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아서] ‘비판기사’ 맞바꾼 67년 삼성광고
세상을 바꾼 사람들 ④-3
 
 
한겨레  
 








 

» 1967년 2월7일자 조선일보 1면에 게재된 제일제당 광고.
 
이튿날 아침 정작 악 소리를 지른 것은 그들(한국비료 화입식에 참석했던 기자들, 내외 귀빈, 삼성 관계자)이 아니라 나였다. 작심을 하고 쓴 기사가 실리지 않았던 거였다. 지면 사정 때문에 다음날로 밀린 모양이구나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기사를 깔아뭉갠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서울에 올라와 그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이부자리에 앉은 채 신문을 폈다. 어느 면에도 내가 보낸 기사는 없었다. 신문을 팽개치는 순간 마지막 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삼성 계열인 제일제당의 기업 이미지 전면광고였다. 기사가 통째로 빠지고 다른 신문에 나지 않는 전면광고가 실린 이상 더 할 말이 있을까.

신문사 편집국에 와서 내가 책상 앞에 앉은 한참 뒤까지 경제부 데스크는 나에게 눈길을 던지지 않았다. 그의 입장이 심히 난처하다는 것은 알고도 남음이 있지만 끝내 그는 입을 다물었다. 경제부에 배치되고 나서 기사와 광고 수주의 충돌로 인하여 크고 작은 불만이 쌓였으나 이번은 다르다. 삼성의 한국비료 헌납 백지화 움직임을 세상에 알리는 내 기사를 삼성이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것이 최대의 의문이었다. 편집국 간부 가운데 누가? 경제부의 어느 기자가? 아니면 편집부, 심지어 교정부의 누가? 기사를 보낸 날 저녁 시간, 기사의 흐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차례로 뇌리를 스쳤다. 기사 내용을 삼성에 제보했다면 이것은 광고 수주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저열하고 파렴치한 스파이 행위에 해당하는 짓이다. 삼성의 정보망 촉수가 광범위하게 뻗어 있음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야간에 다른 신문사의 편집과정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 않은가. 그날 오후 신문사의 고위 간부가 내 어깨를 아무 말 없이 도닥였다. 노고를 치하한다는 몸짓으로 느꼈다.

3선 개헌을 앞두고 중앙정보부 요원이 편집국에 무시로 드나들긴 했으나 경제기사에는 개입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렇다면 유독 나의 취재 활동에 정보부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뜻인데 중앙정보부는 무슨 수로 내 기사 내용을 알았을까.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의문은 정말 우연치 않게,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1989년 봄, <한겨레> 창간 초기 영국대사관이 주최한 가든파티에서 비록 부분적이나마 풀렸다. 40대 말 50대 초의 말쑥한 차림을 한 신사가 나에게 다가왔다. 기업하는 사람이거나 외국 근무를 오래 한 사람처럼 보였다. “임재경 선생이시죠? 제가 20년 전에 저지른 잘못을 사과할 것이 있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지금 남자 기성복 회사를 경영하고 있으며 60년대 중반 한국비료 건설 업무로 경제기획원을 드나들던 실무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놀라운 것은 한국비료 화입식 준비를 맡았던 그가 동래 온천장 호텔에서는 교환실에 배치되어 기자들의 송고 내용을 일일이 파악한 뒤 서울의 삼성 본부에 알리는 일을 했다는 거였다. 교환양들을 매수하여 도청했다는 이야기인데 그와 삼성 내부의 몇 사람만 아는 범죄 사실을 비록 20년이 흘렀지만 뒤늦게나마 고백하는 것은 참으로 용기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서로 명함을 나누고 나서 “20년 전의 일인데, 사과는 무슨 사과입니까” 하며 시간 나는 대로 만나 점심이나 같이 하자는 말을 남기고 그와 헤어졌다.



 

» 언론인 임재경
 
하지만 20년 전 그때 기사 내용을 파악한 삼성의 누가 <조선일보> 누구에게 연락하여 어떤 흥정을 한 끝에 기사를 싣지 않는 대가로 광고를 싣기로 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20년 전 한국비료 직원이며 현직 기성복 회사 경영자, 코드 네임 ‘용기 있는 사나이’와는 얼마 뒤 점심을 나누었다. 피차 회사 초창기의 어려움을 실토하는 수인사를 나누고 나서 난생처음 느끼는 괴로운 청탁의 말을 꺼냈다. “어려우시겠지만 <한겨레>에 광고를 줄 수 있겠습니까?”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쾌락했다. 그는 5단 통광고를 우리에게 주었다. 여기서 용기 있는 사나이의 실명을 적지 못하는 것은 삼성이 그에게 앙심을 발동하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언론인 임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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