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찾아서] ‘입막음 술판’서 용춤 춘 기자들
세상을 바꾼 사람들 ④-2
 
 
한겨레  
 








 

» 1967년 1월 울산 한국비료 공장 시동식에서 장기영 당시 부총리(앞줄 왼쪽 다섯번째)와 성상영 한국비료 사장(앞줄 오른쪽 네번째) 등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전례없는 화입식은 이후 4월 준공식을 하기까지 사이에 벌어진 소동이다. 사진 <한국비료30년사>
 
기자 초년병이 중앙·지방 행정부, 국회, 법원과 중요한 민간기구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기자실에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 대부분 심각한 회의와 반발심에 휩싸인다. 지금의 기자실이 45년 전에 견줘 얼마나 달라졌을까? 섣불리 가늠하기 어렵다.

기자가 출입처의 기자실에 발을 들여놓는 것과 기자단에 가입하는 것은 별개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큰 신문들은 기자단 가입에 문제가 없었으나 방송과 지역 신문은 원칙적으로 불가였고, 아주 고약한 데서는 몇 달의 유예기간을 두어 초입자의 기자단 가입을 ‘심사·통과’시킨다. 미국 갱 영화에 나오는 신디케이트(마피아와 동의어로 폭력조직)처럼 내부 비밀을 잘 지키느냐가 가장 중요한 심사 기준이었다. 특정 비리·불법을 눈감아주거나 그 반대로 보조를 맞추어 두들겨 패기도 하는 어처구니없는 짬짜미 곧, 담합행위다. 행정부서 가운데서도 특히 경제부처 기자단의 짬짜미가 심했다. 담합을 어기는 기자에 가해지는 제재는? 요샛말로 하여 ‘왕따’이고, 기자단 고참들의 미움을 사면 ‘취재 완전 불능’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초년병은 기사를 ‘물먹을’ 위험에 부닥치기도 한다. 이럴 때 본사 데스크가 기자단에서 왕따당한 후배 초년병을 두둔하고 격려해 주느냐면, 내 경험으로는 아니다. “어리석은 친구 같으니 … 출입처 기자들과 잘 어울려야지!” 하는 반응이 고작이었다. 취재 요령과 기사 작성 능력이 출중하다면 모를까, 기자단으로부터의 왕따는 열이면 아홉 외근기자 부적격 판정 사유로 작용했다. 저널리즘은 미디어들 사이의 경쟁만이 아니고 저널리스트 사이의 피 튀기는 싸움판이다.

1967년 초봄, 삼성의 ‘한비 화입식’ 초청에 대한 경제기획원 기자실의 반응이 어땠는지 41년 전의 일이라 확실히 떠오르는 장면은 없다. 전무후무한 화입식을 대대적으로 벌이는 것이 국가에 헌납하기로 한 약속을 뒤집으려는 공작인데도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울산에 가서 한바탕 기분풀이할 생각에 기자들이 들떠 있었던 기억이 아슴프레 남아 있다. 화입식이 있던 날 아침 김포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는 울산행 전세 비행기에 오르니 취재기자 10여명 말고도 국회의원, 경제 관료와 삼성 관계자들 여럿이 보인다. 특히 의외라 싶은 인물들은 삼성 소유였던 <동양방송>(TBC) 상무인 김규(당시 이병철의 사위로 훗날 서강대학 교수), 무슨 부장직의 홍두표(전두환 정권 아래서 전매청장과 한국방송공사 사장 역임)다. 이 두 사람은 같은 대학을 다니긴 했으나 십여 년 전혀 대면한 적이 없었는데 나를 반기는 품은 민망하리 만큼 은근하다. 여론 무마를 위해 특별한 계략을 짜고 그 각본대로 움직인다는 확신이 섰다.



 

» 언론인 임재경
 
말이 화입식이지 의식 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공장을 둘러보는 둥 마는 둥 기자 일행은 자동차 편으로 동래 온천장의 호텔 겸 요정으로 가는 거였다. 기자들에게 현금이 든 흰봉투 하나씩을 건넨 다음 이내 술판이 벌어졌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아가고 나자 노름을 즐기는 기자들은 준비된 방으로 몰려갔다. 기사를 보내는 것은 바로 지금! 지금 살짝 빠져나가지 않으면 마감시간을 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방으로 달려간 나는 교환을 불러 신문사 번호를 대고 연결을 부탁했다. 그때가 저녁 7∼8시쯤 되었을까, 지역판은 마감시간이 지났으나 서울판 마감은 아직 충분했다.

‘삼성은 왜 전례 없는 화입식을 거행할까’, ‘전세 비행기를 준비하여 수십 명의 브이아이피(VIP)를 모신 까닭은 ?’, ‘기자들에 대한 융숭한 대접은 무언가’ 하는 점을 들고 이것은 한국비료 국가 헌납 백지화를 꾀하려는 수순이 진행되고 있다는 정황이라는 내용의 상자 기사였다. 30분 남짓하게 송고를 마친 다음 나는 슬며시 술판으로 되돌아와 앉았다. “잘들 노는구나, 내일 아침 너희 모두 악 소리를 지를 텐데” 하는 쾌감이 서른한 살 젊은 나에게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언론인 임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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