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출판유통 환경을 바로잡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다가왔다. 국회에서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을 여야가 의견일치를 본 가운데 통과시켰고, 오프라인과 온라인 서점들 사이에서도 도서정가제 입법취지에 맞춰 마케팅 행태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큰 틀에서의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다. 현행의 <출판및인쇄진흥법> 아래에서는 사실상 도서정가제가 붕괴되어, 시쳇말로 출판마케팅은 과도한 할인/마일리지/경품 제공으로 인해 돈놓고 돈먹기의 도박판 비슷하다는 비판을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니 자연 서점들뿐만 아니라, 출판사들 또한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어쩌면 지금이 출판업에 종사하는 우리가 도서정가제라는 틀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온라인 서점은 온라인 서점대로, 오프라인 서점은 오프라인 서점대로, 출판사들은 출판사들대로, 저마다 처한 상황과 의견이 제각각이다. 즉 각 부문별로 참가자들의 수가 정말 많고, 입장차가 크다. 가령 온라인 서점 중에 튼실하게 자리를 잡은 예스24, 인터파크, 알라딘 같은 곳들은 새롭게 치고나오는 GMarket이나 Mornig365 같은 곳의 영업방식에 긴장한다. 경쟁력이 뒤지는 오프라인 서점 중에는 어떻게든 할인판매를 통해서라도 생존을 도모하려 한다. 출판사들 중에는 도서정가제를 훼손하는 마케팅을 전면적으로 지양하자는 곳이 있는가 하면, 자유시장 하에서의 여러가지 마케팅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다.
과연 이런 시점에 우리는 어떤 마케팅 환경을 꿈꿀 수 있을까? 그리고 다가오는 법 환경의 변화 속에서 출판유통은 어떤 모습을 나타내게 될 것인가? 지금은 출판유통환경 변화의 고빗길이다. 어쨌든 도서정가제라는 고지가 저쯤에 보이는데, 현재로선 일단 그곳에 도달하고 볼 일이다. 거기까지 가지 않는다고 할 때, 우리에게 선뜻 떠오르는 미래가 별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만일 우리가 오르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부터 바닥으로 미끌어지고 말 것이다. 물론 그렇게 고지에 오르는 과정이 만만치 않겠지만, 우리는 몇 가지 유념할 사항을 새기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선, 마음은 급하지만 결코 조급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는 늘 있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도서정가제는 오랜 세월을 두고 파괴되어 왔다. 그것이 서점 때문인지, 출판사 때문인지를 따지는 것은 지금으로선 쓸모가 없다고 본다. 요는 그 행위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것인 만큼, 이를 복원하는 데에도 오랜 시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가오는 10월20일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이 발효되는데, 그날을 기해 서점계나 출판계나 2인3각의 경기감각으로 ‘변화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그 첫 걸음이다. 참여자가 많은 만큼, 조금 긴 안목으로 사태를 바라보지 않으면 그만 조급한 마음에 사태를 그르칠 우려가 생긴다. 즉 뚫린 곳은 더 잘 통하도록 하고, 막힌 곳은 뚫어주면 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둘째로, 어려운 일이겠지만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원칙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
현재 출판시장에 전해지는 시그널은 ‘다소 중구난방’이다. 그렇게 되는 까닭은 아직 출판유통 관련하여 정확한 원칙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원칙을 정하는 주체가 정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원칙을 깨는 행위에 대한 대응책 마련도 되어 있지 않다.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바람직한, 그리고 시장의 파이를 키울 수 있는 유통질서 확립의 원칙이 필요하다. 결국 이를 위해서는 출판서점계의 경영자는 물론이거니와, 출판마케팅 현장의 영업인들의 활약이 너무도 절실하다.
셋째로, 원칙을 훼손하지 않되 실용적으로 접근토록 한다.
가령 도서정가제를 말씀하는 분들 중에는 ‘완전 도서정가제’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 주장 자체는 옳고, 어떤 면에서 장기적 관점에서 우리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 출판시장의 주요 흐름은 완전 도서정가제를 취하지 못할 요인들이 산적되어 있다. 그 동안 과다한 할인이나 경품 등에 길들여진 독자들이 반대하고, 주요 온라인 서점들의 사업기반이 일정한 할인정책의 토대 위에 세워졌고 그 영향력이 강력해졌다. 게다가 출판사들 또한 제대로 된 컨센서스가 이룩되어 있지 않다. 이럴 경우 장기적인 비전으로는 완전 도서정가제를 연구하고 도모하되, 중단기적으로는 주어진 여건 속에서 도서정가제의 여린 싹을 잘 틔워나가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출판계와 온오프라인 서점계 사이에선 오랜 동안의 치열한 논의 끝에 이번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을 마련했다. 도서정가제 한시조항을 없애고, 신간 기간 18개월로 연장, 온오프라인 10% 공통할인을 주골자로 하는 대타협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를 위의 세 가지 관점에서 조망하면 어쨌든 너무 조급해하지 않는 가운데 원칙을 수립하며 실용적인 접근이 가능토록 만들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지금 출판계와 서점계 안에서 논의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하나같이 풀기가 어려운 과제들이다. ‘오픈 마켓’이라는 새로운 수법으로 등장하는 신흥 온라인 서점들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도서정가제의 치외법권 지대라 할 홈쇼핑 시장은 어떻게 가닥잡을 것인가? 서점계의 과다할인, 마일리지, 경품 등의 질서는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각종 편법이 난무하는 1+1, 1+2, 혹은 1+1+1 따위는 어떻게 통제해야 할 것인가? 서점들의 출판사에 관한 공급율 인하 요구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비단 위에 언급한 문제들이 다가 아니다. 한도 끝도 없이 문제들만 존재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문제들에 관해 조급해하지 않는 마음가짐으로, 어떻게든 가급적 다수가 수긍할 비교적 바람직한 방법을, 어쩔 수 없이 실용적으로 찾아나가야 한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은 결코 한가롭지 않다. 어떤 면에서 위기이다. 법은 곧 바뀌는데 실질적인 내용이 하나도 바뀌지 않는다면, 시장 참가자들은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 실망감은 시장을 더욱 난감한 상황에 빠뜨릴 수 있다. 그럴 경우 우리가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 다시금 지하갱도로 미끌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열린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힘이 있는 사람들은 선도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힘이 좀 달리는 사람들은 원칙에 발맞춰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그것이 곧 2인3각 경기감각의 민주적, 선도적, 자율적 시장참여 행위이다. 이 점,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외면할 수 없는 책무임을 지적하며 다음 글을 약속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