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목소리의 언어와 삶


꽃이 피어납니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서, 스며들 물기 없는 보도 불록 위에서, 열기와 함께 솟아오르는 폐유 냄새 진한 아스팔트 위에서 연꽃들이 피어납니다. 울렁이는 촛불의 자태와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같이 호흡하고 한강 하구의 춤사위처럼 굽이치고 있자니 아우가 수행할 일상이라든가, 형이 항상 이야기하던 김포라든가 하는 낱말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지며, 오래된 숙제 또한 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형이 서울광장을 딸들과 함께 다녀갔었다는 일전의 통화를 떠올리며 아우가 형을 형으로 호칭함을 다행한 일이라 다시 한 번 여깁니다. 어쩌면 형의 무심한 듯 보이는 행동의 게으름보다는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는 않으나 여린 것들에 대한 연민의 울렁이는 충동으로 인한 조바심이 더 컷을 것이라는 점은 쉬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형은 항상 그렇고, 형의 성정 또한 항상 그렇습니다. 숱한 꽃무리의 물결 속에 눈에 띠든 그렇지 않든, 또 한 송이의 꽃을 피워 올리는 형의 심사, 그래야만 삭신의 피로와 게으른 무관심과 나약한 행동의 양심 앞에서 알리바이를 마련해두는 그 나마의 조처라 여김을 다른 이는 몰라도 이 아우는 압니다. 추론하건대 그날 형은 밤늦게 귀가하였을 것이고, 피로한 몸에 겹친 약한 열기로 앓는 밤이 되었을 터이고, 늦은 아침을 맞이하여 예의 ‘미학사’ 원고지 위에 꽃들의 소란함에 대해 차분하고도 나직한 말의 보고서(詩)를 다듬었음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날 작성하였을 보고서는 아우가 아직 열람치 못하여 꽃들에 담긴 연민의 서정적 낱말들은 읽어낼 수 없으나 일찍이 평이한 일상의 문체로 연민을 담아내는 솜씨는 ‘미학사’라는 시에서 진한 감흥과 함께 확인한바 아닌지요. 한 번 볼까요?

미학사라는 출판사가 있었다
한때 잘 나가던 그 출판사가 문을 닫던 날
거기 디자이너로 있던 여자는 남편을 위해
용달차를 불러 원고지를 횡령하였다
한 시인이 평생 쓰고도 남을 양이었다
이건 사주이던 박의상 시인도 사장이던 배문성 시인도 모르는 일이다
여자는 원래 그런 여자였다
그런 여자의 등 뒤에서
원고지는 퇴색되어간다

빈 하늘을 보며
여자는 앉고 사내는 서 있었다
「미학사」, 『험준한 사랑』

화자인 시인과 그 시인의 아내와 한 출판사의 폐업과 남겨진 원고지와 남겨진 원고지나마 건지려는 아내 된 자의 행위가 어우러져 일구어내는, 실화를 바탕으로 구체적 일상을 서술하는 행간에 스민 연민이 눈물겹게 합니다. 형은 그렇게 가끔 바라보고 지켜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할 때가 있습니다. 일상으로, 일상과 결부된 문학으로, 또 형의 작품에 깃든 서정적 미학의 힘으로.


그대를 골목 끝 어둠 속으로 보내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의롭지 못한 만큼을 걷다가
기쁘지 아니한 시간만큼을 울다가
슬프지 아니한 시간만큼을 취하여
흔들거리며 가는 김포행 막차에는
손님이 없습니다
멀리 비행장 수은등만이
벌판 바람을 몰고와
이렇게 얘기합니다
먼 훗날 아직도
그대 진정 사람이 그리웁거든
어둠 속 벌판을 달리는
김포행 막차의 운전수 양반
흔들리는 뒷모습을 생각하라고.
「김포행 막차」, 『김포행 막차』

서울 어디서든 ‘김포행 막차’를 아우로서는 타보진 못하였으나, 개화산 자락의 형이 살던 동네로는 불림을 당한 적은 있습니다. 그 당시 이 아우는 모 문학잡지로 등단하여 모 문학단체의 신입회원으로 문단 말단의 자리에서나마 천지구분 없이 들까불 때였고, 형은 중견문학인(?, 당시 적어도 아우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으로 소속된 단체에서 자칭 문예군기반장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불림 당해 달려가는 택시 안에서 「김포행 막차」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는 다른 작품은 몰라도 표제작만큼은 숙지를 하여야 높으신 군기반장 앞에서 주눅 들지 않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불러주는 선배에 대한 최소한의 예가 될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날이 아마 형과의 사적 만남으로는 아우에겐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형은 나서 자라고, 가정을 꾸려 분가하고, 식솔 거두고를 40년 넘게 김포와 김포주변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이 해오고 있었던 것이지요. 김포에 거하며 형이 자주 만나는 이들의 이름들(현기영, 고형렬, 박영근, 이재무 등등)이 술자리에 불려나와 술잔에 담긴 채 아우의 목구멍으로 넘어가갈 때, 취기와 함께 담긴 김포의 바람 냄새에 대한 호기심이 자리하였고, 지금도 그 냄새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습니다. 서울과는 다른 맛과 색깔의 바람이 박철이라는 시인을 키웠다는 사실을 영근 형은 살아생전 형에 대해 이렇게 말했지요. “현실을 살 수 밖에 없는 치욕과 비참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삶을 살아내면서 파격으로 현실에 맞서”고 있다고. 이는 형의 문학인으로서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이자 위의 시 「김포행 막차」에 대한 헌사가 아닐런지요. 형과 아우를 포함한 모든 약자들의 삶이 시의 전반부에 흐르는 고뇌와 다르지 않다고 할 때, 삶의 비애와 애잔함과 나약함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근거 또한 쓸쓸한 그들 중 말없이 삶을 수용하고 견디어내는 ‘운전수 양반 흔들리는 뒷모습’과 같은 평범하고 무심히 일하는 자의 일상이라는 진술은 천만금의 가치로도 환산할 수 없는 잠언이자, 도저한 세계에 처한 인간 삶의 태도에 대한 문학적 결구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소시민적 일상과 인간에 대한 연민을 통한 형의 문학 생산 활동은 『김포행 막차』(창작과 비평사 1990) 이후, 『밤거리의 갑과 을』(실천문학사 1993), 『새의 全部』(문학동네 1997), 『너무 멀리 걸어왔다』(푸른숲 2000),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문학동네 2003), 『험준한 사랑』(창비 2005) 에 이르기까지 형의 문학을 형의 문학이게 하는 독창성과 시적 완성도를 관통하는 일이관지 미학적 알리바이가 되고 있다고 아우는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김포라는 공간에 대한 문학적 변용의 예는 시집 『험준한 사랑』에 잘 갈무리 되어 있는 바대로, 그곳은 메트로폴리스 사이에 낀 변두리로 도회적 어수선함과 한적한 시골의 이미지가 상존하는 과도기적 형태를 띠고 있는 곳이며,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들 또한 도회적 삶과 농촌공동체적 삶의 경험을 공유하는 복합적 성격을 품고 있음을 형의 시나 형이 만나고 교류하는 원주민 친구들을 볼 때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인 환경에서의 문학적 행위가 형의 시를 교차로써의 역할을 담지해내는 독특한 형태로 표출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한 그 특성은 지리학적 개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김포라는 공간이 제공하는 느림의 산보성(散步性)이 시간에도 영향을 미침을 형의 시를 통해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걷는다’와 ‘본다’라는 행위의 시적 표현 앞에 ‘천천히’ 라는 휴지부가 필히 들어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형 시들의 특징은 김포 들녘을 미음완보하는 속도의 느림, 변화의 속도에 거부하고 저항하는 느림의 미학을 보여준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미음완보하는 형의 일상과 시에서 들려지는 음성은 느리고도 낮다는 점입니다. 일상과 시적 주체의 목소리의 낮음은 -무릇 아우가 보아왔던 국내 시인들의 무수한 작품들과 비교해도 그 개성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시와 그 시를 쓴 시인과의 관계가 불가분임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겠으나, 시에서 보여주는 삶과 시인의 실체적 삶이 괴리된 허다한 예를 아우는 보아왔습니다. 허나 형의 시와 형의 삶은 그 그릇과 지향하는 바가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실체적 삶의 크기와 목소리가 시적 그것과 일치한다는 소박한 진실 앞에서 아우는 줄곧 경이로움과 함께 안쓰러움을 느껴왔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이별의 종착역(형이 기타반주와 함께 즐겨 부르는 노래)’을 부를 때나, 혹은 오해로 더러는 타이름으로 아우에게, 또는 타인 모두에게 이야기할 때도 형은 늘 상 목소리를 높이는 적이 없습니다. 때로 분노할 때조차 형의 톤은 낮아 역설적이게도 듣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분노에 대한 공감의 폭을 더욱 넓히는 효과를 빚기도 합니다. 낮은 목소리로 자신이 견디어낼 양과 질만큼만 생활하고 창작하는 형은 무서운 사람이고, 철저한 시인입니다. 이는 외부의 요인이나 영향이라기보다는 지극히 내면적이고 근원적인 사람됨의 성정에서 비롯된다고 아우는 굳게 믿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 시점 아우의 이야기가 그르지 않다는 반증의 시가 떠오릅니다.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멀리 쑥국쑥국 쑥국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다시 한 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 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 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어느 한쪽,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 속 깊은 곳에서 쑥국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 밖에 섰나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영진설비 돈갖다주기」라는 시의 전문입니다. 우리네 구차한 삶이야 말로 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만은, 이 시에 이르러 서민적 삶의 단면이 이렇게 서글프고도 아름답게 펼쳐질 수 있다는 문학적 진실 앞에 아우는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의 시적 형상화가 가지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상성에 대한 시 쓰기의 훌륭한 성공사례로 고운기는 이 시를 예로 들고 있거니와, 이는 백석, 신경림, 최두석, 박철로 이어지는 ‘서사를 통한 리얼리즘 시의 구현’이라는 한국시가 성취한 한 갈래의 좋은 본보기가 아닐까 아우는 생각합니다.

형은 지난 2005년 시월 김포를 잇대어 가로지르는 한강을 도강하듯 건너 정발산 기슭으로 옮겨왔지요? 그 정든 고향을 떠나 온 심사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예전 아우가 느꼈던 상실감이 크기에 형의 심정을 차마 물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궁금함에 앞서 드는 아우의 생각은 -비록 서울특별시에서 고양시로의 이사일 망정- 김포를 벗어난 시점이 오히려 형이 이제야 도시인으로 편입되었구나 하는 생각과 형이 이제는 촌티를 벗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촌티와 관련된 긍정적 정서가 앞의 예의 ‘연민’이라면, 형이 누누이 이야기해 마지않던 형의 김포 친구들을 아우가 다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형이 식솔을 이끌고 김포를 건너와 일산에 둥지를 트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을 것입니다. 술잔 비우기의 속도로 형과 아우를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을 것이고, 형은 생전 처음 고향 떠난 아쉬움과 상실감을 김포와 김포친구들의 이야기로 달래고 있었지요. 그러던 중 이점은 형의 특기이기도 한 것이지만, 불현듯 손전화로 김포친구들을 호출하기 시작했지요. 한 삼십분이나 지났나요. 이미 꽤 늦은 밤 시각이었음에도 한 친구 A(편의상 A, B)가 먼저 도착했었지요. 오, 그런데 맙소사. 우째, 이런일이? 한마디로 어깨였지요. 영화에서나 봄직한 친구의 몰골과 행동이라니. 또 그 곁에 미동도 않고 선 보디가드인지, ‘가방모찌’인지, 수행비서인지 알 수 없는 사내, 이른바 깍두기의 인상이라니. 낯설고도 비현실적인 웃지 못 할 가관이었지요. 어깨 특유의 넘치는 ‘가오’와 즉물적인 언사와 거친 품행을 거리낌 없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자행하는 저 도도한 카리스마 앞에 한낱 서생인 이 아우가 눈 뜨고 차마, 감히, 온전히, 똑바로 바라볼 수나 있었겠습니까? 또한 차렷 자세로 어깨 뒤에 선 깍두기의 몰골은 시방 막 학교를 출소한 듯 일자 폼을 일시도 놓치지 않고 유지하였기에 본 서생은 명퇴 리스트에 오른 말단사원마냥 복지부동 할 밖에요. 형님! 나 좀 살려주소. 속으로 내이고 있는데, 아 형의 차마 가관인 위험천만한 오만방자와 안하무인의 행동이라니. 몇 마디 인사 후 그 친구에게 쏟아내는 살벌한 단어들이라니. 가령, 야, 이 새끼야! 너 왜 그렇게 사니? 양아치 티 내지마라 새끼야! (오, 오, 오…. 형, 아니 철이 형님. 제발, 제발 저 좀 살려주시고 그 위험한 주둥아리 좀 닥쳐주세요. 이렇게 속으로 빌고 또 빌었지요.) 형의 입에서 그 거친 낱말이 튀어나온 것을 아우의 귀로 경청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아니, 그런데 그 순간 A의 행동과 표정은 의외로 순진한 한 악동의 그것처럼 귀엽기조차 한 겁니다. 경동천지할 일이 벌어질 줄로만 알고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뒤도 돌아보지 말고 냅다 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고민하던 중인데 이 무슨 싱거운 일이란 말입니까?
그렇게 또 몇 분이 지난 뒤 또 한 친구 B가 곧 도착한다는 전화가 형에게 걸려왔을 때였지요. B의 이름을 듣는 순간 당황해하는 A의 표정이 굳어진다 싶더니 안절부절 못하는 게 영 이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B가 술집에 들어서자 A는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테이블을 빙빙 돌며 애면글면하였고, 신사 본때의 B가 차분하나 또렷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던지더군요. “A, 너 그렇게 사는 거 아니다.” 그 말을 받은 A의 변명과도 같은 항변이 있었으나, 그 대답은 그리 힘이 실린 것도,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 끝을 흐리는 말이었습니다. A의 허장성세와 난감함이 교차하는 표정과 B의 느긋하나 자신감 있는 표정이 잠시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때, 둘을 향해 이 아우의 형, 철이 형이 또 철없이 한마디를 쏘아 부치 듯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야, 이 새끼들아 내 앞에서 뭐하는 거야. 둘 다 앉아!” 이 아우는 정말 형이 미워 미치겠더군요. 아니 이런 심각한 상황에 50kg을 겨우 넘길까 말까 한 일개 서생인 형이 낄 자리인가요. 형이 낀다한들 한주먹거리나 되긴 하나요. 낄 자리 안 낄 자리가 있지……. 어쨌든 형이 던지는 말의 짧은 틈을 타 A가 깍두기를 데리고 급히 술집을 나가는 것으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종료되기는 했습니다만, 곧 B의 정체를 듣고 아우는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 이름도 찬란한 청송학교 출신으로, 그것도 10년 이상 장기 공부를 마친, 밤의 세계를 지배하는 거물급 건달이라나요. 말하자면 셋은 김포 동창이며 친구사이로 A가 김포의 지역구 건달이라면 B는 김포 출신의 전국구 조폭이었던 셈이지요. 그리고 그 친구들은 형을 누구보다 아끼며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우스갯소리 하나 덧붙이자면 B가 하루는 늦은 밤 형에게 손전화하여 멋진 글귀가 생각나니 받아 적어 품평을 부탁하는데, 형이 펜이 없다고 하자 B가 하는 말 “시인의 머리맡에 펜이 없다는 것은 건달이 머리맡에 칼 없이 잠든 것과 같다”고.
다소 장황스러운 이 회고는 형의 문학적 모티프인 연민의 폭이 그만큼 넓고 깊다는 점과 일상의 삶과 창작의 과정이 괴리되고 분리되지 않는 문학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자함입니다. 형이야말로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따오기 같은 삶이로되, 그 정중동하는 삶의 미세한 관찰로 해 그 얼마나 다채롭고 활달한 세계를 그려낼 수 있는 것인지 이 아우는 잘 압니다. 형은 평소에 아우에게 말했지요. “꼭 날아봐야 하늘 깊은 줄 아는 것은 아니다. 난다한들 저 창공의 어느 만큼 날겠느냐”고. 형이 어린 시절부터 건강상의 문제로 많은 제약을 받으면서도 넓은 교유와 깊이 있는 사유를 멈추지 않았던 점이 이 아우에게는 경이로움으로 항시 다가옵니다. 정중동의 자세로 독자로 하여금 움직이게 하는 힘을 소유한 형의 작품들이 이제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염원과 인간을 사랑하는 맘 더불어 새로운 일산의 일상과 그리운 김포의 바람이 실려 나오겠지요? 이미 그 편린의 한 단면이 애잔한 강물로 흘러감을 아우는 볼 수 있었습니다. 형의 좋은 작품에는 항시 맑고 시린 강물소리 울렁이고, 읽는 아우 또한 형으로 해, 형의 시로 해 울렁입니다.

행주강

내 눈이 점점 커지는 것은 외로움 탓이다
시가 길어지는 일처럼 요즘 그리움이란 지금은 부재하는 저 하늘의
별들과 같다 누군가 나의 별빛을 본다면 희망에 대해 노래해다오
꿈의 불빛을 따라 김포에서 일산으로 이사 와 나는 자주 강으로 나간다
안개 짙은 야적, 강의 하류에선 그들 나름대로 시대를 앓고


둑으로 쌓아 올린 바람이 외면을 받으며 갈대 곁에 섰다
언덕을 돌아 결국 다시 만나련만
강폭이 점점 커지는 것은 할 말이 많아서일 거다
사랑이든 역사든 배고픔을 달래는 무엇이든 말로서 될 일이 아니건만
물살이 거듭 손마디를 꺾으며 행주강이 흐른다
400년 전 임진란의 함성이 되살아나 내 가슴에 화살을 쏘아대는 강
치마폭에 돌덩이를 주워 담던 아낙도 가끔은 허리를 펴 강 건너 친정아비의
안부가 그립기도 했을 저녁 바람처럼 날이 진다

오늘은 먼 사랑
내 인생은 겨우 강 하나 건너온 것이다
그것도 개구리헤엄조차 잊고 육중한 시멘트 다리를 빠르게 건너왔다
사람들은 5분이면 건너는 강을 때론 50년이 걸려서 지나온다
오늘은 내가 다시 사랑하고 싶은 날
꿈의 불빛을 따라 김포에서 일산으로 이사 와 나는 자주 강으로 나간다
물수재비를 뜨며 천둥오리 날고
나의 파랑波浪을 아는 안개가 더 큰 한숨을 쉬노니
안개의 흐린 눈빛은 다만 난세 탓이고
내가 점점 외로워지는 것은 그래도 생의 아름다운 때문이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시인으로 연민의 그 대상이 김포 들길에 널부러진 쑥부쟁이가 되었든 바람에 깡총거리는 강아지풀이 되었든, 양아치가 되었든 건달이 되었든……. 인간과 사물과 현상 앞에서 낮은 목소리로 일관된 형의 시세계가 부럽고, 그 세계를 훔쳐볼 수 있어 행복합니다. 50년 걸린 지난한 형의 강 건넘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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