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신문 창간을 내걸고 나서 몇 달 사이에 50억원이 걷힌 것은 6월 항쟁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스펙터클’(보기 드문 일대 장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말이 좋아 십시일반이지 몇 만 명이 구체적 반대급부 없이 현금을 자발적으로 낸 것은 거의 신앙적 열정이라 할 만하다. <한겨레>가 창간 주주 각기에게 성의를 다해 감사의 예를 갖추었느냐를 돌이켜볼 때 죄송하다는 뜻으로 머리를 조아릴 길밖에 없다. 특히 창간위원 중의 한 사람이고 초대 편집인과 부사장이란 직책을 맡았던 사람으로서는 구식 표현으로 하여 백골난망이다.
주식회사 <한겨레>의 임재경 명의 보유주식은 5천원짜리 주식 4천여 주, 액면가 총액이 2천만원을 넘는다. 당시 부사장 월급이 113만원이었으므로 20개월분 봉급에 해당하는 큰돈이다. 군사정권의 탄압에 대비한다는 속셈에서 비망록을 일절 만들지 않는 것이 회사 간부들의 불문율이었던 까닭에, 여기 이 글은 전적으로 기억에만 의존한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내 주머니에서 나온 돈은 500만원뿐이다. 나머지 1599여만원은 “제발 부탁이니 임형 명의로 해주시오”라는 거였다. <한겨레> 신문의 주주로 등재되는 데서 오는 불이익 혹은 위험을 피하고 싶다는 조건이다. 이럴 때 “비겁하게 … 그러려면 그만두시오”라 한다면 그건 무얼까. 마틴 루서 킹과 버락 오바마를 잇는 미국의 위대한 흑인 지도자 제시 잭슨이 1980년대 중반에 던진 말인데 “하늘이 내리는 기회를 외면하는 것은 하느님에게 죄를 짓는 것”이란 비유로 대신하겠다.
이 글을 쓰면서 1500만원 투자자들의 실명을 공개할 때가 오지 않았나를 무척 고심했다. 지금은 20년 전처럼 <한겨레> 주주라는 것이 불이익을 당하는 세상은 아니겠지만 각기 노는 물에 따라서는 ‘이중 플레이’를 했다는 입방아를 듣기 십상이다. 그렇더라도 내 이름을 빌려 투자한 사람들이 시대의 변화를 올바로 읽고 새로운 신문의 필요를 절감했다는 것은 자랑스러우면 자랑스럽지 쉬쉬할 일은 절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불찰이지만 내 이름으로 투자한 실제 주인들을 죄다 떠올리지는 못한다. 그중 두 사람은 500만원씩을 낸 김인기와 조규하다. 앞의 분은 나와 대학 시절부터 30대 중반까지 밤 가는 줄 모르며 거대 담론을 나누었던 김상기(미국 남일리노이대학교 철학교수)의 백씨이고 뒤의 분은 언론계(<한국일보>, <동아일보>의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전경련 상근 부회장과 전라남도 지사를 지낸 사람이다. 실명 노출을 꺼리는 출자자들이 창간인들의 이름 속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큰데 실제 출자자들의 상당수가 이미 노령에 이르렀을 터인즉 <한겨레>는 하루속히 주권을 발행하여 비록 종이쪽지일망정 감사의 징표를 남기는 것이 도리다.
다 알려진 사실로서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5천만원씩을 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출자는 쉽게 이루어졌는 데 비해 김영삼 전 대통령 쪽은 한참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자랑거리는 못 되지만 이럴 때 창간인들의 눈초리는 내게로 향했다. ‘당신이 움직여 보라’는 무언의 압력이다. 1972~73년 <조선일보>의 정치부 차장이라는 경력과 74년의 민주회복국민회의 운동을 하는 짧은 기간에 내가 야당 정치인 접촉으로 우리들 가운데서는 그쪽과 안면이 비교적 잘 통하는 편에 속했지만, 정치 하는 사람들에게 돈 이야기가 내키지 않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덕룡과 대학 동기인 창간인도 여럿 있는데 왜 하필 내가 나서야 하는지 내심 불만도 없지 않았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해직기자 가운데서 외근 경력이 가장 긴 내가 새
신문을 만드는 일에 할 일이 있다면 악역과 인욕(忍辱)이라고 결심했다. 헬무트 슈미트와 같은 ‘마허’의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악역과 인욕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한겨레>에 있는 4년 동안 내 신조로 삼았다.
1960년대 민완의 경제 관료로서 활약하다 정계에 투신하여 88년께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던 황병태(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장, 국회의원, 주중대사 역임)를 만나 간청 반 투정 반을 부렸다. 그와의 만남이 주효했던지 5천만원 출자는 이내 성사됐다. 문제는 그로부터 한두 해 뒤의 일이다. 롯데호텔 로비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우연히 마주쳤다.
“임 부사장! <한겨레>가 나에게 그렇게 해도 되는 깁니까. 내가 <한겨레>의 기둥 하나는 세워주었는데 말입니다.” 정치 9단답게 그는 얼굴에 웃음은 잃지 않았으나 그의 말은 나에게 다트처럼 와 꽂혔다.
언론인 임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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