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의 文化데이트>
“예술가든 종교인이든 집착 버려야 ‘참자유’얻어”

 

佛寶사찰‘통도사’주지 취임 정우 스님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

 







정우 스님, 사람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털털한 미소가 일품이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종교인으로서가 아니라 문화인, 예술애호가로서다. 현재 한국 연극·뮤지컬계를 이끄는 극단 신시뮤지컬컴퍼니의 후원회장으로 만났다. 그래서 도(道)가 높은 스님보다는 예(藝)가 깊은 스님으로 편하게 지내왔다. 그런데 그가 지난 12일 경남 양산 통도사의 주지 진산(晉山·새 주지 취임)식을 가졌다. 통도사가 어떤 절인가. 부처의 사리가 모셔진 불보(佛寶)사찰로 대장경이 있는 법보(法寶) 해인사, 예부터 국사(國師)가 계속 배출된 승보(僧寶) 송광사와 함께 한국의 불·법·승 삼보(佛·法·僧 三寶)사찰의 하나로 꼽힌다. 27일 뒤늦게 축하를 겸해 통도사를 찾았다.

그는 절에 없었다. 통도사 맞은편 언덕 위 사자목 삼층석탑 주변에서 측백나무를 뽑고 소나무를 심는 중이었다.

“색깔이 안맞아요. 또 이놈들이 웃자라면서 소나무가 상해요.”

측백나무도 생명인데 자비가 으뜸 덕목인 불자로서 잘못된 것 아니냐고 하자 그는 “과거 아무 나무나 심은 결과”라며 “자기 자랄 곳에서 자라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가 개혁파 스님으로 이름 났던 것을 깜빡했다.

언덕에서 통도사로 함께 내려오는 길에 이 사찰의 유래를 물었다. ‘통도’라는 이름도 도를 통하는 ‘通道’가 아니라 ‘通度’인 것도 궁금했다.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15년(646년)에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돼, 부처님이 입었던 가사와 대장경 400책, 부처님의 정골(頂骨)사리가 봉안된 국지대찰(國之大刹)이며 불지종가(佛之宗家)입니다. 통도사가 영축산(靈鷲山)에 있잖아요. 영축산이 본래 부처님 재세 시에 인도 마갈타국 왕함성의 동쪽에 있는 그리드라(독수리)라는 산을 한자로 옮긴 겁니다.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법한 곳인데 신선과 독수리(鷲)가 많이 살아 영축산이라고 불렸답니다. 우리 사찰의 지형이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此山之形 通於印度靈鷲山形·차산지형 통어인도영축산형)고 해 通度寺라고 일컫습니다. 또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모두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모신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아야 한다(爲僧者通而度之·위승자통이도지)’는 점에서, 이와 함께‘모든 진리를 회통해 중생을 제도한다(通萬法 度衆生·통만법 도중생)’는 의미에서 通度寺라고 부릅니다.”

보통 스님의 휴대전화라고 하면 반야심경이라든지 금강경이라든지 독경이 나와야 어울릴 것 같다. 그런데 그의 휴대전화 신호음은 극단 신시의 뮤지컬 ‘댄싱 섀도우’의 주제곡 ‘그림자와 함께 춤을’이다.

“제가 거기에 인연을 맺고 함께 하고 있는데 그 음악으로 해놓으면 누가 전화해서 물을 것 아닙니까. 그때 이 작품이 차범석 선생님의 걸작 ‘산불’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극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이 쓰고, 작곡가 에릭 울프슨이 노래를 만들고, ‘맘마미아!’로 유명한 영국 연출가 폴 게링턴이 연출했습니다. 6, 7년 공들인 한국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작품입니다 라고 설명하면 공연티켓 한 장이라도 사서 보러 가지 않겠어요.”

준비된 듯 답변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현재 공연중인 이 작품, 별로 성과가 좋지 않아 보인다.

“첫 공연때 보셨지요? 다시 봐 보세요. 많이 달라졌습니다. 6·25전쟁의 비극을 넘어 자연을 보호하고 연약한 여성들을 지켜야 한다는 자연보호, 생명존중의 메시지가 특히 뛰어난 작품입니다.”

원래 영화를 좋아한 그가 연극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70년대다.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배우 이호재, 전무송씨 등을 만나면서부터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연극과 사랑에 빠진 것은 84년 만해 한용운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 ‘님의 침묵’을 만들면서다. 이때 고 김상열을 비롯해 영화와 TV, 무대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 스타 김갑수씨 등과 깊게 사귀게 됐다. 정우 스님은 당시 1개월을 넘기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을 4개월 동안 공연하며 매진을 기록, 흥행능력을 과시했다.

“순수예술인 연극이 종교와 다름없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래도 재정적으로 좀 나은 종교쪽이 연약한 연극을 지원하는 게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87년 김상열 선생과 김갑수씨, 현재 대표인 박명성씨 등과 함께 극단 신시를 설립하고 제가 재정을 뒷받침하기로 했지요.”

그의 후원이 중요한 역할을 해 극단 신시는 ‘맘마미아!’ ‘아이다’ ‘렌트’ ‘시카고’ 등 대작을 잇달아 무대에 올리는 등 현재 한국 공연계를 이끄는 최대 엔진으로 성장했다.

예술에서 종교, 본론으로 들어갔다. 예술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은 인정하는 데 통도사 주지스님으로 임명될 정도로 도력이 높은 줄은 몰랐다. 그는 “도력은 무슨 도력”이라고 겸양하며 “절은 많이 세웠다”고 했다.

“아마 월하 스님이 미리 내다보신 게 아닌가 해요. 월하 스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정우(頂宇)입니다. 집을 많이 지으라는 말씀이겠지요. 또 당호가 아산(芽山)이에요. 싹(芽)으로 산을 만들라, 즉 불종자(不種子)를 많이 키워라, 그게 제 임무 아니었나 싶어요. (서울) 구룡사를 비롯해 여래사, 원각사, 법계사, 반야사, 서래사 등 제가 세운 절이 20여개쯤은 되는가 보네요.”

몇 만명씩 모이는 그의 회향법회는 유명하다. 사람을 끌어모으는 비결이 있을 것 같다.

“비결이 뭐 있겠어요. 본디 풍각이지요. 굳이 말하라 하면 타락된 언어를 쓰지 않는 걸 겁니다. 타락된 언어는 막말뿐 아니라 미사여구 등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언어들입니다. 한 예로 ‘정말’이라는 말입니다. 남편이나 애인이 성의를 베풀면 ‘정말’이냐고 묻지요. 북한 사람들이 특히 ‘정말’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사회면 그 말을 그렇게 많이 쓰겠습니까. 요즘 TV 등 대중 앞에 서는 사회자, 출연자들이 ‘정말’을 ‘정말’ 많이 써요. 최근에는 종교인들도 ‘정말’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진실은 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많은 불자들을 모으는 ‘조직’의 힘이 불지종가라는 통도사의 주지에 만장일치로 추대된 배경은 아닐까.

“저는 모으는 쪽보다는 흩뜨리는 쪽입니다. 제가 세운 절에는 조직이 없습니다. 무조직이 조직입니다. 저는 ‘신도’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신도라는 말은 ‘믿는 무리’, ‘우리 절의 신도’라는 (파벌) 개념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찻주전자를 들고 차를 따라주며) 찻주전자를 든 것은 차를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차를 다 따랐으면 당연히 주전자를 내려놔야지요. 그런데 계속 들고 있는 거예요. 그건 주전자에 붙잡혀 있는 겁니다. 가정도 세상도 그렇습니다. 붙들리면 안돼요. 놔야 합니다. 그래야 참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많은 절을 세우고 떠났나 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입니다. 오늘 없는 어제와 내일이 어디 있습니까. 오늘을 잘 살면 어제 잘 산 것이 되고, 내일도 잘 살 겁니다. 오늘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붙들리면 안돼요. 통도사가 그런 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쁜 마음으로 와서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가는 그런 절이오.”

사실 그렇다. 요즘 많은 종교가 그렇다. 가지 않으면 불안하고, 갔다 오면 허전한 경우가 많다. 그런 불안과 허무가 원리주의, 근본주의, 극단주의 같은 ‘탈레반’들을 만들어내는 바탕은 아닐까.

“네팔에 갔더니 1만의 부처가 새겨져 있다는 만불탑(萬佛塔)이 있었어요. 그런데 실제 새겨진 부처의 수는 9999불이라고 합니다. 나머지 한 명은 이를 바라보는 사람 자신이라는 거지요. 또 석가모니가 처음으로 득도해 설법하는 녹야원 그림도 있더군요. 양쪽으로 사슴이 있고 가운데 법륜을 세워 놓은 1자가 있고 그 주위에 6명이 나란히 앉아 있는 거예요. 부처님의 최초 설법 대상은 5명 아닙니까. 그런데 부처님은 가르치면서 배우시는 거예요. 이 만불탑, 녹야원 그림, 놀라운 구성 아닙니까.”

그의 네팔여행 경험 선문답(禪問答)은 최근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 등으로 첨예한 갈등을 벌이고 있는 이슬람·기독교 등 종교간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상당히 흐트러진 우리 사회 전반에 가장 필요한 기본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것 같다.

“말을 못해 벙어리가 되는 것이 아니지요. 듣지 못해 그런 것이지요.”

정우 스님의 조용하면서도 낮은 이 한마디는 남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만을 주장하는 종교와 사상, 철학,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세상 모든 것에 경고하는 사자후의 큰 울림으로 들렸다.

■정우스님은…

-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 1965년 출가
- 1968년 통도사에서 홍법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수지
- 1971년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 1974년 해인사 승가대학 대교과 졸업
- 1978년 월정사에서 화엄학 수학
- 1987년~ 극단 신시뮤지컬컴퍼니 후원회장
- 1988년~ 도서출판 일주문 대표, 월간 붓다 발행인
- 1994~1998년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 2007년 통도사 주지
- 저서 ‘길을 묻는다 불에 달군 돌을 물고’(1, 2권·1994년), ‘내 어릴 적 꿈은 운전수였네’(1, 2권·2000년), ‘부처님 품안 따뜻한 가정’(2004년)

문화부장 hyeon@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7-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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