고) 집에 머물면서 며칠을 보냈다. 도쿄에 와 있던 동훈(국토통일원 차관 역임)을 만나 향후의 남북관계를 놓고 장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헤어질 때 그는 일본말로 된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의 저서 <찢겨진 산하>(1984년 출간·2002년 개정판 한겨레신문사)를 나에게 주면서 매우 재미있게 읽었노라 했다. 몽양 여운형, 백범 김구, 장준하 셋이 저승에서 나누는 운상정담 형식인데, 해방 전후사를 그토록 열정적으로 다룬 책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200쪽이 조금 넘는 분량이라 도쿄에 있는 동안 다 읽을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술추렴 하느라 뜻대로 안 돼 서울행 비행기에 갖고 올랐다. 비행기 안에서 도깨비 기왓장 넘기듯 마지막 장을 읽을 무렵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도살장의 소’가 망명객 정경모의 책을 지니고 입국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좌석 앞 포켓, 내 앞이 아니라 옆 좌석의 앞 포켓에 넣고 내렸다. 만약을 생각해서다. 나의 과민이었던가. 임재경/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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