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를 먹다

 

신생아실에서 아이를 데려다 눕혀놓고

만산의,

두 시간 만의 출산이

순산도 너무 빠른 순산이어서

자궁에 혈종이 생겼다는 아내는

요도에 호스를 꽂았는데,

회복실을 빠져나와 끊은 담배를 피웠다

소주를 한 병 사서

어두운 벤치에서 혼자 마셨다

느티나무 가지 흔드는 바람자락에

형이 왔다

와서

내 어깨를 치고

아이를 들여다보고

아내에게 뭐라고 웃었다

형을 만지고 싶었다

웃음이 환하게 흩어졌다

형, 잘 가!

웃음 한자락이 남아서 오래 펄력였다

형, 아프진 않지?

남은 한자락이 마저 흩어졌다

 

입만 헹군 것이 미덥지 않아서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아이의 기저귀를 갈았다

아내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술 마셨어?

홍삼 드링크를 한 병 마셨더니, 오르네

 

아가야, 이 소똥하고 이마받이한 녀석아!

아빠한테 삼촌이 있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적이 없다

이 물에 불어서 쭈글쭈글한 녀석아!

네가 와서

삼촌이 가셨구나

너를 마중하느라고 엄마가 피를 대야로 쏟았구나

 

 

- <무릎 위의 자작나무> 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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