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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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고난의 행군' 시절) 언젠가 미이 언니와 두만강에 나갔다가 사람이 천천히 떠내려오는 걸 보았다. 어린애를 업은 채 앞으로 처박힌 아낙네의 시체였다. 그러니까 아기와 엄마가 함께 죽은 것이다. 언니와 나는 보통때 같았으면 깜짝 놀라서 외마디소리도 지르고 누군가를 부르러 달려가기라도 했으련만 숨을 멈추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체 뒤로 풀린 채 길게 따라서 흘러내려가는 포대기끈이 흐느적거렸다. 나중에 그 강변에는 더 많은 시체들이 떠내려오곤 했는데 맞은편 중국인 마을에서는 자기네 기슭에 닿으면 장대로 밀어내곤 했고 이쪽에서도 군인들이나 장정들이 지켜섰다가 강심으로 밀어내곤 했다. 어느날인가 저녁때 사택 동네의 사람들이 수런거리는 기색이더니 군인들이 리어카를 끌고 중심가를 내려오는 게 보였다. 우리도 처음에는 양곡포대를 덮어놓아서 무엇인지 모르다가 그 아래로 삐죽이 나와 있는 사람들의 발을 여러 개 보고는 시체인 줄 알았다. 밤사이에 동네에서 사람이 죽으면 이웃들이 신고해서 치워갔는데 그해 여름을 지나고부터는 그냥 방치해두어서 빈집 앞을 지날 때면 간장을 조리는 듯한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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